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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의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일본 축제가 신기해서 축제에대해서 조사하였습니다.
마쯔리의 기원
현재 일본은 사계절을 통하여 전국 각지에서 마쯔리가 개최되고 있다. 이러한 마쯔리는 이들의 생활에 어울리는 풍토(산, 바다, 강, 평야)와 기후에 의한 신앙행사의 하나로 거행되어 왔으며, 사회와 역사의 발전에 따라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다.
마쯔리를 크게 나누어 보면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자연신앙에 의한 것, 신도(神道)에 의한 것, 불교(佛敎)에 의한 것, 음양도(陰陽道), 슈겐도(修驗道)에 의한 것)
예로부터 일본은 물과 숲이 풍부하여 벼농사를 비롯한 농업과 어업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이에 따라 태양이나 비, 바람 등 자연의 에너지가 가장 중요시되어 왔다. 고대 씨족(氏族)인 선조나 마을을 개척자를 신(神)으로 받드는 습관도 있었다.
자연숭배, 조령신앙(祖靈信仰) 등의 신앙형태는 점차 특징 있는 의례와 신앙형태를 만들어 갔으며 이러한 신들의 활동에 대한 감사, 기원, 외경(畏敬)이라고 하는 고래의 진기신앙(神祇信仰)은 일본민족 고유의 신앙인 신도(神道)라는 종교의 중핵으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습속(習俗), 인생의례, 연중행사(年中行事) 등은 하나의 (民俗神道)로서 발전해 갔다.
불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각 종파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으며, 특히 인도의 밀교(密敎)가 도입된 진언종(眞言宗)과 천태종(天台宗)은 산악수업을 중심으로 산의 신앙을 넓혔다. 이 때문에 일본인의 사후세계는 영산(靈山)에 사령(死靈)이 머무른 후, 천계(天界)로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자공양(死者供養)은 33년 또는 55년이나 계속할 정도로 극진한 전통을 키워 왔으며, 불교는 신도(神道)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고 신불습합(神佛習合: 신도와 불교의 습합)을 이루게 된다.
음양도(陰陽道)는 특히 사람들의 길흉감각(吉凶感覺)과 신도(神道)의 의례 등에 영향을 미쳤고, 슈겐도(修驗道)는 그 자체가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산물로서 근대의 교단신도(敎團神道)의 형성에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연중 마쯔리
1년 12개월, 거의 균등하게 순환되는 일본의 사계절 가운데 마쯔리가 많은 달은 겨울의 정월과 여름의 오본(お盆: 百中, 구 음력 7월 보름, 현재 양력 8월)이다. 정월은 새로운 해(年)의 부(富:생산)를 가져다 주는 세덕신(歲德神)이 가가(家家)를 방문하여 천지가 새롭게 태동하는 시기이다.
거의 1년에 걸치는 벼농사에 대한 축복을 기원하는 「논놀이」(田遊び: 좋은 토지를 골라 모심기, 여자도 함께 함)가 1~2월부터 모내기 전까지 전국적으로 행하여지며, 각지의 고사(古寺;관음신앙이 많다)에서는 수정회(修正會)나 수인회(修仁會)를 세해의 풍작기원으로 불전(佛前)에서 거행한다. 이 마쯔리를 민간에서는 「오코나이」〔おこない : 불도수행(佛道修行), 근행(勤行)〕라고 하며, 마을 사람들의 가장 진지한 행사였다.
지역공동체인 정(町), 촌(村) 전체가 참여하는 전통행사는 봄이 오기 전의 기년제(祈年祭)와 수확제(收穫祭)가 끝난 후인 11월의 상월신락(霜月神樂)이 가장 중요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상월신락(霜月神樂)은 관사(官社: 국가가 관리한 대, 중, 소의 신사)의 의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민산의 촌사(村社)나 슈겐도(修驗道) 신앙의 곤겐샤(權現社) 등에서 널리 거행되었다. 이것은 수확된 벼이삭이 다음 대의 자손을 불리어 가듯이 종자의 생산행위가 무사히 의식으로서 거행된다는 주술적(呪術的)인 의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남녀의 결혼, 여성의 임신, 분만 등에 준하여 의식화하고 연극화했던 것이다.
