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을 둘러싼 여러 봉우리를 남한산, 청량산, 일장산 등으로 퉁쳐서 불렀다는 게 정설인데 요즘은 몇개의 봉우리에 별개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
아무튼 남한산은 한강으로 부터 솟아올라 청량산을 정점으로 내리막으로 달리다가 남쪽으로는 검단산으로 동쪽로는 망월봉으로 다시 치솟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남쪽이 완만한 경사를 이뤄 산성을 지키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 되었고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3개의 옹성을 쌓고 검단산에다 신남성 돈대를 쌓아 적의 공성을 차단했다.
검단산 꼭대기는 동서로 나란히 3개의 봉우리가 앉았는데 여기서 가장 높은 가운데 봉우리에 동돈대를 쌓고 그 서쪽에 서돈대를 쌓았다.
제1남옹성으로 나가는 제7암문을 통해 돈대를 오가던 길을 돈대에 군부대와 KT송신탑이 들어서면서
제7암문을 대신해서 차량통행이 가능한 문을 내고 길을 넓히고 포장했다.
사진 촬영지점 1에서 보면
성곽을 헐어서 차량통행이 가능한 높은 문을 내고 ㅡ 오른쪽 공사 가림막 너머에 제7암문이 있다.
(2020년 7월27일 현재 제1남옹성 보수공사 중이다.)
공사가림막 너머로 보이는 제7암문은 제1남옹성과 신남성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새로 차량통행용 문을 내고 성곽을 나와 신남성까지 도로를 넓히고 포장했다.
촬영 지점1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군부대(서돈대) 가는 길과 왼쪽으로 KT송신탑(동돈대) 가는 길로 갈라진다.
촬영지점 2에 세워진 이정표
군부대는 아예 접근금지라 울타리 너머 구경도 불가능했다.
이런 표지판 뒤에 차량통제 장치가 있으나 개방되어 있었다.
송신탑 정문 한쪽에 서 있는 안내판이 여기가 문화유적지임을 알리고 있다.
쇠창살 문을 통해 보이는 돈대 출입구였던 홍예문.
그러나 1999년에 작성한 토지주택박물관의 자료를 보면 이 홍예문도 원래의 모양이 아니고 차량통행이 가능하도록 키운 것이라고 한다.
안쪽의 다른 유적들도 1996년 송신탑 개축공사 중 많이 훼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