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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전에서 들리는 염불소리 ‘나무아미타불’
굉웅(강재원, 청주 미원중학교 교장)
1) 어서 오게, 차나 한 잔 하세!
내가 관정 스님을 처음 뵌 것은 2001년 4월이었다. 당시 나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석천암(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인연이 있어 자주 다녔다. 괴산읍에서 표구사를 하던 친구와 병풍을 옮겨 주러 갔다가 알게 된 혜정 스님과 인연이 되어 자주 다녔는데 나중에는 처남이 이 절에서 취업준비를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기에 소개를 하게 되었고 나는 그 절의 신도가 되었다. 2001년 4월에도 석천암에 들렸다가 온 김에 근방을 좀 둘러보기로 했다. 절에서 나와 32번 국도를 따라 상주방면으로 4Km쯤 올라오다보니 오른쪽 편으로 석문사라는 조그만 절 입구를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있어 무작정 계곡 쪽으로 차를 몰아 계곡 위로 올라갔다. 이곳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 인근지역으로 경상북도 상주시에 속한다. 계곡에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크지는 않지만 옥양폭포가 있고 계곡이 아기자기해 꽤 많은 등산객들이 858m 높이의 백악산을 올라 수안재를 넘어 물안이골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여 등산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옥양폭포를 지나 좀 가파른 길을 올라서니 석문사라는 절이 하나 나왔다. 차를 세우고 절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큰 소나무 아래 황금색 노란 법복을 입으신 어떤 스님이 앉아 계셨다. 그 스님을 뵙자마자 바로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스님이 바로 관정 스님이구나!’
5달 전인 2000년 11월호 「불광」지에 「특별법석/중국의 생불로 추앙받는 관정 대사」라는 기사가 나와 아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스님을 뵙자마자 바로 그 기사가 떠오르며 직감적으로 관정 스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바로 그 시간에 입구 의자에 앉아 계시는 것이 ‘아!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선 채로 3배를 올렸더니 흰 종이에다 ‘우사 관정’이라고 스님의 법명을 써서 나에게 주시면서 통역을 통해 “차나 한잔하고 가시게!”라고 나를 초청하셨다. 참으로 뜻밖의 만남에 초청이었다.
얼마 뒤 나는 근무지(보은교육청)로 6시까지 들어가 숙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절을 떠나 교육청으로 갔다. 숙직하면서도 처음 만난 관정 스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관정 스님은 내가 거기에 올 걸 어떻게 알고 산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을까?’
‘처음 본 나에게 이름을 써 주시고 차 대접을 한 것은 어떤 연유인가?’
나는 여러 가지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숙직을 마치고 다시 석문사를 찾아갔다. 절 마당에 그랜저 승용차가 한 대 서 있었는데 그 차의 주인은 아내가 얼굴에 심한 종기가 나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이 절의 주지스님인 굉룡 스님이 특별한 비법으로 치료 하여 낫게 해 주었다고 했다. 나는 굉룡 스님과 절을 짓는 동안 일어났던 불사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며 질병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관정 스님과도 법담을 나누었다. 그 때 관정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빛의 세계에서 극락으로 바로 갈 수가 있다.”
극락을 다녀왔다는 것도 신비한데, 지금도 언제든지 갈 수 있다니 더욱 신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생전에 많은 스님 만나 보았지만 극락을 마음먹은 대로 오갈 수 있는 스님을 언제 또 만나겠는가! 나는 곧바로 청주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오도록 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몇 년간 열심히 체선 수행을 하다가 갑자기 스승께서 떠나버려 새로운 스승과 수행방법을 찾고 있을 때였다. 나는 1994년부터 체선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체선이란 몸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관하여 선으로 느낌, 생각, 하는 짓을 단계적으로 봐가는 사념처법과 같은 수행법이었다. 1997년 아내가 피부암 선고를 받았을 때 내가 그것을 봐냄으로 해서 병을 낫는 이적이 일어났다. 병이 나은 아내도 그 뒤 더 적극적으로 체선단계에 가입하여 열심히 수행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이 “오늘부터 문을 닫겠습니다.”라는 한마디를 하고 홀연히 떠나셔버렸다. 그리고 1년간 우리는 몹시 방황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새로운 선지식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달려온 아내(묘봉 오영선)는 관정 스님을 뵙고 그 자리에서 귀의하여 굉선이라는 법명을 받고 그때부터 관정 스님을 시봉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우리는 석문사 굉룡 스님과도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관정 스님이 중국으로 떠나시고 난 뒤에도 석문사 법당 안에서 정토선 염불수행에 전념하였다.
