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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423금] "나랏빚 안전한가" 다시 묻는 이유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1월 추정치보다 0.3%포인트 상향조정한 4.2%로 전망하면서 "(전 세계) 정부 부문의 급속한 부채증가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각국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을 인수한데다 경기부양 재원마련을 위한 차입도 계속할 수밖에 없어 빚더미에 올라앉을 처지라는 것이다. 재정과 공기업 등 공공부문 부채의 규모와 증가속도가 최근 몇년새 급증한 우리로선 귀담아들어야할 경고다.
중앙과 지방을 합한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1999년 80조원 남짓에서 지난해 360조원에 이르러 연간 이자만도 20조원을 넘게된 것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또 공기업이 주요 국책사업을 떠맡으면서 부채가 1년새 20% 이상 늘어 213조원을 넘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여서 그것 자체로는 문제삼기 어렵다. 최근 무디스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A1으로 올리면서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정부의 주장을 수용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IMF의 경고대상에서 열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말대도 국가부채가 GDP의 30% 중반대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된다면 그럴 수 있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다. 일단 규모는 논외로 쳐도 10년새 절대액 대비 4.5배, GDP 비율로 2배로 늘어난 속도엔 입이 딱 벌어진다. 지난해 43조원을 넘긴 재정수지 적자는 올해도 30조원을 넘길 만큼 브레이크가 고장났다. 큰 위기는 벗어났다고 하지만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천문학적 재정 수요도 코앞에 닥쳤다.
하지만 IMF의 경고가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런 추세와 실상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포퓰리즘 선심정책을 다투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태도다. 나라 살림을 다루는 두 집단이 만성적인 적자를 걱정하지 않는 풍토가 걱정되고 두렵다. 어제 국회 상임위에서 국가재정법 등 3개 재정건전화 관련 법안이 통과된 것은 그나마 위안이다. 이런 일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은 보다 엄격한 재정규율을 세우기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423금] 자정능력 잃은 검찰에 미래는 없다
‘검사 향응 리스트 파문’을 조사할 검찰 진상조사단이 어제 활동에 들어갔다. 검찰 외부 인사를 위원장과 위원으로 대거 위촉하는 진상규명위원회도 구성된다고 한다. 검찰도 이번 사태의 엄중함을 모르진 않기에 이런 조처나마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반응은 매우 차갑다. 진상 규명과 엄중 조처를 다짐하는 검찰 말을 그대로 믿는 이는 찾기 힘들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흐지부지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더 많다. 검찰 안에서부터 이런 말이 나온다. 오죽하면 벌써부터 야당들이 특검 실시를 주장하겠는가.
그동안 검찰의 행태를 보면 이런 불신은 당연하다. 삼성과 일부 검사들의 뇌물 수수 의혹이 실명과 함께 폭로됐을 때도 검찰은 특별감찰조사본부를 꾸렸지만 아무런 조사도 없이 한달 만에 시늉뿐인 활동을 마쳤다.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검사 7명을 공개했을 때도 몇몇 검사를 사직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덮었다. 역대 법조비리 사건에 대한 감찰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모두 검찰이 조직보호에만 급급한 탓이겠다. 이번 향응 파문의 제보자도 검찰로부터 ‘매장될 것’이라는 따위의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고 한다. 검찰이 이미 스스로 허물을 도려낼 자정능력을 잃은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검찰은 이번 일을 비상한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무죄 선고로 검찰이 정치 목적의 하청 수사에 무리하게 나선다는 비판은 이미 굳어진 터다. 절차적 정의조차 예사로 무시하는 행태가 거듭되면서 검찰에 독점적 소추권과 수사권을 그대로 줘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무성하다. 이런 마당에 이번 향응 파문까지 과거처럼 대충 덮으려 든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검찰이 이왕 자체 조사에 나섰다면 이번 기회를 일벌백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업가로부터 정기적으로 돈과 향응을 받았다면, 이는 정기적 뇌물수수나 다름없다. ‘스폰서’나 ‘인지상정’ 따위의 애매모호한 말로 변명할 일이 아니다. 제보자 말대로라면 접대를 받은 검사들은 제보자의 부탁을 100% 들어줬다고 한다. 대가관계까지 의심되는 만큼, 징계를 전제로 한 조사로 미리 한정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수사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뿌리깊은 검찰 내부의 스폰서 문화를 근절할 수 있다. 자체정화에 실패한다면 검찰의 미래는 없다.
