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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전대 Grip 정기교류전>
1984년 9월 23일 아침 나는 약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테니스 가방을 챙겨서 지산동 하숙방을 나와 용봉동 전남대학교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전남대 테니스 써-클 Grip과의 정기 교류전이 있는 날이다. Grip과의 정기 교류전에서 나는 7기 K선배와 남자복식 게임선수로 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 열린 써-클 대항 체육대회에서 흥사단 Academy 축구시합에서 상대팀 선수의 축구화에 오른쪽 발을 밟혀 발가락을 다쳤다. 다행히 골절상을 입은 것은 아니였으나 타박상으로 발이 부어 운동화를 겨우 신을 수 있을 정도였다. 써클대항 체육대회에서 다친 발은 일주일 동안 치료를 했으나 붇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 오늘 시합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전남대 후문에서 내려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조선대하고 다른 또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산중턱 있는 본관과 공과대의 높은 건물, 그리고 아직도 공사중인 거대한 체육관 건물 등 다소 거칠고 정돈이 되지 않은 날 것 같은 느낌이라면 전남대는 넓은 평지에 적당한 높이의 각 단과대학의 건물과 아담한 정원, 그 정원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조화롭게 배치가 되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설계된 캠퍼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대 Grip 중앙코트를 처음 봤다. 코트 12면이 양쪽으로 6면씩 일률적으로 배치가 되어 다소 삭막하면서도 알 수 없는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기운이 한곳으로 모아지는 느낌 보다는 흩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반해 우리 쿠스타 코트는 4면이 기하학적으로 배치가 되어 있고 거기에 등나무와 어우러져 제법 운치도 있고 사람들은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쿠스타 코드가 더 매력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친 발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 1번 코드로 가니 Grip 회원이 있었다. 얼굴에 화상흉터가 있는 회원이었는데 Grip 6기라고 했고 나하고 같은 학년 이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잠깐 워밍업 랠리를 하는데 다친 다리는 마취 효과 때문인지 뛸 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 회원들도 하나둘 모이고 10시 즈음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개회식은 양측회장 인사말, 두 지도교수님 격려사가 있었고 춘계교류전에서 승리한 쿠스타가 보관하고 있던 우승컵을 내가 대표로 반환을 했다. 나는 1학년 학기초 가입만 한 후 써-클 생활을 많이 하지 않아서 쿠스타 코트에서 개최한 Grip과 교류전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잘 몰랐다.
개회식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교류전 경기는 3단(남자단식 2경기, 여자 단식 1경기) 4복(남자복식 2경기, 여자복식 1경기, 혼합복식 1경기)으로 총 7 경기를 하는 형식이었다.
우리 쿠스타는 아래와 같이 선수를 구성하여 출전을 하였다.
- 남자단식 : 2기 A선배 / 7기 B선배
- 남자복식 : 7기 N, C선배 / 7기 K선배, 나
- 여자단식 : 6기 A선배
- 여자복식 : 7기 K, B선배
- 혼합복식 : 3기 A, 6기 K선배
나는 파트너인 7기 K선배와 시합이 진행되는 2번 코트에서 Grip 남자복식 선수를 기다리는데 아침에 나하고 인사를 주고 받고 랠리를 잠깐 했던 얼굴에 화상이 있는 회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친구는 약간 변칙적 스타일이었고 만만치 않는 실력자였다. 상대 선수는 공에 힘이 있었고 내가 다소 밀리는 것 같았지만 대신 실수가 잦은 편이었다. 몇 차례 랠리는 주고 받은 후 파트너인 7기 K 선배가 나한테 어떻냐고 물었다. 나는 해볼만 하다고 대답을 했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양측이 토스를 한 후 우리가 먼저 서브권을 가지게 되었다. 7기 K 선배가 나에게 먼저 서브를 할거냐고 물어와서 내가 먼저 서브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첫 서브로 상대의 기세를 꺾을 필요가 있었다. 첫 서브를 넣으려고 상대의 리시브 위치를 보니 왼쪽 코트 중간 즈음 서 있었다. 나는 평상시에 상대편이 저 정도위치에 있을 때 상대방의 포핸드 쪽으로 빠져 나가는 서비스를 넣어서 포인트를 따낸 경험과 감각이 있었다. 나는 최대한 그 기억과 감각을 살려 상대 포핸드 코스로 서브를 강력하게 넣었다. 상대방은 포핸드 쪽으로 들어오는 서브를 리턴하려고 라켓을 뻗었으나 미쳐 손쓸 틈도 없이 빠져 나갔다. 서브 에이스였다. 우리팀 응원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나왔다.
