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없이 강한기업이 있다. 충북에선 드물게 동종업계 국내 정상급 기업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청주에 본사가 있지만 경기도 안양사옥과 수원사무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 그런데도 청주본사를 고집하는 기업이다. 종합엔지니어링업체인 (주)홍익기술단 얘기다. 올해로 창업 25년을 맞는 홍익기술단은 업계 대표적인 '우량기업'이다. 수년째 이어지는 건설침체로 관련업체들이 고전하고 있지만 홍익기술단은 '무차입경영'과 '두자릿수 당기순이익'으로 건설엔지니어링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 이면엔 이 회사 대표이사인 성낙전(59)사장이 있다. 그는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들을만큼 창업이후 건설엔지니어링이라는 한우물만 파면서 홍익기술단을 동종업계 '불루칩'으로 키웠다.
대전 둔산에 거주하는 성사장은 새벽 5시에 기상한다. 청주 본사엔 본사직원중 가장 빠른 7시30분에 출근한다.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하지만 수원과 안양사옥은 물론 전국에 산재한 사업장에 방문하다보면 밤늦게 귀가할때도 많다. 지난 25년간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는 한결같은 '라이프사이클'로 회사를 반석위에 올려놨다. 그 성사장이 25일 서울 임페리얼펠리스호텔에서 열리는 건설기술인의 날에 국토교통부로부터 산업포장을 받는다. 개인이 산업포장을 받는것은 건설기술인으로서 흔치않은 영예다. 하지만 그에겐 더 큰 보람이 있다. 기부와 봉사다. 그는 1억원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티 회원이기도 하다. 법무부 법사랑위원 청주연합회장과 청주공고 총동문회장을 맡아 보이지않게 선행을 베풀고 있다.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이 몸에 뱄지만 고향을 위해선 통크게 쓰고 있다.
-국토교통부로 부터 산업포장을 받게됐다. 건설기술인이 개인적으로 받는것은 흔치않은일이라고 들었다. 감회가 새롭겠다.
"건설엔지니어링업계에선 경험있는 기술인이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문에 동종업체가 4천개에 육박한다. 홍익기술단은 상위권 기업이지만 특히 도로설계분야에선 자타가 인정할 만큼 우수한 인력도 많고 기술력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당기순이익만큼은 업종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수준일 정도로 경영이 내실있고 회사 이미지도 좋다. 창업이후 지난 25년간 단 한번도 적자를 내본적이 없을 정도다. 이같은 점을 감안해 한국건설기술인협회에서 추천한것 같다. 건설기술인의 한사람으로서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하다"
-청주공고 전기과를 나왔는데 충남대에선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특별한 사연이 있나.
"토목공학을 전공해 사업을 일으켰으니 내겐 운명같다. 난 어머니가 45세때 태어난 늦둥이다. 음성중을 졸업하고 인문계고교를 가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됐다. 집안에 농사를 거드는 일꾼이 둘이나 있는 살만한 집안이긴 했지만 대가족에 사촌형제까지 학생이 7명이나 됐다. 어머니 권유로 할 수없이 공고에 진학할 수 밖에 없었다. 고교시절에는 진학반에 들어가 대학에 들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수를 하던 집안어른이 나의 의견도 듣지않고 충남대 토목과에 입학하라고 했다. 결국 나는 고교도, 대학도 나의 의지대로 간것이 아니다. 그러나 토목공학과를 나와 건설엔지니어링업체를 경영하고 있으니 적성에는 맞는것 같다"
-30대에 회사를 창업했다. 비교적 이른나이에 청주에서 홍익기술단을 설립한 배경은 무엇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삼안기술공사에 취직해 도로설계를 맡았다. 8년정도 다니다가 잠시 건설엔지니어링회사를 동업으로 설립했다가 그만두고 1990년 대전 용전동에서 홍익기술단을 창업했다. 내나이 30대 중반이었으니 일찍 사업에 뛰어든것이다. 청주로 옮긴것은 당시 건설업계에 지역제한이 있어 대전, 충남, 충북, 경기도중 한곳을 선택해야 했다. 고민하고 있는데 외사촌형인 민태구 충북지사와 집안간인 민형근 충북은행장이 충북에서 사업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청주시 가경동에 본사사옥을 짓고 이전했다. 만약 신도시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SOC사업도 많았던 경기도로 옮겼으면 사세는 훨씬 커졌을 것이다"
