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3
5. 12 화요일
아기낳기 전 마지막 진료때, 이번주 토요일 전에는 나올 것 같다고 하시면서 10분 미만으로 아플 경우 빨리 와야한다고 하셨다.
단 것을 먹지 말고 많이 걸어서 빨리 낳아야겠다고 결심!
🍒D -1
5. 14 목요일
저녁에 홈플러스에서 3시간을 걸었다. 평지를 슬슬 걷기도 하고 중간에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걸을 때마다 아랫배가 쳐지고 묵직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D - day
5.15 금요일 오전 7시 : 약한 진통 시작
갑자기 아랫배가 싸르르 하면서 생리통처럼 아프기 시작.
가진통처럼 약했지만 그래도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다 보니 진통이 조금 세지고
간격은 8분정도로 줄었다.
원장님께 연락드리니 바로 오라 하셨다.
남편과, 첫째아들과 함께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산원으로 출발.
🍒오전 9시쯤 조산원 도착!
첫째도 여기서 낳았기 때문에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내진을 해보시더니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언제 나온다고 확실히 말하기 그렇다고 하셨다.
나는 쇼파에 앉아 전기 및 중기 호흡을 하며 진통도 하고, 남편 그리고원장님과 함께 대화도 나누었다.
그리고 10시 반쯤엔 시부모님이 오셔서 첫째를 데려가셨다.
저녁쯤 나올라나? 언제 나오려나. 남편과 나는 아침식사를 못해서 일단 밥부터 먹고 싶었다.
조산원에서 10분거리의 우리의 단골식당(밥하는김여사)에 전화를 해서 도시락을 주문했고, 도시락은 11시반에 왔다. 나와 원장님은 함께 거실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남편은 바깥 공기를 좀 쐴 겸 편하게 식당에서 직접 식사를 하러 갔다.
🍒11시 40분 , 밥먹다가 양수 터짐
너무 도시락이 맛있어서 딱 5숟가락 정도 먹었는데 양수가 팍! 터졌다. 바닥에 앉아서 먹다보니 자세 때문인 걸까.
첫째 낳을 때 양수 터진 이후로는 통증도 심해지고 자궁문 열리고 아기 나오기까지 아주 급격히 진행되었던 것이 기억나서 약간 무섭기도 했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원장님 넘 아파요. 이제 밥은 못먹을 것 같아요"
"그렇지? 내진하자.(내진해보시더니)아직은 쪼금 더 아파야 돼"
아프긴 아팠다.
진통 강도가 눈물나기 직전만큼 세졌고 이제는 중기호흡으로는 안되겠어서 히히후 히히후 하면서 견뎠다. 첫째 때도 그 호흡으로 견뎌냈었던 기억이 아직 있었다.
그런데 호흡을 너무 격하게 하다 보니 갑자기 온몸이 저릿하면서 귀가 멍 ~ 하면서 잘 안들리기 시작했다. 산에 올라간 것 같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원장님 귀가 안 들려요! 그리고 온 몸이 저려요."
"과호흡해서 그래 숨을 조금만 살살 내쉬고 입을 손으로 막고 호흡해요."
원장님은 과호흡때문에 저린 것이고 빈혈 때문에 귀가 멍해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숨쉴 때 손으로 입을 막고 조금 살살 쉬면서 숨이 너무 많이 나가지 않도록 하니까 증상이 완화되었다.
원장님만 믿고 따라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남편 오라 그래야겠다! 욕조에 물을 받으시면서 원장님은 전화를 하셨다.
"식사는 하셨어요? 지금 오세요~"
11시반에 김여사네로 밥먹으러 간 남편은 아마 저녁쯤 나올 거라 생각하고 여유롭게 밥먹고 있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달려왔을 것이다.
🍒12시 15분쯤 ,욕조로 풍덩! ' 아..이제 살 것 같다'
남편을 부르시고는 원장님은 욕조에 물이 다 받아졌다며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진통이 너무 심해서 걷기도 힘들었다.
욕조 앞에 다 와서는 "저 못 들어갈 것 같아요" 하니까
원장님이 "나 붙잡고 들어가. 들어가면 편해져." 라고 하셨다.
갓 태어난 망아지마냥 걷기가 힘들었지만 힘을 다해 참으며 원장님을 디디고 올라가 물에 들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 마치 (한 번도 맞아본 적은 없지만) 무통주사를 맞는게 이런건가 싶게 통증이 4분의 1 정도로 경감되는 것 같았다.
살 것 같다..
수중분만이 이렇게 좋구나..
자연주의로 출산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들었다.
물론 진통은 계속되었지만 물 안에서 호흡하며 견딜 수는 있을 정도였다.
남편도 곧 도착하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로 들어왔고
남편에게 기대면 더 좋다고하셔서 쇼파처럼 남편에게 기대었더니 너무 푹신하고 편안했다.
무엇보다도 이 고통을 나 혼자 겪지 않고 함께 나누는 것 같아 더 좋았다.
