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7.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오전미사
♣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
여러분 축구 관심이 없으시죠? 우리나라가 32강에 올라갈지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은 그 집단을 엄청난 위험으로 빠져들게 한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으로 들어가 보면 오늘 독서는 애가에요. 애가라는 거 들어보셨습니까?
애가가 뭐예요? 애가가 뭔지, 애가는 슬픈 노래, 비가, 슬픈 노래예요.
그런데 오늘 이 애가를 전혀 못 알아들었다면 어제 미사에 오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어제가 열왕기, 2주 동안에 계속 읽는 독서로 열왕기를 읽어가는데 열왕기가 어제 끝나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어제 독서를 읽어야지만 오늘 이 독서가 이해가 되는 거죠.
어제 이스라엘은 속된 표현으로 끝장 났어요. 끝장 났어요.
야훼 하느님의 뜻에 따르지 않았어요.
예레미야가 그렇게 외쳤는데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치드키야는 이집트에 조공을 바치면서 새로운 강대국 바빌론을 무시해 버립니다.
바빌론의 황제 네브카드네자르는 화가 단단히 났어요.
그리고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초토화시켜 버립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가지고 있던 건물 그 어떤 것도 그 위에 올려진 게 없어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완전 파괴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된 거예요.
그리고 네브카드네자르는 자기 심복을 시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치드키야 왕의 모든 아들들을 줄 세워놓고 잔인하게 죽여버립니다.
그런 다음 그 왕은 눈을 뽑아버리고 두 눈을 다 뽑아버리고 개목줄로 엮어서 자기 나라로 데려가서 노예로 삼은 거예요. 이게 바빌론 유배, 이게 기원전 BC 587년의 일이에요.
다윗 왕조로부터 400년을 이어온 이스라엘은 이렇게 끝장났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이스라엘은 2천 년 동안 나라가 없는 존재가 된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에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떠난 거예요. 어디를 가든 떠나서 자기네 공동체를 만들어서 회당에서 자기네 집회를 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2천년 동안 나라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망가졌어요 완전히 초토화됐어요.
이 사실을 알아야지만 오늘 애가를 알 수 있어요.
오늘 애가를 보니까 애가의 저자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가진 것을 보고 그는 울부짖는 거예요. 이스라엘 처녀 딸 시온, 여기서 딸이라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여성, 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도시를 의미한다는 것도 참고로 알아두세요. 성경을 읽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도시, 예를 들어 뉴욕 아니면 워싱턴 아니면 서울 이런 서양 사람들은 도시를 여성으로 표현해요. 레이디라고 표현해요. 뉴욕 레이디, 여성으로 표현한다는 거 이거 참고로 알고 계시고요.
성경을 읽을 때 여러분 도움이 되실 거예요. 성경은 서양 사람들은 도시를 여성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쉬 이즈 〇〇〇.(She is 〇〇〇.) 그런데 그 쉬(She)가 구체적으로 한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쉬는 뭐예요? 한 도시를 의미할 수 있는 거죠. 이것은 소설, 그런데에 그렇게 많이 표현되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 미사 오니까 이런 소리도 듣지 어디 가서 이런 소리를 들어요?
서양 사람들은 도시를 여성으로 표현했다는 겁니다.
처녀 딸 시온아, 너를 무엇에다 견주어 위로하랴? 누가 너를 낫게 하리? 그리고 종국에는 하느님까지 조롱 당하는 거예요. 탄식이 염증처럼 퍼지고 있어요. 모든 게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거예요. 사멸과 싫증과 병고와 죽음과 이별과 증오가 온 이스라엘에 가득 찬 거예요.
그래서 오늘 에가의 저자는 통탄하면서 이스라엘의 현실을 애가, 슬픈 비가를 부르는 장면이 오늘 독서의 내용입니다.
자, 제 설명을 들으신 다음에 다시 한 번 읽어보실래요? 애가서를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달라질 겁니다.
어떤 건지 어떤 시절에 이 애가를 기록한 건지, 처녀 딸 시온은 이렇게 망가지는지.