마쯔리의 의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 고유의 마쯔리는 생활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바다와 산천, 동물 등의 활력을 신(神)으로 간주하여 생활의 발전을 기원했으며 아이누(あいぬ :홋카이도(北海道)의 원주민)의 고식(古式)마쯔리 등이 그 예에 해당된다. 대륙으로부터 도래되었다고 여겨지는 씨족(氏族)의 마쯔리는 조상숭배(祖上崇拜)를 중심으로 하였고, 특정한 날 조상의 묘소에 음식을 봉제(奉濟)하고 예능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것은 중국 고대 묘묘(墓廟)의 화상석(畵像石)에 조각되어 있는 그림 등에서 볼 수 있다.
그 외에 개인과 집단생활에 곤란을 초래하는 기근과 질병 등에 대처하는 기원이나 주술도 마쯔리의 주지(主旨)로서 계승되고 있다. 정월이나 소정월의 산신(山神)과 농작기원(農作祈願), 2월의 도작기원(稻作祈願) 기년제(祈年濟), 질병퇴산기원(疾病退散祈願) 기온텐노마쯔리(祇園天王祭) 등은 전국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옛날의 연중행사 가운데 잔존하고 있는 민속적인 소행사가 거행됨으로써 마쯔리를 보다 다채롭게 해 주고 있다.
고사대사(古社大寺)의 예제(例祭)와 법회(法會)는 형식화되면서 전승되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본래는 슈겐도(修驗道)의 신불혼합양식(神佛混合樣式)이었던 것으로도 보여진다.
마쯔리의 상징
마쯔리는 의식으로 연출되고 예능으로 승화되는 것으로 보통의 무대와 다른 것은 형태를 표시하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쯔리에서는 성스러운 장소를 표시하는 높은 깃발, 주련승(注連繩), 세죽(笹竹), 공물(供物)과 그 상(床), 제사(祭司)와 그 보조 신관(神官), 무녀(巫女), 영인[令人 : 악인(樂人)과 무수(舞手)], 씨자(氏子 : 같은 씨족신을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나 신자(信者)의 참석도 필요로 한다.
또한 세심히 살펴보면 오행오색(五行五色)의 의상이나 장식, 사천의 호법신(護法神 : 현무(玄武), 주작(朱雀), 백호(白虎), 청룡(靑龍), 지수(紙垂)나 천개(天蓋), 절지(切紙), 수초채물(手草採物) 등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궁시(弓矢), 검(劍), 태도(太刀), 거울 등의 신보(神寶)를 공개하는 일도 있으며, 태고(太鼓), 피리, 북, 빈자사라[びんざさら; 박(拍), 박판, 수십 장의 얇은 대나무, 나무 판자를 끈에 꿰어, 그것을 흔들어 소리를 내는 악기] 등의 악기도 추가된다.
따라서 각각이 상징하는 의미와 그 본질을 아는 일은 곧 마쯔리를 이해하는 것이 되며, 세계의 종교를 그 상징의 입구에서 보면 <수(水)와 녹(綠)>의 일점(一點)에 집중되고 있다.
카톨릭교회의 입구에는 파상선(波狀線)의 기둥과, 포도만초의 띠가 둘러싸고 있어, 때마침 그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순례자도 아사직전의 걸식자도 모두 구원될 수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 이슬람교 국가에서는 야자(椰子)와 溪流)의 현실로서 성벽(城壁)의 철창(鐵窓)에 끼워진 철상(鐵像)의 당초모양(唐草模樣)이 되고 있다. 이 아라비아풍의 모양은 중부 유럽에서는 프랑스창의 베란다 난간 등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 물과 초목은 우선 신목(神木)외에 신전(神前)의 주련승이 되고 있다. 이즈모오야시로(出雲大社)등에 걸려지는 대주련승은 특히 거대하며, 그 꼰 방법은 유럽의 수파(水波)나 물을 훔치는 물수건과 같다. 동시에 미즈호(みずほ: 벼이삭)이라고 불리우는 물과 풀이 합체된 도초(稻草), 이를 일본에서는 부초(富草)라고도 불리어 왔다. 신성(神聖)이란 내부의 의미가 인간의 생의 근원요소(根源要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쯔리의 구성
마쯔리의 하나의 극장에 해당된다. 동양에서는 천(天) 지(地) 인(人)을 수직축의 단계로 하여 동 서 남 북 중앙을 오방의 공간으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동(東)-춘(春)-녹(綠), 남(南)-하(夏)-적(赤), 서(西)-추(秋)-백(白), 북(北)-동(冬)-흑(黑), 중앙(中央)-토용(土用)-황(黃)으로 하는 오행역학을 채용해 왔다. 또한 시간의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는 모두 복을 가져오는 향상선상(向上線上)에 맞추어 옴으로써, 현대에 있어서도 결혼식은 대안길일(大安吉日), 장례식은 불멸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인 대제, 예제 등도 모두 음력에 따라 실시해 왔으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의한 양력의 사용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토요일 또는 일요일의 채용 등에 의하여 대폭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음력을 선택하고 있는 소수의 마쯔리도 존속하고 있어 그 격조는 지켜지고 있다. 그 이유는 마쯔리도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있는 인간사회의 의식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옛 의식을 엄수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 근원이 갖는 의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3대 마쯔리
도쿄 간다마쯔리(=산자마쯔리:三社祭)
산자마쯔리는 도쿄에서 가장 거친 마쯔리로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서민마쯔리이다. 아사쿠사진자에서 매년 5월 셋째주 토, 일요일(본래는 17일, 18일)에 열리는 행사이다.
