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하얀 꽃무더기 사이로 진이가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인지 아니면 아버지를 끌고서인지 구분하기 힘든 아침 산책을 마치
고, 혀를 날름거리며 호흡 조절을 하고 있다.
진이가 마당 한가운데에 세워 놓은 말뚝에 매인 채 중간 휴식을 하는 동안, 고모는 진이가
주로 거처하는 집 주변을 치우고 있다.
잔디가 깔린 마당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진이의 보금자리는 금방 표시가 난다. 첫째로 잔디
가 깨끗이 없어져서 황폐하다. 둘째로 갈가리 찢긴 종이조각과 진이의 하얀 털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헌옷가지와 방석들이 널려 있어 지저분하다. 진이가 목줄을 최대한으로 늘려 움직
일 수 있는 반경 속의 땅은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진이가 풀이나 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놈은 그런 것들을 무척이나 좋
아한다. 풀숲에 다이빙하듯 뛰어들어 코를 킁킁대며 그 속을 휘저으며 하염없이 헤매기를 좋
아한다. 또 풀벌레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들과 발장난을 하며 입 맞추고 싶어 한다.
그런데, 간혹 원치 않았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 앞발을 내밀어 벌레의 옷자락을 만
지려다가 치명적인 상처를 줄 때도 있고, 날아오르는 나비에게 입 맞추려다가 혓바닥 안으
로 미끄러져 들어와 꿀꺽 삼켜져버리는 때도 있다. 그런 다음 진이의 태도에는 허망함이 배
어 있다. 하릴 없이 친구가 사라지고 없는 허공을 두리번거리며 시무룩해진다. 진이의 앞발
과 주둥이는 놈의 정서에 비해 형편없이 둔한 것이다.
놈의 감성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섬세하다. 동물에게도 정을 나눠주는 사람과 키우
다가 잡아먹어도 되는 짐승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도 잘 구분한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인사하고, 배와 가슴을 내어 주며 쓰다
듬어 달라고 애교를 피우는 녀석이 동네 앵자 아줌마만 보면 컹컹 짖어댄다. 앵자 아줌마는
얼마 전에 진이의 친구를 키우다가 놈을 잡아서 개소주를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다.
진이가 부는 바람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는 눈을 슬금슬금 감아가며 그 속에 담긴 향내를 맡
는 폼을 보자면, 녀석을 시인, 아니 시견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녀석에겐 또한 어떤 품
위가 있다. 비록 둔하기만 한 앞발로 인해 집 주변이 황폐해지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슬픔을 가졌지만 절대로 집 주변에 배설을 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볼 일이 다급해도 끝까지
이를 악물고 참다가 도와 줄 사람이 나타나면 귀를 뒤로 눕히고 궁둥이에 힘을 준채로 끼잉
끼잉 하며 하소연을 한다. 볼 일이 끝나고 나면 놈은 늘씬한 허리를 쭈욱 펴고 꼬리를 공중
에 던지며 날랜 달음질을 해보기도 하고 눈길을 바다에 던진 채 유유히 산책을 하기도 한
다. 이 때 공연히 으르렁대며 시비를 붙는 동네 개들이 있으면 그냥 지나지 않고 꼬리를 흔
들며 다가간다. 그런데도 이빨을 드러내며 적의를 표하는 놈들을 진이는 내버려 두지 않고
혼쭐을 낸다. 앞발이나 주둥이나 목숨에 지장이 없는 곳을 물고는 한참을 놓지 않는다. 상
대방의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놀란 고모가 몽둥이를 들고 가 진이를 몇 번이나 내리
친 후에야 겨우 떼어 놓을 수 있다. 가늘고 가는 몸뚱이와 다리, 주먹만한 머리와 주둥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날까?
이제 청소가 끝나고 진이는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앞에 모로 누운 채 일광욕을 즐기
며 잠에 잠겼다가 나왔다가 하는 중이다.
녀석은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자유를 향해 안타까운 몸부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첫댓글 우연인지 저희 집 진도개와 이름이 같으네요. 작년 이 맘때쯤 진도에서 두마리 분양받아 기르려 했는데 마침 속초에 좋은 종자가 있다길래 데려왔지요. 두마리 안 가져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 진이가 넓은 공간도 완전 장악한 지금, 난 흐뭇함 속에 살지요.
진이 보고 싶어요~ 차차는 지금 제 무릎위에서 자고 있어요^^ 아앗!~ 출근해야지.
그림 입니다...!
이수헌님, 속초의 숲 속에서 사는 진이가 행복할 것 같네요. 목줄 같은 건 없지요? 진도에서는 목줄 없이 키우기가 어렵네요. 농사철엔 더더욱 조심해야 하죠. 밭을 드나드는 개들에게 복수하는 분들이 계셔서요. ^^
인생적당님의 차차는 외롭지 않을까? 궁금해요. *^^*
앗, 동대성님께서 말문을 여시다니요. 정말 오랫만이고, 반갑습니다! ^^
아아~차차가 성장기여서인지 아니면 욕구불만이 있는 것인지 먹는 것에 상당히 광분을 해요~ ㅎ 먼치껌인가 길쭉한 간식을 입으로 물고 뜯고 하다가 입속에 상처가 났는지 피가 나도 그러고 있어서 재빨리 회수~! 피가 나는데도 아는지 모르는지 . 뺏어가니 원망스런눈초리.. 음 두마리 진이들은 즐거운 생을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