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寶 중에 居士寶에 예언된 전륜성왕
오래 전서부터 불경 및 위와 같이 민족 종교 경전 등에서는 말법시대 때 出世하여 용화세상을 건설할 전륜성왕에 대해 예언되어 있으나 지금까지 그 의미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훗날 누군가가 자신이 이러한 암호를 스스로 풀 수 있는 자가 전륜성왕임을 선언하도록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전륜성왕의 정치사상적 의미에 관한 연구 논문중에서 일부 발췌 (인천 모 대학 교수 논문집)
2. 상징의 해석 본고의 분석 대상인 전륜성왕에 대한 기사들은 방대한 불전 속에서 여러 종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고, 전륜성왕의 특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거의 정형화된 다음과 내용 의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전륜성왕은 일반인과 다른 32가지의 신체적 특징을 갖추고 있고, 일곱 가지 보물(七寶)을 지니고 있 으며, 네 가지의 신령한 덕(四神德)을 이루었고, 네 종류의 군대(四兵)를 거느리고 4천하를 다스리 며, 1000명 아들들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들 속에는 사실과 상징들이 섞여 있고, 불교적 가치들과 정합성을 이루는 것들이 있는가 하 면, 불교적 가치들과 논리적 일관성을 발견하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여타의 전통들도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체상의 32가지 특징은 붓다라는 인격과 전륜성왕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걸출한 용모와 특이한 신 체구조의 모습이다.
32상에 대한 내용이 초기경전에 언급된 구체적인 상으로는 겨우 세 가지 상 정도이다.
장아함경과 장부경전에 광장설상(廣長舌相)과 마음장상(馬陰長相)이라는 두 가지 상이 있고, 14) 숫타니빠다에 위의 두 가지 상에다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이라는 상의 명칭이 보인다.15)
따라서 32상의 구체적인 항목들은 시대가 경과하고 새로운 경전들이 편찬되면서 붓다와 전륜성왕의 이미지에 시대와 사회의 새로운 요구들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16) 더구나 32상에 대한 선행연구에 의하면, 32상의 체계가 갖추어진 후에도 문헌에 따라 그 각각의 명 칭, 배열순서, 각 상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와 상이점이 발견된다고 한다.
17)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32상은 붓다나 전륜성왕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현생에서 붓다나 전륜성왕 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과거 생에서부터 닦아온 선행과 공덕의 결과임을 강조하고, 또한 그 결과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일종의 수사학이라고 보는 것이 타 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륜성왕이라는 통치자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매개물은 고도의 상징적 표현으로 설명 되어 있는 7보(七寶)라고 부르는 일곱 가지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7보는 금윤보(金輪寶)?백상보(白象寶)?감마보(紺馬寶)?신주보(神珠寶)?옥녀보(玉女寶)?거사보(居 士寶)? 주병보(主兵寶) 라는 명칭을 가진 일곱 가지 보물이다.
이 각각에 대한 해석과 그 속에서 정치사상적 의미를 도출하는 것이 전륜성왕에 대한 현대적 이해의 열 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7보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는 경전으로는
북전 '장아함경'의 ?세기경? 전륜성왕품과 '증일아함경' 권48 예삼보품, 그리고 남전 '장부경전'의 ?대선견왕경?과 '중부경전'의 ?현우경? 등이 있다.
이들 경전에는 7보의 각각에 대하여 그 모양을 설명해 주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현재로서는 분명하게 알 수 없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왕권에 대한 상징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7보의 하나하나가 어떤 상징성을 갖는 것이라면, 경전에 설명된 모양에 대한 묘사는 현상에 대한 사실적인 설명이 아니라 추상적 상징의 구체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전륜성왕이 밝히는 칠보(七寶)의 의미 三佛十勝10皇極11歸體
그런데 여기서 왜 紺(violet자색)과 馬(말마)인가?
그러한 이치가 또한 남성에게도 적용되니 남성이 여성의 옥구슬이 위치한 곳 만 보아도 육적 용화세상이 있는 곳을 발견한 것이니 자연히 흥분되지 아니하겠는가? 구약성경과 구성 1.율법서 5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3.시가서 5권: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2. 역사서 1권: 사도행전 후서, 디모데 전서·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후서, 요한일 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4. 白象寶-불경 존재하는 DNA를 담고 있는 여의주와 이 DNA를 통해 11귀체 모악산을 암시한 생명나무 창조자를 증명하며 최종 완결된다. 그리고 전륜성왕과 관련된 또 다른 예언 중에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도를 아십니까?.. 이처럼 포교시 자주 접하는 道나 인류사 각종 경전에서 인용되어 사용되는 道의 궁극적인 실체는 바로 카발라의 10광 22길(道)로서 바로 이 생체 광케이블 속에 유영하는 영혼이라는 DNA가 움직이는 길(道)의 원리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그 실체를 알 수가 없어 종교계 학계마다 제각기 道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였던 것이다.