마쯔리의 시작은 1316년 신탁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날짜는 5월 17일, 18일이었지만 관광화 되면서 5월 세 번째 일요일을 마지막 날로 삼일간 열린다. 첫째날은 오하야시 빈자사라춤 등이 공연되고, 둘째날은 각 마을(44개)마다 마을 신을 모신 미코시 100채 정도가 센소우지 경내로 모두 모인다. 마지막날에는 불상을 건진 세 사람의 신령을 모신 가마세 채(一の官, 二の官, 三の官)가 경내에서 마을을 순회하는데 사람들과 뒤엉켜 혼란이 극에 달한다. 그때에 신사에서는 덴카쿠(田樂)와 사자춤 등이 연출되는데 덴가쿠는 빈자사라(びんざさら)춤인데, 씨를 뿌리고 벼를 심고 새를 쫓아내느 동작을 연기한다.
그 당시 초암을 만드는 데 도와준 10명의 농부가 초암의 완성을 축하하며 그 주위에서 춤춘 것이 빈자사라춤의 시작이라고 한다. 후에 이 농부들은 10명의 풀을 베는 동자라고 불리웠고 짓샤곤겐으로 숭배되었다. 참배자가 많았다고 전해지지만 1873년 신불혼합금지령이 내려져 산자 경내의 다른 신들과 합치되어 센쇼신사라 불렀으나 1945년에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되었다.
간다마쯔리라고도 불리는데 치요다구에 위치한 간다는 헌책방가로 유명한 곳이다. 이 간다의마쯔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벌인 축제가 그 기원이다. 과거에는 히에(日枝)신사의 산노(山王)마쯔리, 후카가와(深川)마쯔리와 함께 에도의 3대 마쯔리의 하나로 에도 시대 '마쯔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108개의 자치회에서 90개의 미코시(御輿)를 선보일 정도로 그 규모는 엄청나다. 간다 주민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일반 기업들도 참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오사카 덴진마쯔리(=덴지사이:天神祭)
오사카 덴진사이라고도 불리는 덴진마쯔리는 일본 3대 마쯔리이자 일본 3대 선상마쯔리이기도 하다. 서기 949년에 덴만궁(天滿宮)신사가 건립이 된 다음해 6월 1일에 경내 해변에서 가미호코(창과 도끼 구실을 하는 무기)를 바다에 띄워서 그 가미호코가 표착한 해변에 제사단을 마련하여 시령을 안치하고 목욕재계한 것이 그 기원이다. 현재는 매년 7월 24일에서 25일에 행해진다. 24일 오가와(大川)에서 호코나가시신지를 시작으로 나무로 만든 카미보코를 든 신동과 참석자 약 300명의 행렬이 덴만궁을 출발, 옛날 와카마츠 마을 강가에 있는 제사장으로 향한다. 부정을 제거 하는 엄숙한 의식을 치르고 도지마강에서 가미보코를 흘려보낸다. 이는 마쯔리의 무사와 안전, 그리고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며 마쯔리의 개막을 알리는 개막식이다.