[동아일보 사설-20100423금] 구제역 확산 차단과 농가 피해 최소화에 만전을
소 돼지에 발생하는 법정전염병인 구제역이 인천 강화, 경기 김포에 이어 어제는 강화에서 136km 떨어진 충북 충주에서도 발생했다. 감염 경로나 매개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들 지역 8개 농가의 감염 돼지에서 발견된 구제역 바이러스의 혈청형(O형)이 같아 전염 가능성이 거론된다. 방역망이 뚫렸을 수 있다는 의미다. 자칫 전국으로 확산돼 네 차례의 구제역 발생 사례 중 최악의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구제역에 걸린 소나 돼지는 즉각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구제역 발생국의 축산물은 교역이 전면 중단된다. 구제역의 확산을 조속히 차단해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국내 축산업이 거의 붕괴될 위험도 있다. 가축 이동 제한과 도살처분이 구제역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발생지역 3km 이내의 위험지역에서는 소 돼지 등을 신속히 도살처분하고 일반인의 통행을 막아야 한다. 어제까지 축산농가들이 눈물 속에 도살처분한 가축이 4만 마리가 넘었다. 정부는 피해보상을 제때 할 수 있도록 예산 확보와 피해 실태조사를 서둘러 피해농가의 재활을 도와야 한다.
구제역 예방과 확산 차단을 위해 축산농가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강화에서 농장 주인들이 지난달 구제역 발생국인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바로 축사에 드나들면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추정도 있다. 강화의 구제역 발생 농가를 방문한 인공수정사가 다른 동네의 농가를 다녀가는 바람에 바이러스가 번졌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예방지침을 충실히 따라야만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방역당국도 더 긴장해야 한다. 사람과 물건이 구제역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으므로 철저한 소독이 필수다. 김포에서는 일부 방역요원이 자리를 비우거나 통행 차량들이 분사되는 소독약을 피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강화에서는 농림수산식품부와 축산농가들 사이에 도살처분 범위를 놓고 마찰이 빚어지는가 하면 인원과 장비가 부족해 도살처분과 매몰작업이 지연됐다.
구제역은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는다. 고기를 요리할 때 섭씨 56도에서 30분, 76도에서 7분만 가열하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사멸한다. 소비자들이 막연한 공포감에 쇠고기 돼지고기 소비를 줄이면 축산농가들이 더욱 타격을 받는다.
[조선일보 사설-20100423금] 대한민국 국민, 황 前 비서 이야기를 무겁게 들어야
황장엽(87)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21일 본지 인터뷰에서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한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2명이 검거된 사실에 대해 "어차피 김정일은 할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 계속 이런 시도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걸 신경 쓰겠느냐. 내 존재로 북한의 악랄함을 알리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도 했다.
황 전 비서는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김정일이 한 게 분명하다. 김정일이 이런 일을 계속 준비해 왔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면서도 "(대북) 군사적 대응은 불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보복하고 또 북한이 대응하면, 한반도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처럼 전쟁이 일상화된 지역, 지저분한 전쟁터가 될 수 있다"며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은) 대한민국 경제를 흔들리게 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혼란이 가중될 것이고, 김정일은 바로 이런 걸 노린다"고 군사적 대응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일은 전면전을 할 배짱은 없기 때문에 이런 식의 도발을 하는데 거기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전 비서는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에 중국을 참여시켜 "중국에 북한이 한 일의 실체를 보여줘 북한을 지지 또는 지원하지 않을 명분을 쌓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중국과 러시아에도 이번 (천안함) 참상에 대해 적극 알리고 우리의 대응이 정당하다는 것을 공인시켜야 한다. 그러고 나서 김정일이 다시 도발할 경우에는 무자비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김정일 정권은 그 자체가 폭압 정권이기 때문에 내부나 외부를 향해 항상 폭력을 사용하려 한다. 이런 정권을 상대로 할 때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중국이 북한에 영토적 야심이 있다고 하는데 반드시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며 "지금은 북한 수령 독재를 와해시키는 게 중요하다. 중국이 북한을 개혁·개방시키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도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중국도 북한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다. 북한이 그런 압박을 느껴야 변화가 온다"고 했다.
