14편,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기다림
요절 : 7절,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14편도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14편은 53편과 대동소이한 시입니다. 두 편의 중심점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온다”(7)는 점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2:30-31절에 의하면, “그(다윗)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했다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대망(待望)하는 것은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예언적(豫言的)인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찌하여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노라” 하고 증거는가? 1-3절 안에는 “없도다” 하는 말이 3번이나 강조되어 있는데 이를 신약성경에서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 하고 해설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력구원(自力救援)의 불가능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하는 것입니다.
도표를 보시면,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한다”는 말씀을 중심으로, ①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데, ② “여호와께서 살펴 보신즉,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합니다. ③ 저희는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는다”, 즉 박해하나, ④ 그러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하면서 결론적으로, 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즉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⑥ “야곱이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되리라” 말씀합니다.
첫째 단원(1-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둘째 단원(4-6) 의인의 세대에 계신 하나님
셋째 단원(7) 포로 된 자를 돌이키시는 하나님
첫째 단원(1-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첫째 단원은 전적타락, 전적부패 한 인간의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①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1상) 합니다. 어찌하여 불신자들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 말씀하는가?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는” 데도,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꿔치기”(롬 1:19, 22-23)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계획을 대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 즉 신지식(神知識)을 주셨는데도 억지를 쓰듯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들이라 하는 것입니다.
㉡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하) 합니다. 이는 인간의 전적부패 한 상태를 가리키는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합니다.
②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2),
㉠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3) 합니다. 1-3절이 지적하고 있는 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첫째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 경건(敬虔)치 아니함이고,
㉯ 둘째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는 불의(不義)입니다. 죄들은 억만 가지가 있다 하여도 크게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치 아니함”과, 이웃에 대한 “불의”(롬 1:18)요, 이 두 가지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하고 말씀합니다.
㉡ 사도 바울은, “없도다,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는 1-3절을 인용하여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하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도달하게 된 결론은, “율법의 행위로 그(하나님)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롬 3:20)는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소망은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는 것” 뿐인 것입니다.
둘째 단원(4-6) 의인의 세대에 계신 하나님
둘째 단원의 중심점은,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10:4) 하는 자들이 득세하듯 하지만 하나님은 의로운 자와 함께 계신다는데 있습니다.
③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無知)하뇨”(4상) 하고 묻습니다.
㉠ 그렇습니다. 그들 자신은 “스스로 지혜 있다”(롬 1:22) 하나, 실상은 가장 무지한 자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엡 4:18)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하여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4하)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떡 먹듯” 한다는데 저들의 오만이 나타납니다.
㉢ 그러나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5)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세대에 계심”을 보고, “저희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다”면,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1:6) 한 종말적인 심판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다”는 점을 58:11절에서는,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는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말씀하고, 계시록에서는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이--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계 6:15-16) 하고 절규하게 되리라 하십니다.
④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6) 합니다.
㉠ 4절에서는 “내 백성”이라 말씀하고, 5절에서는 “의인의 세대”라 했는데 6절에서는 “가난한 자”라 하십니다. 경건한 자를 “가난한 자”라 함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한 그런 뜻에서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의인의 세대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단원(7) 포로 된 자를 돌이키시는 하나님
셋째 단원은 한 절에 불과하지만 14편을 통해서 말씀하시려는 중심주제가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7) 합니다.
㉠ 이는 세 마디로 되어 있는데,
㉮ 첫째로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7중) 합니다. 이를 표면적인 문자만을 본다면 바벨론에서의 포로귀환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18-21) 하신 말씀도 바벨론 포로 귀환을 가리킨단 말인가?
그래서 성경은 “구속사”(救贖史)라는 맥락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신 여호와의 일하심은 “출애굽이나, 출 바벨론”의 해방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즉 사탄의 포로 된 자들을 돌이키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 그래서 둘째로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7상) 하는 것입니다. 53:6절에서는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고 묻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2:6) 하고 대답하십니다.
⑥ 그러므로 셋째로 불신자들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 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인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7하) 하고 말씀합니다. 53:6절에서도, “하나님이 그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합니다.
㉠ “구원이 시온에서 나온다” 한 것은 시편에서만이 아니라, 선지서가 공통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 이사야서에서는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 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사 46:13) 말씀하고,
㉯ 스가랴서에서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 9:9) 말씀하고,
㉰ 스바냐서에서는 “시온의 딸아 노래할 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어다”(습 3:14) 하고 말씀합니다. 무슨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인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 자”(습 3:17)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한다”는 예언은, 14편의 문맥으로 보면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론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한”(1) 전적 부패 한 자들이요,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3) 한 전적타락 한 자들로, 자력구원의 소망이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부언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께서 시온에 오시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으면 사유함이 없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 12:2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만이 가능하여진다는 점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다음에 나오는 15편을 해석할 때에 곁길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 이제 또 한 번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또 내가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계 14:1) 하고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만 하는가?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떡 먹듯이 먹으면서”, 즉 박해를 하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않고”(4)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저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나” 성도들은,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대망함”입니다.
적용 :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하는 말씀은 위로와 격려가 되면서, 책임이 따르는 말씀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과, “의인의 세대”에 소속한 자의 삶은 필연적으로 달라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묵상
㉠ 1-3절에 나타난 두 방면의 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 의인의 세대와 악인의 세대의 갈들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에 대해서,
㉢ “시온의 구원과, 포로를 돌이키실 때”라는 말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