그날에는 10대 트럭을 2그룹으로 나누어 복제 인형을 태우고 징과 북을 울리면서 오사카 시내를 퍼레이드하면서 마쯔리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모요오시 다이코를 힘차게 울리면서 마쯔리의 준비가 돤료되었음을 알리고, 사자춤과 우산춤, 단지리 등의 순서로 신사에 들어간다.
25일에는 미치자네의 탄생을 축하하는 엄숙한 대제를 드리고 고호우렌에 덴만궁의 신령을 모신다. 오후 4시경 모요오시다이코를 선두로 신의 행차가 시작된다. 먼저 와조풍속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3천명의 대행렬이 '체-사자-'라는 구령과 함께 행진하는데 행렬의 제1진은 모요오시다이코, 가미보코, 단지리, 사자춤 등으로 이어진다. 제2진은 헤안시대 당시 귀족계급들이 이용했던 우차나 수레를 재현한 오하구르마가 50명 정도의 인원에 의해 끌려간다. 이어서 이 행렬의 중심이 되는 스가하라미치자네의 신령을 봉안한 고호렌이 등장한다. 이 미코시는 윗부분이 봉황으로 장식되어 있고 고대 풍속 그대로 옷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어깨에 메고 행진한다. 제3진은 오토리미코시와 다마미코시이다. 구령과 함께 높이 치켜올리는 장면은 박력이 넘친다.
오후 6시가 지나면 대단원인 후나도교가 시작된다. 신령을 모신 고호렌이 선박에 안치된다. 봉안선박 그리고 여러 단체들의 선박들이 덴진다리를 출발하여 오가와로 향한다. 한편 신령을 맞이하기 위한 선박이 하쇼린에서 출발 오가와까지 내려온다. 강변에는 많은 불빛과 등불로 밝혀지고 수백척의 배들이 오가와를 왕래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고호렌배에서는 장엄한 제사 스이죠사이가 시작된다. 다른 배에서는 전통예능이 상연되기도 하고 음악이 연주된다. 고호렌과 미코시를 실은 봉안선, 동행한 단체들의 선박은 히쇼다리에서, 신령을 맞이한 선박은 덴마린에서 되돌아 덴만궁으로 돌아온다. 덴만궁에서는 간고사이가 행해짐으로 감동과 낭만이 넘친 이틀간의 마쯔리가 막을 내리게 된다.
교토 기온마쯔리(祇園祭り)
고대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에는 고대 일본의 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어 문화유산을 느낄 수 있는 도시이다. 기온마쯔리는 일본 중요 무형민속문화재로 약1100년 전에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기원했던 어령회(御靈會)가 그 기원이다. 천재나 역병 등 재난의 발생은 정치적 음모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나 비명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저주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영을 달래고 위로하여 재앙을 벗어나기 위한 제사를 드렸는데 그것이 바로 고료에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신, 동식물의 정령, 역병신, 당시 비명에 죽은 영혼, 그리고 불교의 여래나 보살 등을 기원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역병퇴치를 기원했다. 그 후 역병이 만연할 때마다 기온고료에가 행해졌다. 그 중에서도 효과가 있다는 신이나 부처를 선정하여 제사를 드렸는데 야사카신사의 무용의 신인 수사노오미코토와 기온정사의 수호신인 고주텐노를 제신으로 하였다.
일본의 신은 왕래하는 신이다. 산과 바다로부터 인간세상으로 찾아오는 나그네(まれびと)이다. 인간 세상에 있는 동안 신은 휴게소라 할 수 있는 다비쇼에 머문다. 미코시는 신이 다비쇼로 이동할 때 타는 것이며, 미코시아라이는 미코시를 깨끗하고 정하게 하는 행사이다. 부정이 타지 않도록 깨끗하게 된 미코시에 신이 옮겨지고 신의 분령으로서 다비쇼까지 온다. 이것이 7월 17일의 신고사이(神辛祭)이다.
신의 내방을 환영하기 위한 퍼레이드가 같은 날 낮에 행하는 야마보코 순행(さきのまつり)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4일까지 신은 다비쇼에 머문다. 즉 인간이 사는 마을 속에 인간과 함께 있는 것이다. 24일 간고사이에서는 신이 다시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7일간 다비쇼에 체재했던 신을 환송하는 퍼레이드가 24일낮에 행하는 하나카사순행(あとのまつり)인 것이다.