황 전 비서는 "대한민국은 천안함 침몰로 젊은 군인들과 군함을 잃었다. 정말 크게 잃었다"면서 그러나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너무나 해이해진 태도로 북한을 봐 왔다"며 "이번에 북한과 김정일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고 깨닫게 된다면 더 큰 것을 얻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황 전 비서는 1954년 북한노동당 주체사상연구소장을 맡은 이후 당 선전·이념 분야에서 중심 역할을 했고, 40년 넘게 김일성·김정일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던 사람이다. 대한민국은 이런 황 전 비서의 오랜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를 무겁게 들을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사설-20100423금] 전작권 문제 국민 공감대 다시 모아보자
2012년 4월17일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우리 군으로 전환하는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전작권 전환은 참여정부가 2005년 ‘국방개혁 2020’을 세운 뒤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미국 측과 전환에 합의하면서 현실화됐다. 그 후 전작권 전환은 자주국방을 상징하는 용어로 인식되었다. 보수진영에서 전작권 전환이 빠르다는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당시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그래서 전작권 전환은 기정사실화되는 듯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전작권 환수를 위한 대전제인 자주국방 역량 강화가 지연되고 있다. 국방개혁안은 올해까지 매년 7%대의 경제성장과 매년 국방예산 9.9% 증가를 전제로 했다. 하지만 세계금융·경제위기로 성장률은 크게 낮아졌고, 국방예산 증가율은 7% 안팎에 머물렀다. 올해 국방예산도 대폭 삭감돼 전작권 전환 준비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 대북 감시전력 도입도 수년 연기됐다. 군단 통폐합,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등 군 체제 현대화 작업도 3년 늦춰졌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우리 군의 준비가 예산 문제 등으로 미처 덜 된 상황인 것이다.
안보환경도 변화됐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했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 간첩이 황장엽씨를 암살하려다 체포되는 등 안보 환경이 변화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현실적인 안보위협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며 핵보유국 자격으로 국제 핵군축 협상의 당사국이 되겠다고 우기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북의 핵무기와 미사일이라는 위협에 대한 대응전력은 미국이 우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과 군 원로들의 오찬간담회에서도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해달라는 군 원로들의 주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부인했지만 한국과 미국이 다양한 차원에서 이미 전작권 전환 연기에 사실상 합의했다는 설도 흘러나온다. 분명 안보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전작권 전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 봐야 할 상황이다. 이제 자주국방이란 이상이 아니라 안보 상황 변화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전작권 문제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다시 모아 보도록 하자.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423금] 학력규제 철폐 제도보다 실천의지가 중요
정부는 어제 고학력 인플레 해소를 위해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의 인사운용에서 학력규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채용과 승진 · 보수 결정에서 학력차별을 없애고 국가자격증 취득시에도 학력우대를 폐지 또는 축소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국무총리실은 오늘 정운찬 총리가 주재하는 국가정책조정회의 논의 후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6월 말까지 구체적인 기준을 확정,시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방안이 학력보다는 능력이 존중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력지상주의의 부작용은 실로 심각한 상황이다. 얼마전 대학교수들까지 학력을 위조했던 일이 드러나 큰 파문(波紋)을 일으켰던 데서 보듯 대학, 그것도 유명 대학을 나오고 해외유학을 다녀와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고학력 중시 풍조가 뿌리깊게 형성돼 있다. 부모들이 자신의 노후준비까지 내팽개치며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이번 총리실의 실태조사 결과 여성부 · 행정안전부 등 15개 부처와 가스공사 · 수출보험공사 등 94개 공공기관에서 모두 294건의 학력규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등 정부와 공공기관마저도 이 같은 학력차별에서 예외가 아닌 실정이다.