결국은 에가는 끝부분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딸 시온아 쉬지 말고 너희는 통곡하여라 그리고 네 손을 들어올려 야훼 하느님을 향하라. 라는 것이 오늘 독서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우리가 삶이 완전히 망가진 이 도시, 이 시온의 땅을 다시 살리려면 쉬지 말고 통곡하고 그리고 네 손을 들어올려라 라는 말이 오늘 독서의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구조는 이렇게 된 겁니다. 에가가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한 거예요.
통곡하는 이스라엘을 먼저 드러냈고요. 이것의 답을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항상 정답을 찾잖아요.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이 망가진 것을 어디에서 회복시킬까 라고 할 때 오늘 복음이 그 정답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벼랑 끝에 몰렸던 이들이 구원을 체험하는 장면이 오늘 복음이죠.
제가 읽어 볼께요.
마태복음 8장 13절,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마태복음 8장 15절, 베드로의 장모에게 손을 대시니 열이 가셨다.
마태복음 8장 16절, 그 수많은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사람들을 고쳐주셨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 계신 그 메시아가 이 땅에 옴으로 인해서 삶의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많은 이들이 구원을 체험하였다 라고 알려주는 내용이 오늘 복음의 내용이죠.
백인대장의 이야기는 더 드라마틱해요.
집권국의 장교 백인대장이야. 로마인 그것도 로마인의 장교입니다. 군인 장교.
그런데 식민지 패전국의 떠돌이에게 오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요. 그러면서 이 사람의 말이 너무나 놀라워요.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저는, 저 같은 사람은 예수님 당신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저의 종이 낫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믿음이다 라고 백인대장을 칭찬하는 장면이 오늘 등장하는 거죠.
이 백인대장의 고백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니에요? 어디서 들어봤죠?
뭐라고요? 비맞은 중처럼 중얼중얼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디서 들어보셨죠? 여러분?
오늘 미사 때 사제가 성체를 높이 들고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그러면 여러분 뭐라고 대답하셔야 합니까? 비맞은 중처럼 얘기하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뭐라고요?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라고 여러분 말씀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이 오시고 그분께 대한 전적인 신뢰가 우리는 삶의 벼랑 끝에 몰렸던 많은 이들이 구원을 경험하고 체험하게 된다 라는 그 해답이 오늘 복음에 저는 가득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밌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끝낼까 합니다.
어느 작가가 책을 쓰는데 책이 팔리지가 않아요. 초판을 냈는데 초판도 거의 전혀 팔리지가 않아서 그대로 묵혀 있어요.
그런데 건강검진을 했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거예요. 죽는대요.
2개월 3개월 뒤에 죽는대요. 그래서 그는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그 많은 책들을 지역 도서관에 기증합니다.
물론 그 안 팔린 책도 같이 기증했겠죠. 그 지역 도서관에 다 기증을 한 거예요.
그리고 그는 죽었습니다.
몇 달 후에 어떤 사람이 그 안팔린 책을 빌려간 거예요. 그런데 계속해서 읽고 마지막 장, 끝장 그 책의 마지막 장에 이상한 게 적혀 있는 거예요.
작가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가 적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어요.
자기 생각에 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빌려가서 끝까지 읽었다면 당신에게 선물을 드린다.
내 남은 재산 모두를 당신께 드립니다 하고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가 적혀 있는 거예요.
그 책을 끝까지 견디며 읽은 그 사람은 요즘 말로 말하면 횡재를 맞은 거겠죠.
아니, 기쁨을 얻은 거죠. 축복을 받은 거죠. 구원을 받은 거죠.
그 작가가 이건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
내 책을 그러니까 그 책을 끝까지 읽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거죠. 그 마지막 장에 자기 계좌번호하고 통장 비밀번호를 적어놓고 남은 재산 모두를 당신께 드립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는 것이니 끝까지 그분께 향할 때 우리는 축복의 삶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 수 있을 거다 라는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부탁드리는데 오늘 애가서를 어제 독서 열왕기 마지막 부분과 함께 있으면 조금 더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면서 그 뜻을 더 잘 알게 될 거다 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아멘.
**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과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