굉선이 얼마나 관정 스님을 존경했는지는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4명의 관정 스님 제자들과 함께 중국을 찾아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2) 정토선으로 체험한 염불삼매
그 해 10월 관정 스님께서 다시 한국에 오셔서 석문사에 머물면서 법회를 하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변 도반들에게 알려 박귀순, 박정인, 오은주, 한규량, 홍병학 교수내외분, 김대제 선생과 그의 고모님 내외분 등과 함께 법회에 참석하여 정토선 수행법에 대해서 듣고 마정수기도 받았다.
관정 스님이 중국으로 귀국하시고 난 뒤 석문사 주지인 굉룡 스님이 정토선 염불수행을 함께 하자고 해서 직장에서 퇴근하고 나면 바로 석문사로 가서 매일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였다. 지난 번 관정 스님이 오셨을 때 관정 스님이 직접 녹음한 것을 CD로 만든 것을 틀어놓고 관정 스님이 하신 대로 두 번 염불하고 두 번은 주의 깊게 듣는 2회 염불을 열심히 정근 하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우리 부부를 비롯하여 7명 정도가 함께 정근했었다.
10일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CD를 틀지도 않고 나도 염불을 하지 않았는데 멀리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가 들렸다. 참으로 신기하고 환희심도 나서 어디서 염불소리가 나는 지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며칠간 더 염불을 계속하자 나도 모르는 부지 부식 간에 등줄기를 따라 아래에서 위로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기운은 다시 앞쪽으로 내려오면서 명치아래에 머무르자 그 곳(중단전)에서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너무도 신비한 소리였다. 잔잔한 음성이 너무도 곱고 아름다워 ‘천상의 소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가?’
중단전에서 나는 염불소리는 더욱 더 뚜렷하게 들리고, 며칠이 더 지나가자 그 염불소리와 내가 하나가 되어 내가 염불이고 염불이 나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체선할 때 경험했던 트랜스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다만 체선할 때는 그놈을 지켜보는 내가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없어진 상태였다.
“이것이 어떤 경계인가?”
문제는 이런 상태가 왔을 때 이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처음 시작한 도반들이라 같은 처지에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점은 아직 굉룡 스님도 마찬가지 였다.
3) 가까이서 묻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2년 3월 2일 굉룡 스님이 관정 스님을 초청하여 불교방송국에서 대법회를 열었을 때 나는 당시 근무 중이라 참석하지 못하고 아내를 비롯하여 다른 도반들만 법회를 참석하였다. 법회를 마치고 관정 스님은 석문사에 오셔서 며칠을 더 묵으셨다. 그때 나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찾아가 관정 스님에게 물어 보았어야만 했다.
“제가 경험한 것은 어떤 경계입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으로 해 나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어떤 것입니까?”
“어떤 책을 봐야 합니까?”
이렇게 수많은 질문들을 가슴에만 담고 속절없이 시간만 보냈던 그 시절이 참으로 아깝고 또 아깝다. 체선할 때도 ‘모르는 것은 묻는다.’고 그렇게 반복해서 공부했는데, 엄청난 선지식을 바로 옆에 나두고도 그대로 지나쳤으니 전생부터 쌓은 공부 말고 이처럼 나태한 업이 한꺼번에 일어났던 것이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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