용화세상 서클 이 예언문구를 통해 비로소 서 모가수가 자신이 직접 제작하였다고 하는 미스테리 서클은 실지 윤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천상에서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든 진리를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로일지라도 즉시 알아보는 영적 눈을 지닌 존재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대개 이미지라는 것은 종국적으로는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키지만, 그 출발점은 실재를 반영한다는 점 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륜성왕이라는 개념의 실체는 이 상징과 이미지의 외피를 벗겨 내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7보에 대한 경전의 설명은 전륜성왕이 통치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이후에나 나타날 수 있는 칭송과 찬탄이 점차 하나의 상징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상징의 표현방식과 용어의 선택은 총체적 측면에서 그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선택되 었을 것으로 보며, 이미지화의 진행과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상징과 이미지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엔가 전륜성왕이 되는 조건으로 자 리매김 하는 논리의 도치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이러 이러한 통치자가 전륜성왕이다’에서 ‘이러 이러한 조건을 갖추면 전륜성왕이 된다’라는 논리 의 전환이 일어났을 것이고, 이러한 도치현상은 어렵지 않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미 이 7보에 대하여 ‘통치가 그 자체의 본래적인 존재 이유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하여 통치자 가 갖추어야 할 중도의 원리에 입각한 물심양면의 조건들’이라고 두리 뭉실하게 정의한 바 있다.
18) 본고에서는 이 7보 하나 하나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들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7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륜보이다. 전륜성왕이라는 명칭도 이 금륜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금륜보는 보름달이 뜰 때 홀연히 궁전의 허공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를 본 왕은 자신이 전륜성왕임을 깨닫고 이 윤보를 시험해 본다.
금륜은 동서남북 방향으로 차례로 굴러가고, 각 방면의 소국 왕들은 바퀴의 뒤를 따르는 전륜왕에게 전 쟁이나 저항 없이 차례로 자신의 국토를 바치며 항복을 선언한다.
이렇게 4천하를 통일시킨 왕은 무력이나 위협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법(dhamma)으로 지배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경전들의 내용이다.
19) 더 나아가서 붓다는 전륜성왕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것은 곧 법”이라고 대답한다.20)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 금륜을 대체로 “보편성 또는 보편적인 진리”21) 혹은 “법치의 상징”22)등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인도철학이나 불교학적 관점에서 연구된 이러한 결과들이 사회과학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불전의 문학적인 표현형식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붓다가 행한 최초설법을 전해주는 유명한 초전법륜 기사23)에서 금륜의 해석문제에 중요한 시 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붓다가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하고 실천하는 것을 불전들에서는 ‘법륜을 굴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법의 바퀴’나 그것을 ‘굴린다’고 하는 개념은 현상과 사실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대단히 추상적인 은 유적 표현이다.
금륜에 대한 기사도 법륜에 대한 문학적 표현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져야 타당할 것이다.
붓다는 존재와 현상에 대한 총체적인 자각을 통하여 붓다가 되었고, 이 자각된 진리를 타인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 즉 설법을 함으로서 그 자신과 그의 법이 사회성을 획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내용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법륜의 굴림’이다.
이렇게 볼 때, 붓다가 법륜을 굴리는 것과 전륜성왕이 금륜보를 굴린다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애에 기초 된 자비심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기 위한 강력한 실천으로 연결됨을 상징하는 기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금륜의 출현을 보고 자신이 전륜성왕임을 알았다는 표현은 정각의 성취로 붓다가 되었음에 비견되는 표현이다.
따라서 금륜의 출현은 통치라는 현상의 본질과 존재이유에 대한 왕 자신의 투철한 내면적 자각을 문학 적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또한 그것을 굴려서 명실상부한 전륜성왕이 된다는 것은 붓다의 초전설법의 의미와 동일한 형식을 갖 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붓다에게 있어서는 깨달은 진리와 일치하는 삶이 법 바퀴의 굴림이라면, 통치의 본질과 존재이유에 대한 내면의 자각과 일치되는 통치행위를 전륜성왕의 바퀴 굴림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금륜에 대한 경전상의 설명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징적 표현의 구체화 혹은 이미 지화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2) 백상보의 성취에 대한 경전의 설명은 전륜성왕이 이른 아침에 정전에 앉으니 홀연히 털이 흰 코끼리 인 상보(象寶)가 나타났고, 왕은 이것을 타고 이른 아침에 성을 나가 4해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밥 때에 돌아 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감마보 역시 정전에 앉아있는 전륜성왕 앞에 감청색으로 붉은 갈기와 꼬리를 가진 마보가 홀연 히 나타난다.