그런데 심판이 Fault 선언했다. 나는 심판에게 확인요청을 하는 이의제기를 했다. 심판이 내려가서 확인을 한 결과 정확히 라인 반쯤을 맞고나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득점을 얻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고 내가 서브를 넣으면 노련한 7기 K 선배가 발리로 득점을 따냈다. 자신감이 생긴 우리팀은 게임 스코어 3:1까지 앞서 나갔다. 7기 K 선배도 좋은 서비스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K선배와 호흡이 잘 맞아 더욱 자신감이 생긴 반면 상대는 어이없는 실수를 연발 했다. 7기 K 선배와 나는 게임스코어 6:2까지 앞서 나갔고 그렇게 게임이 끝나는 줄 알았으나 1세트 8게임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미 승부는 기운 상태였고 그렇게 K선배와 나는 최종 게임 스코어 8:3으로 첫승을 쿠스타에게 안겼다.
우리 응원단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질렀다. 우리 응원단 속에 노란색 반팔 셔츠를 입은 동기 J도 웃으면서 박수 치는 모습이 보였다. 7기 N선배, 3기 O선배, 3기 J선배 등 대 선배들이 연거푸 악수를 청하며 수고했다고 하면서 축하를 해줬다.
그리고 나는 내 게임에 집중하느라 인접 코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른 게임 상황을 알 수가 없었는데 인접 코트에서 열린 여자단식, 여자복식에서 패배를 했다. 그리고 2기 A선배 남자단식에서 패했고 우리팀의 에이스였던 7기 B선배가 마저 남자단식에서 연거푸 지고 말았다. 특히 7기 B선배는 4:0까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연이어 게임을 내주더니 결국 Tie-Break 까지 가서 지고 말았다. 정말 아쉬운 경기였다. 남은 혼합복식, 남자복식 한 경기를 이기더라도 이미 4게임을 내줬기 때문에 전체 게임 스코어는 3:4로 지는 경기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혼합복식에서 3기 A 선배가 오랜만에 게임을 해서 인지 샷 실수가 자주 발생하면서 게임을 내주었고 남은 남자 복식은 7기 N선배 C 선배가 월등한 기량으로 승리했으나 전체 게임스코어를 바꿀수는 없었다. 결국은 전체 게임스코어는 2 : 5로 Grip의 승리로 테니스 본 시합이 종료가 되었다. 이어진 유망주 게임에서는 여자복식 8기 K동기, C동기가 아쉽게 졌지만 남자복식에서는 8기 S, O 동기가 출전했다. 동기 S와 O는 본 경기에 출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전적 6:0으로 한게임도 내주지 않고 원사이드 하게 이겨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모든 게임이 끝나고 양쪽 써-클 맴버들은 잔디밭에 둘러 앉아 Grip 측에서 준비한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양측은 소프트볼 게임, 발야구게임과 레크레이션을 하면서 즐거운 모습들이었다. 나는 레크레이션 도중에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전대 Grip에게 져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고 즐겁게 레크레이션 하는 자리가 왠지 불편했다. 다소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캠퍼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점심때 먹은 술 때문인지 그늘진 잔디밭에 잠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정도 흘렀는지 갑자기 눈이 떠졌다. 9월의 푸른 하늘,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셔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흔들거렸다. 마치 카뮈에 소설<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가 바닷가에서 태양이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아랍인에게 권총을 쐈던 장면이 이런 상황이었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후 Grip 코트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나고 양쪽 회원이 다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대열에 합류를 했다. 이윽고 폐회식이 거행되었다. 게임 결과가 발표될 때 마다 이긴쪽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들렸고 우승컵은 전대 Grip 쪽으로 넘어갔다. Grip 회장이 우승컵을 들자 Grip 회원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엇다. 그렇게 폐회식이 끝나고 어느새 날이 어둑해질 무렵 회원들은 전대 대운동장옆 잔디밭에 둘러앉아 뒤늦게 준비해온 술과 안주를 먹으며 뒷풀이를 했다. 한쪽에서는 일명 “빤스게임”를 하면서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7기 B선배가 잔디밭에 한손을 얼굴을 가린 채 누워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았다. B선배는 오늘 남자단식에서 4:0으로 리드를 하고 있다가 아쉽게 게임을 내주었던 선배였다. 나는 옆에 가서 B선배 어깨를 흔들며 “선배님 여기서 뭐하세요?” 하면서 깨웠다. B선배는 눈을 뜨며 나를 쳐다 보더니 “너 오늘 게임 아주 잘했다. 