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독재찬양방송저지비대위 이승만 미화다큐 1부작에 대한 입장>
1. 국민의 알 권리에 노력하는 귀 언론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논란의 재조명 = 도대체 무엇이 논란인가? = 재조명한 게 없다.
2. 어제부터 KBS가 이승만 특집 3부작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이 다큐는 그러나 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기는커녕 그 기획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의 짜깁기 수준의 다큐였다는 게 친일독재찬양방송 저지비대위(이하 비대위)의 판단이다. 제작비로 6억 4천만 원이 넘게 책정됐다고 하는데 1부(개화와 독립)의 방송내용만 확인했을 때 새로 발굴한 팩트는 ‘나전칠기’가 전부였다. 그 나전칠기마저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했다는 것 외에 어떤 사료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다.
3. KBS 방송의 멘트대로 이승만을 두고 “대한민국의 (건국)주역인가? 12년 독재자인가? 라는 수많은 논쟁”이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말해 이승만에 대한 학계의 논쟁은 없다. 대통령이라서 주역인지 대한민국 건국과정의 주역인지? 항일운동의 주역으로서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 되었는지 대단히 모호하다. 대한민국 건국주역이라면 마땅히 그가 독립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제대로 조명돼야 한다.
무엇보다 구한말 일제시기 이승만의 행적은 특별히 재조명할만한 내용이 없다.
4. 이승만은 일제 때 일찍 미국에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선처에 의존한 인물이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 구한말 그가 기독교와 서양문명을 동일시하고 미국을 이상국가로 인식한 것이 갖는 문제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에게 미국은 한국의 독립을 위한 활용가능한 국가의 하나가 아니라 이상국가였다. 이런 일방적 사고가 과연 진정한 의미의 독립운동사상이라 할 수 있는가?
독립보전을 위해 최초로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그 의미는?
5. KBS는 테오도르 루스벨트 면담 시 일진회 문제를 거론하며 허동현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이 시기 일진회가 친일단체가 아니라고 일반인들이 인식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일진회에 독립운동가들이 가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왜 이승만은 스스로 일진회에서 보냈다는 말을 했는가. 문명개화를 앞세웠을 뿐 일진회가 일본의 앞잡이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미 일진회는 1904년 후반부터 친일단체로서 본질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1905년에는 명확히 친일단체였다. 더구나 1904~5년 러일전쟁 말기 가스라-태프트밀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과 만주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미국은 1882년 조미수호조규가 아니라 가스라-태프트밀약으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인정/동의 했고 이후 이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데오도르 루스벨트는 먼로주의를 폐기하고 제국주의정책으로 나아가 식민지를 확장하던 시기의 대통령이다. 이런 미국이 한국의 독립을 도와주리라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기독교국가로서의 이상국가로서 미국을 상정한 이승만의 외교노선은 오류이다.
이승만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위상을 파악하려면 ?
6. 개인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 행적을 소개한다면 다른 독립운동가와의 노선 차이나 행적과 대비해야 그가 일제 강점시 항일과 대한민국 건국 주역이라는 일관된 기획 의도가 살아나는데 오로지 이승만만을 다룸으로서 다른 독립운동가와 형평성을 잃고 있다. 그가 해외로만 떠돌 때 정작 하와이의 박용만이나 안창호는 조선 국내 근처나 임정에 돌아와 활동을 했다. 그러다 박용만은 객사하고 안창호는 1932년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국내에 압송, 결국 고문후유증으로 숨진다.
7. 다른 독립운동가와의 삶을 비교하고 노선을 대비시키면 이승만의 독립운동이란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나온다. 그걸 비켜감으로써 일제시기 항일독립운동의 뭇별들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별이 몇 등급별인지 나올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3년전 같은 KBS 이승만 2부작 재방송이 차라리 낫다.
8. 어제 방송된 이승만 다큐 1부 다큐는 2008년 8월과 9월 같은 방송국인 KBS가 [한국사전](2008년 8월 30일, 9월 6일 방송분)을 통해 방송했던 ‘이승만 2부작’과 차별성이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3년전 방송의 내용과 비교했을 때 극도로 빈약하고 이승만의 부정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평가를 유보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2008년 한국사전의 방송내용을 보면 미국 하와이에서 발행하는 미국 지역지 <호놀룰루 스타블레틴 신문> (1915년 6월 17일자) 이승만의 기고문의 내용을 분석해 당시 이승만이 교육사업 등을 통해 벌인 독립운동의 내용을 비판한다. 2008년 KBS의 방송내용에 따르면 이승만은 지역신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고문을 발표한다.
