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의 틀
소흔 이한배
아내가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를 다 먹고 난 빈 통을 꺼내 한참 잘 닦더니 햇볕 드는 베란다에 갖다 놓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래 썼더니 냄새가 배어서 잘 안 빠져요.”
“어차피 또 김치 담아 놓을 것 아냐?”
“그래도 냄새를 다 빼내야 새로 담는 김치가 맛있어요”
문득 요즘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생각 하나 있어서
“70년이 넘도록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담았던 우리의 그릇도 저 통처럼 냄새가 많이 배어 있을 거야.”
하니까 웃는다. 내 속의 낡은 그릇도 비워내고 잘 닦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새로운 걸 얼마든지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TV를 보면 가요 경연대회가 많다. 열 살 전후의 어린이들이 나와서 거의 완벽하게 감정을 실어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성인들 뺨치게 잘한다. 게다가 춤까지 잘 추는 것을 보면 신동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리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까? 어리니까 마음이 순수해서, 아직 새 그릇이니까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장영주, 장한나가 어려서부터 신동,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누구나 어려서부터 적성을 잘 살리면서 가르치면 대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어릴 때는 처음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려 들면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담아 보지 않은 새 그릇에는 무엇을 담아도 다 담을 수 있다.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고 간장을 담으면 간장 그릇이 된다. 어린이라는 그릇도 순수한 새 그릇이라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다. 예술을 담으면 예술가, 과학을 담으면 과학자가 될 수 있다.
어렸을 때 나의 부모님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가르쳤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나도 초등학교 학예회 때 독창으로 노래를 했었다. 또 중학교 때는 합창단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예 성악가가 되겠다고 열심히 목소리를 키웠었다. 그때 성악 공부를 하고 싶다니까 아버지는 가르치기는커녕 예술을 하면 배고프다며 오히려 반대하셨다. 아니 내가 성악가가 되겠다는 의지가 약해서 아버지 반대에 포기하고 말았다.
정년퇴직하고 생각해 보니 잘하면 2~3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2~30년이면 사람이 태어나서 무엇을 배우던, 배워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기간이 아니던가? 그러면 나도 새로운 것일 지라도 지금부터 배우면 다시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을 배워 볼까 하다가 어려서 해보고 싶었는데 못했던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꽤 해낼 자신이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하고 싶었던 것을 해서 그런지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십수 년을 해보면서 뭔가 벽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것, 집어넣어도 들어가지 않는 배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기를 쓰고 해보지만 그럴수록 느껴지는 벽이 있었다. 그 벽이 무엇일까? 그것은 벽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수없이 많은 틀이었다. 70년 넘겨 살면서 내 나름대로 만들어 놓은 틀들…….
그중에서 노래에 대한 틀,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서 제멋대로 불러온 습관이 아주 단단한 틀이 되어 새로 들어오는 걸 막고 있었다. 반복해서 지적당하면서 교수님 앞에서는 고쳐진 것 같다. 그러나 나 혼자 불러보면 또 마찬가지다. 새 그릇은 무엇이든 담으면 되지만 쓰던 그릇에는 이미 담겼던 것들의 냄새나 흔적들이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나의 사유 속에 나도 모르는 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굳어져 버린 틀들은 바위보다 더 단단했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살자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자고, 수없이 다짐하며 살아온 나였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시 처음처럼 시작하겠다는 내 생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의 처음과 나이 먹은 지금의 처음은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도 몇 살 때 처음이냐에 따라 그 순수함에 차이가 난다고 하겠다.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빈 그릇이다. 지금의 처음은 비워냈다 해도 김치통의 냄새처럼 무언가 들어 있다. 그것이 바로 틀이다. 안경을 끼고 바라보듯, 마음속에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 속에서 배우려 하니 제대로 받아들여질 리가 없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배웠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내 마음속 어느 구석에 아무것도 안 담았던 그릇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오래된 것이지만 먼지 털고 잘 닦으면 새 그릇이 되지 않을까? 최소한 냄새나 찌꺼기들이 눌어붙어있지는 않을 것 같다.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새 그릇에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가 그 그릇을 찾을 수가 없다. 아니 그런 그릇이 이젠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보니 벌써 노을도 사라지고 매직아워의 시간도 끝나가고 있다. 어둠의 시간이 다가오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초심불망 마부작침(初心不忘 磨斧作針). 초심을 잃지 않고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노래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