중요한 것은 학력규제 철폐 방안이 보다 확실한 실천력을 담보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 각 분야의 학력지상주의는 뿌리가 워낙 깊어 허술한 정책의지로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학력규제 철폐가 구호로만 그치지 않도록 채용은 물론 승진과 보수 등에서 실제로 차별이 없어지는지 지속적으로 점검 · 확인하고 미비한 점을 개선해나감으로써 강력한 추진의지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부는 학력규제 폐지가 민간 차원으로 확산되도록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성과를 거두면 민간부문의 점진적인 학력차별 철폐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423금] 한나라당은 세종시에 관심 있나없나
세종시 문제에 대한 당내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출범한 한나라당 6인 중진협의회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49일 만에 활동을 종료했다. 중진협의회가 당내 친이ㆍ친박계의 대립을 초월해 절충안을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국민의 관심이 천안함 사태에 쏠린 와중에 슬그머니 활동을 끝낸 것이다.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진협의회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림에 따라 세종시 수정 관련법안이 조기에 처리될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중진협의회가 과연 세종시 문제 해결에 관심이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세종시 절충안 마련 등을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현장을 방문한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토론은 몇 차례나 했는지, 어떤 의견들이 나왔는지 내용을 소상하게 밝히는 것이 집권여당 중진으로서의 책임이다. 지금이라도 계파 간 시각차 등 토론내역 등을 공개해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어렵사리 수정법안까지 제출해놓은 세종시 문제에 대해 집권여당이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천안함 사태에 묻혀 국가대사인 세종시 문제가 마냥 표류하거나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수정법안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나섰지만 한나라당 최고위원까지 국민의 피로와 염증을 불러일으킨 문제가 다시 부상하는 것은 정부나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외면하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은 정치적 계산과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의원총회를 열어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당론을 결정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 총리가 꺼져가는 세종시 불씨 살리기에 나섰지만 한나라당의 협조가 없으면 결말이 나기 어렵다. 세종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당정협의를 강화하는 한편 한나라당이 하루빨리 당론을 결정해 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될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 8년 가까이 끌어온 세종시 문제는 시간을 끌수록 국가적 부담과 피해가 늘어나게 된다. 거창하게 출발한 중진협의회가 성과 없이 끝난 것은 계파갈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파 간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국익 차원에서 과감하게 절충 타협하는 큰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6ㆍ2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5월 중 처리가 어렵다면 선거가 끝난 직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내부 조율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남중(논설위원)-20100423금] 스폰서
지난해 11월 백승우·김인숙 사진작가는 단비 같은 소식을 접했다. 한진그룹이 ‘올해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 선정해 각각 5500만원 상당의 후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상금에 더해 개인전과 사진집 출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한진그룹이 아무 조건 없이 이들의 후원자로 나선 것은 ‘메세나’ 활동의 일환이다.
메세나(mecenat)는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마에케나스(Maecenas)에서 유래했다. 그는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후원했다. 사후에도 유산 모두를 문화·예술 지원을 위해 내놨다. 메세나라는 말이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후원을 상징하게 된 연유다.
보상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후원자를 뜻하는 말은 패트런(patron)과 스폰서(sponsor)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피렌체의 영주로서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메디치가가 대표적 패트런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같은 명작들이 메디치가의 후원에 힘입어 탄생했다. 패트런이 명확한 반대급부를 내건 것은 아니지만 ‘주문 제작’ 같은 이득을 기대하고 지원했던 건 분명하다. 메디치가 사람들을 암살하려던 파치 가문의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장면을 보티첼리가 벽화로 제작한 것도 그래서였을 터다.
스폰서라는 말은 미국에서 상업방송이 시작됐을 때 ‘광고주’라는 뜻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스폰서의 어원이 라틴어의 ‘보증인·후원자’인 때문이다. 상업방송국은 광고주가 경영을 보증해주는 사람이자 후원자라는 거다. 지금은 올림픽·월드컵 같은 스포츠 행사에 후원금을 내거나 운동선수와 계약을 하고 지원하는 기업이 ‘스폰서’로 불리는 대표적 예다. 이는 비용을 지불하고 홍보 효과를 거두려는 정당한 거래다. 문제는 불순하고 음습(陰濕)한 뒷거래의 혐의가 짙은 스폰서 탓에 스폰서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거다.
관행이 된 검사의 스폰서 문화가 주범 중 하나다. 급기야 이번에 부산에서 검사 수십 명이 스폰서에게서 정기적으로 돈과 향응, 성 접대까지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스폰서로 삼은 업자의 돈을 ‘사(私)금고’처럼 여긴 그 후안무치(厚顔無恥)에 기가 막힐 뿐이다. 이러니 스폰서란 말이 ‘타락’의 대명사로 전락할 신세다. 검찰은 차제에 정신 바짝 차리고 썩은 냄새 진동하는 내부의 스폰서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 안 그러면 ‘검찰’이란 말도 ‘스폰서’ 꼴 날 테니까.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0423금] 낙화
꽃이 진다. 기어이 꽃이 진다. 비 갠 아침, 골목길에 벚꽃잎이 눈처럼 분분히 나뒹군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는 지금 꽃눈이 한창이다. 떨어진 꽃잎을 밟으면 그러나 가슴이 시리다. 어떻게 피어난 봄꽃들인가. 올해는 유난히 늦게 피어서, 좀 더 늦게 지기를 바랐는데 어느덧 속절없이 지고 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라고 했던가. 꽃이 진 아침은 마치 어느 불 꺼진 저녁인양 침침하다.