기온마쯔리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야마보코이다. 32개의 야마보코의 행렬에서 언제나 제일 선두에 서는 것은 높이 25미터의 긴 창의 모습을 한 나기나타보코이다. 맨 마지막은 미나미간논야마가 장식한다. 나머지 야마나 호코는 매년 제비뽑기를 하여 정해진 순서에 따라 행렬한다. 특히 사거리에서 십여톤이나 되는 수레를 방향전환하는 일은 행렬 중에서 가장 볼 만한 장면이다. 회전하고 자 하는 쪽에 대나무를 깔고 물을 적신다. 그리고 잡아당기면서 조금씩 방향전환을 한다.
행렬에서 돌아오면 야마는 그날로 전부 분해하고 호코도 다음날 중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20일을 전후로 하여 마을 사람과 하야시카다(악기연주자)가 각각 아시아라이라는 연회를 연다. 마을 사람들은 이로써 일년동안의 마쯔리를 끝내고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온마쯔리의 하이라이트는 17일에 있는 야마보코행진으로, 거대한 야마보코가 거리를 행진한다. 이 야마보코를 보기위해 각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각 지방별 주요 마쯔리
아오모리 네부타 마쯔리
지금부터 240-250년전 한 동네에서 서민들이 등롱을 손에 들고 춤을 췄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네부타 마쯔리의 기원인지는 아직까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네부타 마쯔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불의 축제로 각지에서 열리는 유명한 마쯔리 중에서도 크게 성장한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네부타란 커다란 나무나 대나무에 종이를 부친 엄청나게 큰 등롱을 말한다. 마지막 날에는 해상운항이 행해져 아오모리항을 운항하는 것으로 화려한 네부타 마쯔리 가운데 고요함과 엄숙함이 구경하는 사람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또 하네토(跳人)라 하여 네부타 뒤에 1,000명에서 1,500명의 춤추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 모습은 네부타 본체 이상으로 박력과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매년 8월 1일부터 8월 7일까지 행해진다. 센다이 다나바타(七夕)마쯔리
1928년 8월에 동북산업박람회의 행사로서 개최된 것이 현재의 센다이 다나바타마쯔리의 원형이다. 1946년 8월에 있었던 센다이 다나바타마쯔리는 전후 부흥의 시발점으로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과거 센다이 다나바타마쯔리는 소박하고 온화한 민속행사였으며 추석을 앞두고 조상과 논의 신을 염원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그것이 전승되어 현재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다나바타마쯔리가 되었다. 센다이 다나바타마쯔리는 매년 8월 6일부터 8일까지 행해지며, 상가나 거리에는 크고 화려한 다나바타 장식이 눈에 띈다. 또 일본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거리를 가득 메운다.
도쿠시마 아와오도리
일본추석인 오봉에는 죽은 사람의 혼을 염원하는 의미로 추는 봉오도리가 있다. 동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며 마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봉오도리는 무로마치 시대에 서민들에게 보급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시코쿠 도쿠시마현의 아와오도리가 유명하다. 유래는 1587년에 도요오토미 히데요시의 신하 하치수카케가 도쿠시마현 에 성을 세웠을 때 잔치상에서 서민들이 춤을 췄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춤추는 바보에 보는 바보 같은 바보라면 안 추면 손해다 손해"이라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매년 8월 12일부터 15일까지 행해진다.
후쿠오카 하카타기온야마가사
후쿠오카중심인 하카타(博多)에서 열리는 하카타기온야마가사는 남자마쯔리다. 가마쿠라시대 때 하카타 일대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그 병을 퇴치하기 위하여 기원한 것이 시작이다. 이때 하카타의 거리는 일본남성의 웅장함과 묵직함으로 거리를 가득 메운다. 마지막날에 열리는 오이야마라는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야마가사를 행진하는 속도를 겨루는 것으로 정신을 통일하여 야마가사를 짊어지고 달리는 남성들의 힘찬 모습이 여름의 무더위를 시원하게 해준다. 매년 7월 1일부터 15일까지 행해진다.