왕은 아침 일찍 이 마보를 타고 성을 나가 4해를 돌아다니다가 식사 때에 돌아와 “이 감마보는 참으로 나의 상서(祥瑞)이다.
나는 이제 참으로 전륜성왕이 되었도다”라고 말하며 기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백상보와 감마보는 탈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능도 거의 같은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징의 이미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전의 설명 중에 사용된 ‘흰 코끼리’ ‘이른 아침’ ‘성을 나가’ ‘4해를 돌아다니다가’ ‘식사 때에 돌아왔 다’ ‘참으로 전륜성왕이 되었다’ 라는 등의 표현들에서 이들 상징의 의미를 도출할 수 있는 단서가 함축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흰 코끼리는 위엄을 갖춘 왕의 탈 것, 이른 아침은 나태하지 않고 부지런함을, 성을 나간다 함은 왕의 시야가 왕궁 안의 향락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점을, 4해를 돌아다닌다 함은 자신의 통치하에 있는 모 든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배려함을, 식사 때는 구체적으로 어느 식사 시간인 불분명하지만 내용상 아침 식사 때로 보이며 이는 업무처리가 매우 능숙하고 신속함을, 전륜성왕이 되었다 함은 ‘전륜성왕으로서 의 일을 제대로 수행했다’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상의 의미들을 내적 일관성이 이루어지도록 연결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엄과 권위를 갖춘 왕이 왕궁 안의 안락함에 빠져 향락을 즐기거나 나태해지지 않고, 자신의 통치영역 (지역과 업무가 다 포함된)에서 소외된 부분이 없도록 통치자가 수행해야 할 일들을 부지런하고 신속하 게 잘 처리할 때 명실상부한 전륜성왕이 된다는 의미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통치라는 현상의 본질과 존재이유를 자각하고, 이 자각의 내용에 어긋나지 않는 통치를 하는 통치자를 전륜성왕이라고 한다는 의미가 된다.
백상보와 감마보는 이러한 의미의 상징적 표현을 위한 기재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3) 신주보는 바탕과 빛깔이 투명한 길이 1척 6촌의 정교한 8면체 보석이라고 한다. 이 보석 역시 홀연히 전륜성왕 앞에 나타난다.
왕이 신주를 시험해 보자 신주의 광명이 너무 밝아 사람들은 밤을 낮으로 알고 일어나 일을 하였다는 설명이다.
신주보의 광명은 통치의 내용과 절차가 공명정대하면 통치자의 위덕이 매우 높아지게 됨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러한 위덕은 피치자들로부터 강제나 조작이 아닌 완벽한 신뢰와 지지를 받게 되는 것임을 강 조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주보는 상징이고 모양에 대한 설명은 상징의 이미지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는 앞의 세 가지 상징과 마찬가지로 역으로의 해석도 가능하다.
어떤 통치자가 전륜성왕으로 불러지기를 원하거나 그러한 지위를 얻고자 한다면, 그의 통치 내용이 피치자들로부터 ‘밤을 낮이라고 해도’ 그대로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 전륜성 왕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미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옥녀보는 여인에 대한 묘사처럼 보인다. 왕 앞에 홀연히 나타난 옥녀보의 모습은 얼굴빛은 조용하고 얼굴은 단정했으며, 말씨는 유연하고 움직 임은 조용했으며 먼저 일어나고 늦게 앉아 마땅한 법칙을 잃지 않았다.
이에 전륜성왕은 그것을 보고도 애착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옥녀보에 대하여 ‘왕비’24) 혹은 ‘비서실 혹은 여성 조력자’25)등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이는 언어적 해석으로는 매우 타당성이 높은 해석이지만, 사회적 유대를 함축한 상징으로의 해석을 위해서는 다른 차원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옥녀보 역시 전륜성왕의 통치와 관련된 하나의 상징적 언어이다.
필자는 옥녀보에 대한 경전의 기사들을 도덕적인 사회의 건설이라는 통치의 목적과 관련하여 검토되 어야 할 상징적 표현으로 생각해 본다.
불전들에서 지적하는 도덕적 타락의 원인은 대개 절도와 성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옥녀보에서는 특히 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이상적인 통치자 가 ‘되기 위한 조건’ 혹은 ‘수행해야 할 직무’임을 암시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첫째, 옥녀보의 용모나 말씨 그리고 행동거지에 대한 설명 중 어디에도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거나 절세의 미인이나 욕망에 사로잡힌 여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단정하고 근면하며 잘 절제된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왕 자신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도 애착을 일으키지 않다는 설명 때문이다.