“백도 하얀 꽃송이들이 백옥같이/ 눈부시게 조롱조롱 피더니/ 얼굴을 맞대고 서로 비쳐서// 한 송이가 백 송이의 웃음을 웃고 갔다/ 이것은 덧없는 인생의 가지가지/ 슬픔에 대한 토막 이야기다.”(‘황혼이 울고 있다’·김광섭) 꽃의 영광은 한순간이다. 아침에 핀 꽃이 저녁이면 시든다. 그리하여 등불 아래서 ‘어느 마지막 잔 같은 차’를 마시며 시인은 “나의 청춘의 모든 것도 다 그렇게 작별되었다/ 지금 다시 눈에 보이고 생각나는 것은 모두/ 그 작별의 짤막한 유서들이다”라고 노래한다. 덧없는 봄꽃은 ‘슬픔에 대한 토막 이야기’이자, ‘청춘에 보내는 짤막한 유서’다. 그러니 꽃이 지는 봄날은 황혼처럼 어둡다.
사랑은 봄에 오고, 이별은 가을에 온다는 말은 아마도 틀린 말일 게다. 꽃피는 봄에도 이별은 오고, 낙엽지는 가을에도 사랑은 다가온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낙화’·이형기)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떠나는 청춘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꽃도 청춘도 때가 되면 보내야 한다.
그러나 낙화는 낙엽보다 견디기 힘들다고 했던가. 봄날의 이별은 가을보다 더 비감한 법이다. 낙양성의 봄날에 읊은 당나라 시인 유정지의 비가(悲歌)는 그래서 천년의 세월을 넘어 가슴을 울린다.
“금년에 꽃이 지면 그만큼 얼굴빛 변하리니, 내년에 꽃이 피면 누가 남아 있을까. 소나무 베어져 장작이 되고, 뽕밭이 변하여 바다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낙양성 동쪽에 살던 옛사람들은 이제 없건만, 지금 사람들은 다시 꽃보라 속에 서 있네.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같지 않다네(歲歲年年人不同).”
봄꽃은 해마다 피지만, 바라보는 사람은 해마다 다르다. 피었다 진 꽃은 내년에 다시 돌아오겠지만,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 눈처럼 분분한 벚꽃을 밟고 봄날이 간다. 사람이 간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신은희(닐슨컴퍼니 韓·日 총괄 대표)-20100423금] 트렁크를 사주자
개인적인 에피소드이지만, 내 딸이 어릴 적부터 자주 해 주던 말이 있다. "너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트렁크에 짐을 싸고 나가서 독립해서 살아라."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된 지금 아직도 함께 살고 있다.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건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심리학 이론에서 청소년기는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이론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수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지 여러 해가 지난 젊은이들 중에는 아직 자아정체감을 형성하지 않은 듯한 사람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자발적인 선택에 수반되는 책임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가치관도 확고하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도 빈번하다. 심지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나이가 한참 지났음에도 부모에게 온전하게 의존하며 지내는 경우도 있다. 간섭은 싫어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데에는 많은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그 결과 비록 성인의 몸을 지녔지만, 심리적 발달은 사춘기에 머물러 있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획일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입시에 저당 잡힌 청소년기 동안 부모의 지나친 배려로 자율적인 판단의 기회가 박탈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고민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부모가 대신 선택해 주거나, 경쟁에서 이기는데 필요한 스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환경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자란다. 누군가 대신 선택해 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지거나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정해진 것들만 추구하다 보면 스스로 결정하는 힘은 생길 수 없다.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진정한 인격체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곧 다가올 성인의 날을 맞아 조만간 딸에게 트렁크를 선물하며 다시 한번 독립을 강조할 참이다. 대한민국에서 성인의 날에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큰 여행가방을 선물하는 새로운 전통이 생기는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