-회사를 설립하고 초창기엔 어려움도 많이 겪었을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힘든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고급기술자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주로 수도권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회사가 도로설계분야에선 국내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들어갈 정도이고 전국적인 공사를 많이 수주해왔지만 본사가 청주에 있으면 아무래도 우수한 기술인력을 충원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지금은 수원은 물론 안양에도 요지에 큰 사옥이 있어 청주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설계와 감리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홍익기술단은 매출과 순익, 인력면에서 모두 동종업계 국내 정상급이다. 사업장도 전국각지에 폭넓게 분포돼있고 회사도 청주와 안양등 세곳에 있다. 본사를 옮기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회사가 어느정도 규모가 되면 청주에 있기 어렵다. 홍익기술단은 임직원이 330명이고 기술사만 67명이다. 청주본사엔 주로 관리직원이 있고 대다수 설계·감리파트 인력은 안양에 있는 경기지사와 전국 각지의 60여곳 현장에 있다. 이때문에 본사이전문제도 고민하지 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생각을 버렸다. 소비자를 상대로한 기업도 아니기 때문에 본사가 청주에 있다고 불편한것은 없다"
-장기적인 건설경기 침체로 건설관련업종이 어렵다. 건설엔지니어링 업계도 마찬가지다. 홍익기술단의 미래는 어떤가.
"SOC사업이 줄어들면서 건설엔지니어링분야도 불황이다. 앞으로 정부가 복지분야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 건설경기가 좋아지긴 힘들것이다. 하지만 홍익기술단은 내실있고 짜임새있게 경영해왔다. 나는 비서도 두지않고 있다. 사장실도 소박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불필요한 경비는 쓰지 않는다. 이때문에 매출대비 당기순이익을 17%이상 낼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회사의 매출을 올리기보다 사업을 다각화하고 알차고 건실하게 이끌어가는데 포인트를 맞출 계획이다"
-성 사장은 1억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티 회원이기도 하다. 법무부 법사랑위원 청주연합회장과 충청남도 선거관리위원, 청주고 동문회장을 맡고있는등 사회적인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역에서 오래 사업을 하다보니 자의반 타의반 이런저런 자리를 맡게된다. 무엇보다 고향이 충북(음성)이다 보니 외면하기도 힘들다. 개인사업을 25년 했으면 연령적으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할 시기인것 같다. 아너소사이티 회원이 된것은 사업가인 지인과 대화하면서 그동안 회사이름으로 기부를 해왔지만 개인적으로 기부하는것도 뜻깊을 것 같아서 회원이 됐다. 힘있을때 몇년동안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직업을 망각하지는 않겠다. 아직은 회사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사회활동이다"
-성 사장은 그동안 장학금으로 쾌척한 돈만 1억원이 넘는다. 얼마전엔 무심천 갈대밭에 불을 지르고 도주하던 60대 남자를 붙잡은 청주공고 학생들에게 청주지검에선 표창장을 전달하고 성 사장께서는 장학금을 전달했다.
"홍익기술단을 통해 기부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법사랑위원 청주연합회장을 맡으면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것 같다. 특히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잘하거나 불의에 앞장서는 정의감있는 청소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을 준다면 큰 보람이 될것이다. 기부와 봉사는 결국 내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하는거다"
성사장은 한때 '은둔형 기업인'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내미는 것을 싫어했다. 이때문에 회사규모에 비해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기부에 적극적이고 사회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가 변한것은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사랑도 남다르다. 신지식인 1호인 음성의 고추박사 이종민씨로부터 음성청결고춧가루를 구입해 주변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 돌리는 것은 하나의 예다. 고향 농특산물을 홍보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다. 성사장 사무실 벽에는 방의여성(防意如城)이라는 글이 씌어진 액자가 걸려있다. '마음속에 품고있는 생각(뜻)과 바람(야망)을 막기는 성벽같이 해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말은 '늘 처음처럼'이라고 했다. 초지일관 한결같은 자세가 오늘의 성낙전 사장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JBn 파워인터뷰^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