히로시마 미야지마간겐사이(宮島管絃祭)
미야지마의 이츠쿠시마 신사는 12세기 당시 권력자였던 다이라노키요모리에 의하여 세워진 세계문화유산이다. 해상에 세워진 신사는 주위 배경과 건물이 하나가 되어 보는 이를 압도시킨다. 이츠쿠시마 신사는 그의 업적을 엿볼 수 있으며 헤이안시대의 대표적인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곳은 일본삼경(3景)이라 하여 미야기현의 마츠시마, 교토의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경승지이다. 이 이츠쿠시마 신사의 대표적인 행사가 바로 간겐사이이다. 오사카 덴진사이와 함께 일본 3대 선상마츠리의 하나로 과거 교토 귀족들이 배 위에서 여가 생활 을 즐긴 것이 전 해저 현재에 이른 것이다. 매년 7월 25일에 행해지며 선단의 웅장함과 해면에 비친 화톳불의 아름다움의 조화는 환상적이다
네부타 마쯔리(ねぶた祭)
동북지방의 3대 마쯔리 중에 하나. 매년 8월 1일부터 8월 7일까지 행해진다. 네부타 마쯔리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불의 축제로 각지에서 열리는 유명한 마쯔리 중에서도 크게 성장한 축제다.
'네부타'란 커다란 나무나 대나무에 종이를 부친 엄청나게 큰 등롱(나무, 돌, 금속 따위로 만든 테두리 안에 불을 붙이게 한 기구)을 말한다.
큰북의 용감하고 힘찬 리듬과 눈부시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피리소리와 「ラッセラ!(랏세라)」라는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춤추며 행진한다. 화려한 타스끼(일본 옷의 소매를 거치적거리지 않게 걷어붙여 등에서 X자형으로 엇갈리게 매는 멜빵) 차림의 하네또라 불리는 가운차림의 대집단이 열광하는 가운데, 대단히 화려한 색의 거대한 무사인형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아름다움도 호쾌한 마쯔리이다.
"네부타"의 어원은 "眠たい(네타이, 자고싶다)"라고 전해진다. 동북각지에서는 예로부터 악령을 물리쳐 한여름의 졸음을 깨우는 "眠り流し(네무리나가시, 칠석에 등롱을 강이나 바다로 떠내려보내는 행사. 가을 수확 전에 일의 방해가 되는 졸음을 쫓는다는 의미로 종이인형을 바다에 띄워 신배웅을 함)"가 행하여지고 있었지만 이것이 대형화되어진 것은 에도(江戶)시대부터다.
불을 밝힌 커다란 네부타 인형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현재의 마쯔리로 발전했다. 마지막날 밤은 네부타를 배에 태우고 화려한 네부타와 힘찬 하야시(피리, 북 등으로 박자를 맞추며 흥을 돋우려고 연주하는 음악)로 악령을 불러와 멀리로 쫓아버리기 위한 해상운행이 花火대회와 함께 실시된다.
요시다노히(吉田の火) 마쯔리
에도 시대까지는 활화산이었던 후지산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 시작되었다고 전승되어진 축제. 일본의 3대 괴기 축제의 하나로 현재는 산을 달래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당일 저녁부터 미코시토기요(神輿渡御,제례 때 신위를 모신 가마들의 행렬)가 시작되지만, 신여(神輿)는 후지산을 본 따서 붉은 칠을 한「오야마상(お山さん)」이라고 불리 우는 독특한 것이다. 오타비쇼(御旅所,제례 때 신여를 본전에서 옮겨 임시로 안치하는 곳)에 안치되면 시내에서부터 산등성이의 십분의 일까지 준비된 오오타이마쯔(大松明)와 자식에 해당하는 타이마쯔(松明)에 일제히 불이 붙여져, 도로 1면이 불바다가 된다. 또 산등성이의 십분의 오부터 십분의 팔까지의 산장에서도 타이마쯔가 태워져, 마을과 산이 여름밤하늘을 수놓는다. 다음날은 억새풀을 역은 신여가 돌아오는「스스키 마쯔리(すすき祭り)」로 활기를 띤다.
나마하게(なまはげ) 마쯔리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은 없는가?...우는 아이는 없나?...게으른 며느리, 게으른 사위는 없는가?...」.귀신가면을 쓰고 도롱이에 허리띠를 하고, 짚신을 신고, 커다란 나무식칼을 든 젊은이 몇 명이 「워..워..」하고 괴성을 내며 마을을 돌고, 각 집을 찾아가는 오오미소카(大 日,섣달그믐날)의 행사이다. 각 집의 주인은 정장을 하고 귀신을 맞이하여 환대한다.「나마하게」는 화로에 생긴 "나모미(なもみ)"라고 불리는 그을음을 제거하는 "나모미하기(なもみはぎ)"에서 유래되었다. 그을음이 생길 정도로 게으른 사람을 징벌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 귀신은 사악함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새해의 신이기도 하다. 나마하게가 떠나면 새해 첫 하늘에 빛이 비춰지며 새해가 밝아온다.
