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부는 말 그대로 음악관청이다. 한서의 예문지와 한서의 예악지에 따르면 악부는 한무제 때에 설립된 음악을 관장하는 기구였다. 하지만 1977년에 진시황 묘 부근에서 발굴된 자료에 따르면 악부가 이미 진나라 때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음악을 관장하는 전문기구로서 악부의 임무는 주로 세가지이다. 첫째는 문인 창작 및 민가를 포함한 가사의 채집이고, 둘째는 악보를 제정하여 채집해온 가사를 음악에 맞추어 넣는 것이며, 셋째는 악공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대략 위진 때부터'악부'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악부에서 부리워지던 노래를 통털어 악부라 불렀고, 여기에 모방하여 창작한 것도 포함시켰다. 이렇게 악부는 음악기구의 명칭에서 시가체제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당나라 중엽에 이르러 원진과 백거이(白居易)등이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일으켰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신악부는 사회문제 반영을 특징으로 하고 시를 이용한 풍자를 목적으로 하는 시가 창작으로서 음악과는 관계가 없고, 여기에서 말하는 악부와는 다른 것이다. 한대 악부기관이 사람을 파견하여 민간가요를 채집하게 한 대규모 민간채집활동은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서 예문지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 채집된 서한 만가는 138편에 달하는데, 이 작품들은 대부분 없어졌다. 지금 남아 있는 한대 악부민가는 3,40수 정도이고, 그 가운데 서한의 민가로 고증이 가능한 것으로는 '강남(江南)'등 7수 정도에 불과하다.
2. 악부시집
전적으로 악부시를 실은 작품집으로 송대 곽무천이 펴낸 '악부시집(樂府詩集)'이 있다. '악부시집'은 악부시를 총망라하여 집대성한 저작이다.그 분류는 남조 진(陳)나라 석지장(釋智匠)의 '고금악록(古今樂錄)'과 당나라 오경(吳競)의 '악부고제요해(樂府古題要解)'를 참고하여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악부시
한대 악부민가는 시경으로부터 시작된 현실주의 전통을 발전시켜 사회생활을 광범위하게 반영하고, 백성들의 사상과 정서를 깊이 있게 표현해냈다. 한서의 예문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한대 악부에서 채집한 각 지방의 가요헤는 실제생활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몇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추위와 기아에 시달리는 백성들이 점차 각성하고 항쟁하기시작하는 것을 표현한 것,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작품으로 '동문행(東門行)'을 들수 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몇 차례나 망설이던 끝에 칼을 빼들고 저항에 나서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둘째, 오랜 기간에 걸친 전란과 불합리한 병역제도가 백성들에게 커다람 재난을 안겨주었음을 묘사한 민가,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으로는 '십오종군정(十五從軍征)'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15세에 군대에 갔다가 80살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온 노인의 바참한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한나라의병역제도에 따르면 백성들은 56세에 병역의 의무가 해제되지만 이 규정은 말 그대로 헛된 규정일 뿐이었다. 세째, 봉건예교로 말미암아 희생당하는 청춘남녀의 처지를 묘사한 작품. 대표작품으로는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를 들 수 있다. 유란지(劉蘭芝)와 초중경(焦仲卿)이라는 청춘 부부가 시어머니의 학대에 못이겨 결국 두사람 모두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로서, 불합리한 혼인제도와 대가족제도 하에서 유린당하는 인권을 고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진지한 묘사에 주인공들의 개성을 생동적으로 묘사하여 북조의 민가인'목란시(木蘭詩)와 더불어 고대 악부민가의 쌍벽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악부시의 분류
악부시의 분류는 서한 때의 채집 지역에 따라 분류하였으나, 이는 문학적, 음악적 분류는 아니었다.악부를 음악의 성질과 용도에 따라 최초의 전문적인 분류를 한 때는 명제 영평 4년에 이르러서다. 송대 정초는 이른바 4품론에 의해 제의용,수렵용,연용,군중용 네가지로 분류하고 있지만 전적으로 귀족적인 입장에서 분류된 것이기 때문에 민간의 가요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다. 악부의 분류는 송대 곽부천이 지은 악부시집 100권의 12분류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한대(원문에는 古辭로 표기됨.)로부터 오대에 이르는 동안의 악부시를 음악적 특성에 따라 12종류로 나누었다.
교묘가사(12권)
교묘 상릉때에 사용하는 노래로, 전형적인 귀족 문인들의 작품이다. 시경의 송에 해당한다
연사가사(3권)
군신 간 연회와 사냥 때 사용하던 노래이다.
고취곡사(5권)
서역에서 건너온 것으로, 말 위에서 불던 군악이다.
횡취곡사(5권)
고취곡사와 마찬가지로 서역에서 건너온 것으로, 말 위에서 불던 군악으로 현재 가사는 모두 산실되었다.
상화가사(18권)
비교적 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는 악부시로, 현악과 관악의 가사이다. 상하란 관현악과 현악기의 협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악절을 잡는 자가 노래를 한다. 라고 했다. 가장 음악성과 문학성이 높은 민간 작품이다.
청상곡사(8권)
상화가사와 마찬가지로 민간 가사이며, 오성 가곡,신현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장편 서사시가 대부분이다.
무곡가사(5권)
제례 등에 쓰이는 아무,연회 등에 쓰이는 잡무, 그리고 산악들을 포함하고 있다.
금곡가사(4권)
곡조만 있고 가사는 없는 것이다.
잡곡가사(18권)
현존하는 잡곡은 대부분이 민간 가요에서 채집된 것이나, 문인들의 작품들도 있다. 잡곡가사는 민간의 각종 정서를 다양하게 담고 있는 음악과 문학의 종합 예술이다. 상화가사, 청상곡사와 함께 한대 민간 악부시의 가장 진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또 이들 잡곡가사 등의 작품들에는 이미 5언시의 형태가 뚜렷이 형성되는 등 한대 민간 문학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
근대곡사(4권)
이것은 한대에는 없었던 것으로, 수.당대에 등장한 잡곡을 말한다.
잡가요사(7권)
입악이 되지 않은 순수 가요로, 각 지역의 민가가 대부분이며 ,문인들의 작품도 보이고 있다.
신악부사(11권)
역시 한대에는 존재하지 않고 당대에는 등장했는데, 음악과는 관계없는 새로운 형식의 순수 악부시이다.
악부시의 예술적 특성
1) 내용의 특성
악부가 지닌 뛰어난 내면적 예술성은 진솔한 삶을 소재로 한 서민 정서였던 이유로 다른 문학보다 생명력이 있다는 것과 시,악,무의 혼합체라는 것 두가지에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언어를 통한 감정의 토로, 청각적인 음악 효과, 그리고 춤의 동작이 함께 어우러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악부는 가장 전통적인 종합 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대, 당시 어둡고 밝은 생활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 형식의 특성
자유스럽고 다양함이 특성이다. 한대의 악부시는 시경과 초사류의 작품 및 한부와 같은 귀족 문학과 달리 고정된 장법과 구법등이 없으며, 길고 짧음도 마음대로 였다.4언시 시경체를 답습한 것도 없지 않으나, 절대 다수는 새로이 출현한 산체시라 할 수 있다. 또 악부시는 형식적인 면에서 잡언체와 5언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잡언체는 1자, 2자로부터 8,9,10자등으로 다양한 구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글자 수의 자유스러움은 바로 기탄 없는 구어체의 표현에서 비롯되고 있다. 한대의 악부는 대단히 자유스러운 형식 속에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