그리고는 계속 약 2분간격으로 진통을 하는데 너무너무 아파서 남편 다리를 한 번 꼬집기도 했다. 아주살짝^^;;
🍒12시 20분쯤, 힘주기 시작
과호흡을 조심하기 위해 입을 막은 채로 계속 히히 흠.. 히히 후.
하다가 원장님이 드디어 이제 "히히 끙"을 하라고 하셨다.
벌써 힘주기라니!!!
와 .. 벌써 끝이보이는건가?
기쁘면서도 여전히 무섭기는 했다
첫째 낳을 때 힘주기를 너무 오래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둘째이고 막달에 음식 조심해서 아기도 덜 크게 했었으니까
힘주기도 금방 할 수 있을거라는 약간의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물 속에서 지치면 안되니까 지치기전에 힘을 모아 빨리 힘주기해야겠단 생각에 히.히. 끙~ 하면서 다시 한번 젖먹던 힘을 주어 아이를 밀어냈다.
🍒12시 35분, 성공 !
힘을 주니까 아기 머리가 밀려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콧구멍에서 참외가 나온다는 표현이 생각날 만큼 아프긴 했지만
정말 끝이 보인단 생각에 아프면서도 기뻤다.
한 번 더 '히히 끙' 하면서 힘을 주니 이번에는 머리가 진짜로 나오다가 중간에 걸리는 느낌이 났고 , 호흡을 천천히 하라고 하셨다.
전에 원장님께서 힘주기할때 박자가 잘못 맞으면 회음부 열상이 생길수 있다고 하셨던 것이 생각나서 원장님 리드하시는대로 똑같이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원장님을 그대로 따라했다.
드디어 머리가 다 나왔다. 정말 끝이다!
한번 더 호흡하며 힘을 주어 몸통까지 쑤욱 빼냈다.
원장님이 아기를 잡아서 입 속에 있었던 배냇똥을 기구로 빼주시고 내 배 위에 올려주셨다.
나오자마자 '몇시죠?' 물으셨고
남편은 12시 35분이라고 대답하는데 내가 기적을 경험한 것일까?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체리야 고마워. 쉽게나와줘서 너무 고마워 사랑해. 원장님 감사합니다."
탯줄도 자르기 전에 내품에 안긴 아기의 찡찡거리는 소리와, 미끄덩하고 두꺼운 탯줄이 피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첫째 때와 다르게 물 속에서 아기를 받으니 나오는 과정을 내가 직접 볼 수 있어서 너무 신기했다. 너무 감격적이어서 원장님께 계속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사실 아까 양수터졌을 때 내진해보니 아기가 배냇똥 싼 걸 보셨는데 걱정할까봐 말씀을 안하셨다고 하셨다.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해주신 지혜로우신 원장님께 감사 ^^)
그렇게 물 속에서 아기를 3분 안고 있었나?
등이랑 배가 묵직한 느낌이 났다.
'배가 왜 이렇게 아프죠?"
이제 태반 나오려나보다~ 하시면서 태반 주머니를 꺼내주셨다. 피가담긴 동그란 비닐주머니 같았다.
이제 아기도 씻기고 나도 물에서 나와 침대에 누워 확인하니 감사하게도 회음부 열상이 없었다. 할렐루야!
3.6kg 키는 51cm의 길쭉하고 건강한 아기였다.
🍒캥거루 케어와 신생아 나체요법
욕조에서 나왔기 때문에 바로 씻고 나체로 내 몸에 눕혀진 아기와 함께,
이불에 누워서 가족친지들에게 사진도 보내고 축하를 나누며 푹 쉬었다. 진통도 짧고 금방 낳아서 덜 피곤했는지 잠이 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이를 품에 안고 누워 4시간 정도 쉬다가 미역국도 먹었다.
남편이 나를 보더니 방금 아기 낳은 사람 같지 않다고 했다. 나도 몸이 가볍고 날아갈 것처럼 시원했다.
🍒 원장님께 감사를 ~!!
물론 진통이 아프긴 했지만 진짜 아픈 건 1시간 뿐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힘주기 10분도 안하고 낳다니. 27시간 고생했던 첫째때에 비하면 공짜로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물론 기쁨이지만, 출산을 경험하는 것만큼 격하게 행복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에게 출산은 평생 가장 놀랍고 경이로운 기억이 될 것 같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한 남편도 잊지못할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출산에 대한 공포심도 많았던 내가, 무통주사도 없이 자연주의로 아기를 둘이나 낳았다! 아마 병원이었으면 첫째 때 이미 수술을 했을 것이다. 첫째때 그랬다면 아마 둘째도 제왕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병원에서 환자가된 것 같은 느낌으로 분만의자에서 아이를 낳는 것만큼은 하고싶지 않았던 나에게 우연한 기회로 엄조산원 원장님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심지어 둘 다 예정일을 지나 크게 낳았는데도 무사히,건강히 출산할 수 있었다. 친정 엄마같은 원장님을 믿고 의지했고 , 알려주신대로 미리 회음부마사지와 호흡 연습도 잘 따라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연분만을 성공하게 해주신 원장님께 평생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