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남도 여행
매월 한 번씩 만나는 스터디그룹 회원 6명이 3월1일부터 2박3일간 봄이 오는 길목 남도로 봄맞이 여행을 다녀왔다. 굴비의 고장이요 백제불교 도래지인 영광에서는 법성포에 들러 굴비정식도 맛보고 인도불교의 도래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대가람 불갑사를 둘러보았다.
둘째 날은 대나무와 누정문화로 유명한 담양에 들러 대나무숲공원 죽록원에서 울창한 대숲속을 거닐며 청랭한 대나무 향기와 댓잎이 서로 부딪치며 자아내는 대바람 소리의 멋스러움과 낭만에 잠시 빠져보기도 하였고, 봄기운이 가득한 소쇄원에서는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생강나무 가지들을 노랗게 채색하고 있는 새봄의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기도 하였다. 담양의 명물인 떡갈비 맛을 놓치지 않고 즐겼음도 물론이고.
역사의 고장 전주에서는 한옥마을을 일일이 뒤져 가장 유명하다는 승광재(承光齋, 한옥체험관 이름으로는 삼도헌 三到軒)에 여장을 풀었다. 안채 사랑채 별채로 이루어진 유서 깊고 품격이 있으며 안주인의 조용한 응대(應對)가 특히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한옥 민박집이었다. 전주에 왔으니 저녁 메뉴는 당연히 전주의 전통음식인 비빔밥. ‘한국관 한옥마을점’의 비빔밥은 그 맛이 좋았음은 물론 여타 지역의 비빔밥과는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렵게 조금 다르면서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옥마을의 밤거리와 나지막한 돌담사이로 미로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길이며 서울의 인사동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한옥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을 즐기다가 다시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은 유명한 막걸리 골목이다. 제법 길게 이어진 골목 좌우와 샛길이 모두 막걸리집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약 두세 병 정도 용량)를 주문하면 한 상 가득 기본 안주가 깔리는데 값은 2만원이다. 막걸리가 비어 다시 한 주전자를 더 시키면 푸짐한 안주 한 상이 다시 또 차려지는데 이번에는 1만5천원이다. 세 번째는 6천원인데 역시 같은 방식이다. 일요일 밤이기는 하지만 테이블마다 남녀노소 없이 술꾼들로 초만원이다. 과연 유명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날 아침은 민박집에서 준 식권으로 대형 콩나물국밥집 ‘왱이’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왱이’는 파리처럼 손님들이 왱왱거리면서 많이 몰려오라는 뜻이란다. 재미있고 독특한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아주 빼어난 음식 맛 때문인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으나 어쨌든 손님들이 홀 가득 만원이다. 콩나물국밥도 맛이 좋았고 절대 가위로 자르지 말고 그냥 먹으라는 초대형 깍두기도 맛이 훌륭하였으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어온 모주 또한 그 맛이 일품이다. 역시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두 그릇 가득 더 내어온 추가 콩나물도 맛만큼이나 푸짐한 남도 인심을 말해주고 있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복원을 마친 거대한 동원9층석탑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고, 무너져내린 탑신의 한쪽을 볼품없이 시멘트로 메워버림으로써 아름다운 백제문화의 보물을 망쳐버렸던 서원9층석탑은 전부 해체한 후 다시 복원한다는데 지금은 공사 가림막 속에서 바닥 흙부분 발굴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튼 복원 공사를 다 마치고나면 우리나라 과거 불탑 중에서 가장 크고 높다는 동서 양대 석탑과 세 채의 금당, 두 개의 거대 연못, 좌우 긴 회랑 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사찰 규모와 아름다운 백제 불교예술의 진수를 여지없이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태화천을 가운데로 남북 양쪽으로 나누어진 가람 배치로 유명한 공주 태화산 마곡사는 찾아온 사람들이 별로 없어 그야말로 ‘절간처럼 조용’하여 오히려 더 좋았는데, 사찰 뒤편으로 ‘백범김구산책로’를 조성해 놓아 새로운 눈길을 끌었다. 눈 푸른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개울 남쪽 구역 도량은 마치 아직도 동안거가 끝나지 않은 듯 정적에 싸여 있어 저자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발걸음을 함부로 내딛기가 조심스러웠다.
오랜 칩거 끝에 나선 봄맞이 여행이라 기대가 컸는데 며칠간 계속된 포근한 날씨 덕분에, 맘 맞는 도반들과의 격의 없는 팀워크 덕분에,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여기저기 고을과 유적지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역사와 전통의 구수하고 깊은 맛 덕분에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장만할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법성포구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법성포에 인도식 석굴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고행상. 피골이 상접하도록 고행을 하는 것만이 올바른 수행법은 아니라니 수행의 핵심은 마음에 있다는 뜻일까?

석가모니 탄생상. 보리수 아래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태어나시다.

불갑사 대웅전. 지붕 용마루 가운데에 있는 보주 형식의 독특한 장식물을 주목하실 것. 이런 장식은 네팔 남중국 동남아 등지에서나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갑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재미있는 굴뚝 문양.

우리가 전에 다녀왔던 담양 죽녹원

소쇄원 제월당 앞 생강나무 가지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소쇄원 광풍각 기둥에 기대앉은 도반의 얼굴에도 봄이 가득하다. 이럴때의 광풍각은 따사로운 봄햇볕(光)과 훈훈한 봄바람(風)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혼자 해석해본다.

석양녁에 우리도 둘러보았던 적이 있는 가사문학관의 겨울 풍경. 죽림원에 게시된 사진을 다시 찍은 것임.

전주 한옥마을 에서 하룻밤 묵었던 삼도헌 현판. '삼도헌(三到軒)에 깃들어 옛 삶의 멋을 눈으로 즐기고(眼到), 순수한 전주 인심과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입으로 맛보며(口到), 이곳의 추억을 마음에 아로새기니(心到), 오늘 밤은 오롯이 내 안에 포근하게 잠들 수 있겠다.' 이만하면 멋과 낭만이 넘치는 아름다운 이름이 아닌가!

부채박물관

한옥마을이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있는 줄 미처 몰랐었다. 서울의 인사동과 북촌마을을 합쳐놓은 분위기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 놓은 '경기전' 전각 벽면에 새겨 놓은 거북이 두 마리. 목조건물의 화재 예방을 위한 상징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익산 미륵사지의 포대화상. 그냥 바라보기만 하여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웃음은 아주 강력한 전염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익산 미륵사. 복원된 서원9층석탑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빼았겼다.

층마다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사라져버린 백제의 옛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미륵사 연못의 고즈넉한 봄 풍경.
아래 : 마곡사 백범김구산책로 개울가에 피어난 버들강아지

첫댓글 좋은 여행 하고 오셨네요~~ 언제 막걸리 골목 함 다녀와야 겠는데요...
즐겁고 벗들과의 멋진 여행하셨네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언제나 남도가 그리워지네요.
가만히 앉아 남도 여행을 제대로 즐겼습니다. 직접 가보면 또 다른 느낌 이겠지만 그곳의 특색과 역사가 곁들여진 설명과 함께 사진을 감상하니 현장에 있는듯 합니다.
ㅎ 이 여행기를 이제 보았네요
전주 막걸리집은 그곳 친구가 목사라 들러 보지 못했네요 ㅎㅎㅎ
왱이네집에서 달걀과 김이 나오길레 한참 고민 했네요(어찌 먹어야 하는지...)
제가 마곡사 갔을때는 한참 공사중이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다 끝났겠네요.
좋은곳 많이 다니셨네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