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남(2004). 『교육학론』. 학지사.
제2장 교육학으로서 유학: 가르침과 배움의 여명 중 pp. 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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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교육학으로서 유학: 가르침과 배움의 여명
여명은 밤과 낮 사이를 가르고 태어난다. 그런데 교육과 교육학의 밤은 무엇이고, 낮은 또한 무엇인가. 밤과 낮 사이의 그 여명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천지의 탄생이 그렇듯이 신비하고 궁금한 일이다.
‘배우고 제때에 그것을 실천에 옮기니 즐겁지 아니한가, 글동무가 멀리서 찾아와 함께 배우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남이 내가 아는 바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참으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의 첫 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각주 1: 『論語』, 學而.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우리의 삶에서 ‘배움’[學]과 ‘실천’[習]은 함께 엮어지는 단어들이다. 배움과 실천이 함께 할 때 즐거움이 따른다. 스승 밑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배움은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배움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예기』에 이르기를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각주 2: 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 유가(儒家)들이 따르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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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학’이 무엇인가를 이르는 말들이다. 그것을 유학(儒學)이라 하였다. 동양에서 교육과 교육학의 여명이 시작될 때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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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정치가가 아니었다. 그는 봉건질서가 파괴되고, 사회적 혼란이 극도에 달하여 주(周)의 국세(國勢)가 쇠퇴한 춘추시대를 산 인물이다. 그의 이상은 주나라 초기와 같이 정치사회가 질서를 찾는 일이었다. 그는 정치활동에 뜻을 두었지만, 깨달은 바 있어 교육에 전념하였다. 교육을 통하여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이 정치사회의 질서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그가 태어난 노나라의 사적(史蹟)을 자료로 하고, 이에 윤리적 가치판단을 더하여 『춘추』라는 역사책을 편집하였다. 그는 책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언행에 관한 기록을 모아 출판한 책들은 많다. 이 책들은 후대에 유가의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삼았을 만큼 중요한 것들이었다. 유가는 ‘유’(儒)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유(儒)는 고대 중국에서 ‘선비’[士]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제전과 각종 의례와 교육을 관장하였다. 유(儒)는 오늘날 교사들의 모습이다. 유학은 이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그것을 이론화한 것이다. ‘유학’은 그래서 ‘교육학’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교육학이 기록해 두어야 할 중요한 역사다.
공자 이전 하(夏), 은(殷), 주(周) 시대에 유가들이 교과를 가르쳤다. 이 교과들은 육예(六藝)다. 육예는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다. [각주 3: 육예에서 예(禮)는 지켜야 할 도리, 악(樂)은 음악, 사(射)는 활쏘기, 어(御)는 수레몰이, 서(書)는 글쓰기, 수(數)는 셈하기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기』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가 시(詩), 서(書), 예(禮), 악(樂)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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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예 가운데 기예(技藝)에 속하는 사(射), 어(御), 수(數)를 뒤로 미루고 덕행을 기르는 데 관련된 교과를 앞세웠던 것이다. 사실, 30세가 지나서 공자의 교육관은 보다 뚜렷해지고 교육내용도 틀이 잡혔다.
공자는 노년기에 와서야 자신이 만든 교육과정을 가르쳤다. 그는 문(文), 행(行), 충(忠), 신(信)을 가르침의 내용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들을 ‘사교’(四敎)라 하였다. 문(文)은 주나라 초기의 문화, 그 가운데에서도 문학, 정치, 도덕, 역사 등으로 구성된 내용이었다. 이를 ‘육경’(六經)이라 한다. 육경은 삼경(三經)과 예(禮), 악(樂), 그리고 춘추(春秋)를 일컫는다. 삼경은 『시경』, 『서경』, 『육경』이다. 여기서 악(樂)을 제외하면 오경(五經)이 된다.
『시경』은 고대 중국의 시 305편을 엮은 시가집이다. [각주 4: 『詩經』은 주로 서주초(西周初)에서 동주초(東周初)의 시로 엮어져 있다.] 유학에서 시가는 인정과 풍속을 반영한 것으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인륜을 돈독히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서경』은 전래된 사관들의 기록을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나라의 법도, 왕의 치적,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 임금의 신하에 대한 훈시, 백성에게 내리는 훈계 등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역경』은 만물의 기원과 자연의 섭리 그리고 사물이 따라야 할 근본원리[元亨利貞]를 쓴 것으로 인간이 마땅히 좇아서 살아야 할 원리를 밝힌 것이다. 예(禮)는 유가들이 지향하던 주나라 초기의 이상적인 정치제도, 중국 고대의 생활규범[冠婚喪祭], 백성을 대하는 예[鄕], 활을 쏘는 예[射], 신하가 천자(天子)를 배알아는 예[朝], 외교적 활동의 예[聘] 등을 내용으로 하였다. 악(樂)은 성정(性情)을 닦아 인품을 다듬는 노래다. 유가들은 악(樂)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논어』는 악(樂)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예로써 행동의 규범을 삼아 스스로 인간다워지고, 음악으로 성정을 닦아 완전한 인간의 경지에 이른다. [각주 5: 『論語』, 立於禮 成於樂.] 공자가 예와 악을 짝지은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는 유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예기』의 음악론도 이와 같다. 이르기를 ‘음악은 천지의 조화이고 예는 천지의 질서다’라고 하였다. 또한 ‘예와 음악을 모두 터득한 것을 일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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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 있다’ 하였다. [각주 6: 『禮記』, 樂記篇. 樂者 天地之和也 禮者 天地之序也. 禮樂皆得 謂之有德.] 『춘추』는 중국 최초의 역사서로서 후세의 정치가들이 따라야 할 규범을 내용으로 한 책이다.
육경을 가르침으로써 공자는 그의 교육이념이 성취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닌게 아니라, 육경의 효과에 대하여 『예기』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의 교육을 알 수 있다. 그 곳의 사람됨이 온유하고 돈후(敦厚)한 것은 시(詩)의 교육효과다. 마음이 소통되고 먼 옛 일을 아는 것은 서(書)의 교육효과다. 마음이 넓고 선량한 것은 악(樂)의 교육 효과다.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하며 가지런한 것은 역(易)의 교육효과다. 공손하고 겸손하며 점잖고 중후한 것은 예(禮)의 교육효과다. 말이 조리 있고 사리를 따라 분별력을 갖추고 있음은 『춘추』의 교육효과다. [각주 7: 『禮記』, 經解篇.]
이는 공자가 육경을 통하여 가르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글이다. 그는 교육을 지식 전달에 한정하지 않았다. 문자를 읽고 그 뜻을 익히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실천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구현하는데 두었다. 그래서 그가 추구한 교육은 삶의 의미에 포함된 요소들이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지적 탐구와 인격형성과 실천적 판단력의 조화와 균형을 취하였다는 뜻이다. 육경의 내용은 모두 고대의 중국 문화다. 이 문화의 밑바탕에는 당시의 도덕과 윤리가 자리하였다. 공자의 교육목적은 이 자리에 백성이 살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 삶의 자리는 공자가 이미 보여주고 있듯이, 사람됨이 온유하고 돈후하며, 마음이 소통되고 먼 옛 일을 알며, 넓고 선량하며, 깨끗하고 고요하며, 가지런하고 공손하며, 겸손하고 점잖으며, 중후하고 말에 조리가 있으며, 사리가 분명하고 분별력이 갖추어진 문화적 공간이다. 이 자리에 사는 사람을 공자는 ‘군자’(君子)라 불렀다. 군자를 위한 교육은 오늘날처럼 삶과 문자를 떼어놓은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