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적에 이사 와서 살던
교통부 보림극장 뒷집
아침이면 거지들이 문앞에서 각설이 타령을 부르면
우리는 밥을 갖다주던 기억이 선명한 그집
그 때 각설이 타령이 얼마나 재미있었든지
우리 형제들은 그걸 외우는라 정신 없었지
과자 사러 그 조그만 골목을 뛰어가노라면
피아노 치는 집에서 딩동댕 댕댕 피아노 소리가 항상 들렸다.
지금에야 그 집이 가수 000씨 집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리고 그 위 한 블록 위의 세희집
세희집으로 가는 골목도 얼마나 작은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그리고 수박 사러 갈때나 약국 심부름 갈 때 지름길이라고 갔던
세희집 옆으로 난 도랑길
어릴적에는 도랑에 행여 빠질세라
담벼락에 꼭 붙어 천천히 가다가
도랑이 끝나면 뛰어 갔던 일 들이 ....
이제는 도랑이 복개 되어 모습이 별 없었다.
그리고 왼쪽으로 올라가는 희영이네 집 가는 길
희영이 네 집은 아직도 그때 그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아담한 기와 대문과 기와 담도...
그리고 내가 다니던 범일 초등학교
이제는 그 주변이 너무나 변하여
그때의 모습을 잘 모를 정도 지만
칡을 많이 자주 사먹던 뒷문
그리고
어느날 아침 조회시작하기전
세희가 나에게 와서
자기 욕했자고 다그치며
화내던 앞문의 그 자리
그 때 빙 들러서서
내편을 들어주던 아이들
그리고 놀라서 울기만 했던
어린날의 내모습
- 완전히 한살 어려서 어리석기만 했던 어린날의 나-
그 뒤로 40여년간 세희와 한마디도 않고
중고등 학교를 같이 다녔던
세희와의 빗나간 우정
이제는 세희를 만나면 얘기하고 싶은데
졸업식때 우리선생님이 세희대신 나보고
송사 준비를 시키던 일
나는 그 뒤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학교에 안 나간 일
마음이 불편해서 였을까
좀 나아도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졸업식날 아주 아픈 표정으로
앉아서 세희의 송사를 듣던 일,,,
동사무소 앞의 원옥이집과
우리가 가위바위보 하며
계단 올라가기 하던 그 계단들
친구들고 해지도록 놀다가 급히 집으로 가다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던 그 넓은 신작로
지금 보니 그리 크지 않은 장소 였는데
그 때는 왜 그리 크게 보였던지
그리고 5,6학년을 보내고
대학시절까지 살았던 학교 위의 붉은 벽돌집
그 때는 우리집 부근에 텅빈 장소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너무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서
우리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린날의 내 모습을 찾아서
다시 가 보았던
제작년 어린이날
그날의 선명한 기억들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어린 날의 맑고 순수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어린날을 생각하면 우리는 좀 더 포근해 지고 좀더 느긋해진다.
초등학교 동창은 초등학교 모습처럼 만나고
고등학교 동창은 고등학교 모습으로
만나다는
얘기가 정말 맞는 것 같다.
동창회에 나갈 때 나는 어린 아이처럼
마음이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