내년에 전대 Grip하고 교류전때는 꼭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열심히 해라” 하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대답 대신 피곤해서 B선배 옆에 잔디밭에 잠깐 누웠다. 어두워진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빛이 1년동안 간 거리를 1광년 이라고 했다. 지금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멀게는 수만, 수억 광년의 거리에 있는 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별빛은 내 눈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시간동안 이미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을 터.. 지금 내가 보는 저 별빛은 저 별이 마지막으로 사라지면서 나 여기 살았었노라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사라져 버린 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주 먼 옛날 인간은 왜 자기가 살았던 동굴속에 벽화를 그렸을까? 나 여기 살았었노라고 자기의 존재감을 어떤 형태로는 남기고 싶어서 벽화를 남기지 않았을까? 먼훗날 나는 쿠스타에서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저 별처럼 자기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빛을 내는 존재일까? 아니면 이름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존재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누워 있는데 갑자기 “쿠스타 전체집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집합”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 모인 장소로 갔다. 가보니 회원 전체가 집합을 한 상태였다. 나는 뒷줄에 조용히 들어가 합류를 했다. 운동장을 비추는 라이트가 정면에서 빛을 내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집합을 시킨 선배는 2기 B선배였다. 이윽고 훈시가 시작되었다. 훈시의 요지는 그랬다. 오늘 Grip과 경기에서 보여준 쿠스타의 모습에 굉장히 실망을 했다는 요지였다. 테니스 게임에서도 지고 단체행동에서 사분오열 흩어진 모습을 보여서 이대로 행사를 마무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취지였다. 꼭 나한테 하는 질책 같아서 몸둘바를 몰랐다.
그리고 7기 회장 N 선배를 앞으로 불러냈다. 그렇게 밖에 회원을 통솔하지 못하냐 면서 발로 회장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N선배는 그대로 쓰러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일장 훈시가 이어졌다. 난 뒤에서 그 훈시를 듣고 있는데 무슨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행사를 종료를 해야 하나 생각에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일장훈시가 끝나고 앞으로 잘하자는 의미로 쿠스타 응원박수, 통과 박수가 이어지고 행사가 종료 되었다.
끝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교육부차장 동기 P가 나를 불렀다. 저쪽으로 가서 한잔 더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가보니 동기 교육부 차장 S, K가 있었다. 우리는 잔디밭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동기라는 것이 이래서 좋은 것일까? 우리 교육가 앞으로 들어오는 후배 교육을 잘 시켜서 내년 Grip하고 게임에서는 꼭 이기자는 다짐을 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테니스 라켓 가방을 둘러메고 전대 정문 앞에서 지산동 하숙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여자동기 J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나는 왜 아직 집에 안 갔냐고 물어보니 잠깐 나를 보고 가려고 기다렸다고 했다.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데 그때 마침 지산동 법원앞 하숙집으로 가는 3번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술도 먹고 피곤하니 다음에 이야기를 하자고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출발하는 버스 뒤 좌석으로 가서 앉아 뒤를 돌아보니 J가 우뚝커니 서서 멀어져 가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고 피곤한 탓에 버스 창에 기대어 흔들리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비몽사몽간에 바라보고 있는데 버스에서 도시의 그림자의 <이 어둠의 이슬픔> 이란 노래가 흘러 나왔다.
84년 전남대 Grip 교류전은 그렇게 아쉬운 막을 내렸다./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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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타
#조선대학교학생테니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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