시텐노지(四天王寺) 왓소(ワッソ)마쯔리
시텐노지 왓소마쯔리는 고대 동아시아 나라들의 국제교류를 영웅 위인들의 모습을 통해 우아하게 재현한 것이다. '왓소(ワッソ)'라는 말은 한국어의 '왔다'라는 의미로, 일본에서 마쯔리를 할 때 가마를 메고 '왓쇼이(ワッショイ)'라고 힘찬 구령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한국어의 '왔소'가 어원이라고 한다.
행사는 11월 3일 문화의 날(文化の日)에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수천면의 행렬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마쯔리는 신라 백제 고구려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각 시대의 인물로 분장한 수천명의 다니마치거리에서부터 시텐노지까지 행진하는 것이다. 행진은 성덩태자에게 불교를 전해 준 고구려의 고승 혜자를 선두로, 가야의 우륵, 일본에 문자를 전해 준 백제의 왕인박사,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 등 각 시대의 위인들과 영웅들을 비롯하여 발해, 중국의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의 배세청, 조선시대의 세종대왕, 그리고 조선통신사의 인물들이 행진한다. 장대한 행렬은 성덕태자를 비롯한 일본을 대표하는 문부대신, 만요시인 카기노모토히토마로 등의 영접을 받으며 시텐노지에 도착하면 끝난다.
시텐노지 왓소마쯔리의 심볼은 길이가 12미터에 이르는 일본 최대의 배수레이다. 이 배수레는 고대 동아시아를 향해하는데 사용된 것을 재현한 것이다. 또한 사물놀이패가 등장하여 행렬의 화려함을 더해 주는 것은 물론, 우주 만물의 리듬을 자유롭게 조절하여 듣는 사람들의 육체와 영혼을 고대의 세계로 인도한다.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마쯔리로는 쓰시마섬의 아리랑 마쯔리가 있다. 8월 중순경에 열리는 이 마쯔리는 조선통신사가 쓰시마섬을 경유하여 일본 본토에 상륙하였던 것을 기념하여 당시 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한 것이다.
마쯔리에서 알 수 있는 일본의식과 문화정책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은 마쯔리를 통해서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를 보존하고 전통적인 신성성을 계승하는 차원에서의 마쯔리, 일본을 세계속에서 알리고자 하는 관광적인 목적에서의 마쯔리, 일상으로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놀이로써의 마쯔리까지 그 범위와 내용은 다양하다. 일본사람들은 늘 직접적인 내면의 표출을 하지 않고 간접적이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그러한 일본인들의 특징을 고려해 볼 때, 마쯔리야말로 그들의 새로운 세상이며 돌출구가 되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고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일본인들의 정신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서양의 먹고 마시는 축제와는 달리 일본의 마쯔리는 그 기원와 지방의 특징을 잘 살려 관광의 자원으로까지 발전되어 왔다.
마쯔리는 신사, 사찰, 마을 등 지역단위로 개최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궁좌(宮座)라고 불리우는 조직에서 운영했던 곳이 많다. 마을이 생겨난 이래 구가나 권력자가 경제적인 부담을 떠맡음으로써 마쯔리의 '우두머리'가 된 예가 많다. 또한 마쯔리는 궁좌를 중심으로 정치와도 관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계속 변천되어 온 궁좌는 요즈음 촌좌(村座)라고 해야 할 정도로 당번제(當番制)로 변화된 곳이 많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사라져 가던 마쯔리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주민들을 단합시키게 한 요인으로 지역 야쿠자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적인 평등사회가 되어서인지 예전만큼의 궁좌 마쯔리의 활기나 엄숙함은 누그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정부는 마쯔리를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원정책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과 전승을 도모하고 있으며, '지역전통예능 등을 활용한 행사에 의거한 관광 및 특정지역 상공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일명: 마쯔리법)'을 제정하여 마쯔리에 관한 행사를 직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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