성도덕의 문란은 그 원인이 양성에 동시에 귀착되는 문제이다.
여기서 왕을 성도덕 문란의 다른 한쪽 당사자인 남성을 통칭하는 용어로 가정해본다면, 이 부분은 남성 들이 여성을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우해야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따르지 않는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해석의 타당성은 다른 경전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국왕의 윤리적 덕목인 10선덕 중 다섯 번째 항목이 “국왕은 남의 여자를 탐하지 말고 자기 아내만을 보 호할 것”26)이라고 한 것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도덕적인 사회 건설을 위한 국왕의 솔선수범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 국가의 쇠퇴함을 방지하는 도덕성의 척도를 ‘여성과 이방인에 대한 예절에 맞는 행동’27)으로 평가한 것도 동일한 논리적 맥락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대목이다.
따라서 전륜성왕 통치의 기준으로 그 사회의 도덕적 건강성이 하나의 지표가 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옥녀보는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 조건 혹은 전륜성왕의 치세임을 증명하는 도덕적 차원 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거사보는 재정을 비롯한 경제와 관련된 상징으로 보인다. 거사보는 ‘그것이 나타나자 보배 창고에는 저절로 재부가 가득했다.
거사는 땅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을 훤히 다 알고, 주인이 없는 보물의 자리를 다 알았다.
주인이 있는 것은 잘 지켜주고, 주인이 없는 것은 가져다 왕이 쓰도록 공급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 거사보는 장자보(長者寶), 주장보(主藏寶), 주장신보(主藏臣寶) 등의 다른 명칭으로도 불러지는 이유 때문에 자산가, 재무관, 출납관 또는 보물 관리자 등으로 해석되고 있다.28)
붓다의 가르침은 진리에 대한 개인의 자각을 통한 인류의 정신적 발전에 관한 문제였지만, 사회적으로 인간 삶의 몇 가지 조건을 개선하는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적 비열함은 빈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아와 빈곤의 극복 그리고 질병의 치료와 환자의 간호 등을 중요한 주제로 한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정치적 방법은 통치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때문에 그는 통치자들에게 ‘노인과 고독한 사람들을 잘 받들어야 할 것이며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움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29)
노인과 고독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이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자금은 과도한 세금이나 양민에 대한 수탈 혹은 전리품에 의하여 조달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에 대한 염려는 이미 “국왕은 법으로서 재물을 거두고 비법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앞에 서 언급된 10선덕에 포함된 경계의 대상이었다.
‘땅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을 훤히 다 안다’는 구절은 경제의 흐름을 안다는 뜻이고, ‘주인이 있는 것’과 ‘주인이 없는 것’을 구분함은 지켜주어야 할 사적 소유물과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재물에 대한 구분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물이 있는 자리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창출된 부인 국리(國利)는 인민의 복지(民福)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 이다.
경제적 조건의 개선이 도덕적인 사회의 건설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여러 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다.
때문에 훌륭한 통치자의 치세에는 ‘農夫에게는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고, 상인에 게는 자본이 제공되어야 하며, 고용자에게는 적절한 임금과 급료가 지불되어야 하고, 재정적인 어려움 에 처한 사람에게는 면세의 혜택이 주어야 한다.’30)고 가르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전륜성왕의 능력과 유기적인 관련을 갖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주장보는 외부의 조력자일 수도 있지만 통치자 자신의 내면에 준비되어 있어야 할 백성들을 궁핍하지 않게 할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경제의 운용과 관련된 통치자의 국가경영능력이 주장보가 상징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주병보는 지도자, 지휘관, 안내자 등과 동일한 어원을 가진 말이고, ‘지모가 있고 용맹하며 능히 사병(四兵)을 다스린다’는 설명 때문에 대체적으로 군사 지휘관, 장군 등으로 해석된다.31)
만약에 이 주병보에도 어떤 상징성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면,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바로 도덕적인 사회건설에 도전하는 장애물에 대한 방어기재로서의 힘의 상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굴러가는 금륜보를 따라가는 전륜성왕의 무리에는 사병(四兵)이 동행한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도덕적 정당성이 곧 바로 현실적 정당성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도덕적 정당성을 실천?유지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함부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힘이 없이 이러한 일을 행한 결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전륜성왕의 통치 영역에서 외침이나 내부 분열, 반란, 치안의 혼란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억지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전륜성왕의 치세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륜성왕은 이러한 일들의 발생을 사전에 제어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만약에 발생한다면 신속히 해결해야 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 주병보라고 생각된다.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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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三佛十勝會 원문보기 글쓴이: 박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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