“우리는 어떤 반일적인 내용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보편적인 인류애를 강조할 뿐이다. 이 지역(하와이) 일본인 신문들은 내가 반일감정을 일으킨다는 오해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호놀룰루 스타블레틴 1915년 6월 17일, 이승만 영문 기고문 中>
일제로부터 독립을 한다는 사람이 자신이 세운 학교에서 반일적 내용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이승만의 발언, 이 같은 이승만의 기고문 내용을 통해 과연 이승만이 항일독립운동의 진정한 의지가 있었는지 따져보는 논의의 진전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어제 방송내용에는 이러한 내용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승만의 하와이 행적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3년전 KBS 방송보다 더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9. 하와이 행적에 대한 취재와 논란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학계에서는 이승만의 분열적 태도와 분파적 행태에 대해 적지 않는 비판이 제기됐고, 상당수는 학계의 연구성과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3년전 KBS의 방송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제기된다. 당시 한국사전의 방송내용을 보면 하와이 한인교포인 <로베르타 장>씨가 70세 이상의 하와이 이민1, 2세대 노인 100명이 넘게 취재해 촬영한 인터뷰 테잎을 공개하면서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이유와 원인과 테러와 고발 등 한인사회의 분열의 책임의 상당부분이 이승만과 이승만 지지자에 있었음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특히 당시 방송에서는 1918년 한인사회에 충격을 준 재판의 내용을 공개한다. 당시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을 지향했던 박용만은 하와이에 정박중이던 일본 군함 <이즈모호(출운호)> 폭파하려고 한다는 밀고로 채포돼 재판을 받게 된다. 당시 <신한민보 1918년 6월 27일>는 이 사건의 배후로 이승만을 지목한다. “이승만이 일본 군함 폭파계획을 비난하며 증인으로 나섰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방송을 통해 이승만이 하와이 한인사회의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의 문제점을 따졌다. 따라서 어제 방송된 다큐는 3년전 방송의 내용을 토대로 이승만의 하와이 행적에 대한 평가 즉 외교노선과 교육사업을 통한 이승만의 독립운동 노선의 문제점과 한계를 명확하게 짚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진지하게 묻는 작업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KBS는 이승만이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주장한 박용만과 대립하며 하와이 한인사회에 야기한 분열의 내용의 정확한 어떤 것인지, 어떤 분열이었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10. 그 외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히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의거를 “무법한 개인행동‘이라고 폄훼했던 이승만의 태도는 누락됐고,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도 ’어리석은 짓들‘이라고 평가하며 항일의열투쟁에 대해 부정과 조소를 보냈던 이승만의 입장은 방송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신문 <크로니클>에 보도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른바 비밀사절을 상해임시정부에 파견하여 테러행위를 즉각 중지하도록 설득하였다고 한다. 이승만에 의하면 이봉창이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한국의 독립에 하등에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을 탄압하는 구실밖에 주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처럼 이승만의 30년이 넘는 미국사회 체류의 행적은 제대로 따지며, 과연 이승만의 독립운동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따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그의 항일투쟁을 평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결국 이번 다큐는 이승만의 독립운동 공적을 정확히 짚고 평가하는 데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11. 게다가 <대통령 참칭> 논란도 마찬가지다. 3년전 KBS는 이 문제에 대해 안창호의 편지와 이승만의 답신을 공개하며 이승만이 대통령을 자처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안창호 편지 <이승만 각하 임시정부는 국무총리의 제도이고 ... 어느 정부에나 대통령 직명이 없으므로 각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대통령 행사를 하시면 헌법위반이며 신조를 배반하는 것이니 대통령 행세를 하지 마시오>
이승만 답신 <내가 대통령 명의로 각국에 국서는 보냈으나..... 지금 대통령 명칭을 변경하지 못하겠소. 만일 우리끼리 떠들어서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소문이 세상에 전하되면 독립운동에 큰 방해가 있을 것이며, 그 책임이 당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니 떠들지 마시오>
하지만 어제 방송은 국무총리나 집정관총재는 미국식으로 번역하면 “프레지던트”라는 주장을 통해, 이승만의 대통령 참칭과 분열의 책임이 단순히 명칭의 영문 해석상의 문제 수준으로 호도하고 있다.
12. 이에 대해 이만열 교수는 비대위 자문을 통해 <이승만이 임시 정부 승인을 위해 노력할 것처럼 내용이 형성돼 버리면 그가 가는 곳마다 분열을 일으켰다는 것이 덮여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고, 마치 독립운동을 위해 굉장한 헌신을 한 것처럼 되어 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번 다큐 방송은 3년전 방송에 비해, 나전칠기를 보여준 것 외에 아무런 역사적 사실의 진전도 없다. 게다가 일부 방송과 인터뷰 내용도 겹칠뿐 아니라 (하와이에서의 고문으로 인한 손행동의 지적하는 내용 등) 이승만의 평가에 대해서는 대단히 후퇴했다. 이렇게 6억 4천만원이 넘는 제작비 책정을 통한 다큐가 이정도라면 차라리 3년전 다큐를 재방송하는 게 나을 것이다. 최근 절정이라는 이육사 드라마보다도 못하다. 이육사가 훨씬 독립운동을 짙게 했다.
13..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2부, 3부가 더 문제다. 미국식 정치제도와 민주주의, 기독교정신에 경도돼 있던 이승만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며 어떻게 독재자로 변질돼 가는지 추적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듯 하다. 2부와 3부 역시 지루한 이승만 찬양방송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특히 어제 KBS 뉴스9를 통해 내보낸 리포트의 구절을 봤을 때 더욱 그러할 것이다
“또 4.19 당시 이승만은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해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울먹였던 것으로 당시 화면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
<2011년 9월 28일 KBS 뉴스 9 멘트 中>
3.15부정선거와 각종 부패에 항거하다 김주열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이승만 정권이 휘두른 총칼에 숨져갔는데도, 당시 병원을 찾아서여 사태를 파악하고 울먹였던 화면이 드러났다는 멘트가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승만 역시 4.19민주혁명의 피해자라는 말인가? 4.19민주혁명을 통해 독재자 이승만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고 쫓겨났다는 사실은 기초적인 역사교과에서 등장하는 진실이다. <끝>
2010년 9월 29일
친일ㆍ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