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11년 전 참사, 노동현장은 매일이 참사
손정순(시화노동정책연구소)
지난 4월 23일 필자가 있는 연구소가 주도해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 영화 ‘침몰 10년, 제로썸’ 상영회를 시흥시에서 진행했다. 강산이 변한다는 11년 전에 벌어졌던 참사였지만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화물까지 포함해 1만 톤에 달하는 큰 배가 왜 갑자기 침몰했는지 그리고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304명을 왜 구하지 못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부터 한국 사회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그 귀결은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2022년 이태원 참사로, 2023년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송참사로 이어졌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참사로 불리는 대규모 인명 사고를 막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왜 참사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참사가 벌어지는 현장이 있다. 바로 한국 사회 노동 현장이다. 2023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812명이었다. 산재보험법상으로 산재 승인이 이루어진 경우만을 집계한 수치이기에 실제 노동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더 많을 것이다. 평균해 보면 일평균 2.22명이 집으로 퇴근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노동자 2.22명의 가구 구성원(≒2.3명)인 5.1명, 직계존비속 등 친인척까지 더하면 최소 10명 이상이 청천벽력 같은 산재 사망자의 유가족이 되는 것이며, 1년이면 최소 3,600여 명의 유가족이 발생하는 셈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노동 참사는 이천 지역에서 발생한 물류센터 화재 참사이다.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재중동포 노동자 17명을 포함해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2008년 12월에도 이천 소재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12년이 지난 2020년에도 거의 동일하게 이천지역 물류센터 건설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리고 작년인 2024년 6월 24일에 경기도 화성 소재 2차전지 제조업체였던 아리셀에서 화재 참사가 발생해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는 규모가 ‘큰’ 말 그대로 참사인 경우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매일같이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 산업안전 노동단체인 노동건강연대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2025년 1월에 46명, 2월에는 73명, 3월에는 70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최근에는 지난 4월 11일 신안산선 건설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50대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얼마 전 4월 17일에는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에 노출돼 실명한 이진희 씨(38)가 뇌출혈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29세였던 2016년 2월 인천 남동공단에 소재한 스마트폰 부품 하청업체에 들어가 스마트폰 몸체를 깎고 전원 버튼 만드는 일을 했다. 스마트폰 몸체를 공작 기계로 매끄럽게 가공하는 과정에서 메틸알코올(메탄올)이 뿜어져 나왔다. 마스크와 목장갑만 끼고 일하던 이 씨는 메탄올에 그대로 노출됐다. 결국 이 씨는 출근 4일 만에 메탄올 중독으로 뇌 손상을 입고 두 눈을 실명하면서 뇌경색 장애 4급,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투병 끝에 결국 사망한 것이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인 노동자가 일하다 싸늘한 주검으로 귀가하는 셈이다.
앞의 참사 사례를 포함한 노동 참사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언론에서 언급되는 원인은 고질적인 (사용자와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과 사용자의 산업안전 교육 미흡, 이에 대한 국가의 관리, 감독 부재가 주원인이라는 주장이 반복되어 왔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서처럼 노동 참사에서 국가의 부재는 여전하다. 예를 들어 아리셀 화재 참사 대책 중 하나로 이주 노동자를 위해 해당 모국어로 된 산업안전 교육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는 이미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때도 제시된 대책이었다. 16년이 지나는 동안 모국어로 된 산업안전 교육을 못 했다는 얘기인가? 고용노동부가 전혀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책임 회피밖에는 안 된다.
참사 수습 과정 또한 거의 동일한 양상이 반복됐다. 대책 본부 구성 → 현장 점검·특별 근로감독과 참사 원인 파악 → 대책안 발표 → (다른 참사 발생 시) 또 대책본부 구성 … 도돌이표식 참사 수습 과정이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고용노동부는 노동 참사 수습에서 참사 책임자는 사용자(기업)이기에 사용자 책임이라는 원칙하에 사용자와 유가족이 적절히 협의, 논의해 참사 피해를 수습(보상)하라는 방관자적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이는 작업장에서 노-자 간 힘의 불균형을 작업장 밖 장례식장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기업은 유가족을 파편화, 개별화하면서 금전적 보상에만 치중해 왔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사과와 처벌, 근본적인 재발방지책 마련은 뒷전으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사측은 금전적 보상마저도 왜곡해 사람 목숨 값을 놓고서 유가족이 흥정한다는 교묘한 마타도어를 퍼트리기도 하였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시체 팔이’한다는 식의 극언이 횡행한 것처럼 말이다.
과연 이것이 노동 참사의 전부인가?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노동 참사 희생자들은 공통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앞서 언급한 참사에서 대부분의 희생자는 불법적인 다단계 인력하도급 업체(소개, 인력, 파견업체 등)를 이용한 일용, 파견노동자(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였다. 물류창고 화재 참사 피해자의 대부분은 건설일용 소개 업체를 통해 취업한 건설 일용 노동자이며,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 중 이주 노동자 전부는 정왕동 지역 인력 소개·파견업체(일명 용역업체)를 통해 취업한 노동자였다.
노동 참사는 노동시장 내 가장 취약한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주변부 노동시장에 만연한 다단계 인력하도급(간접고용 비정규)이라는 고용구조상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노동시장 내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를 방치한 채 노동 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산업안전 제도와 정책을 얘기해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산업안전보건상 위험은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를 타고 내려와 노동시장 내 가장 취약한 주변부, 즉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의 최말단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임금으로 3D 일을 하면서 이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노동 현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리셀 참사를 주목하고자 한다. 아리셀 참사는 노동 참사에서 유가족협의회가 적극적인 voice를 제기한 첫 사례이다. 과거 참사에도 유가족 모임이 있었지만 대체로 장례절차와 보상 문제를 논의, 협의하는 수준에만 그쳤다. 아리셀 참사의 경우에는 장례절차와 보상 문제뿐만 아니라 정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민관합동사고조사위 구성을 요구하면서 지금도 아리셀 모회사인 에스코넥을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아리셀 유가족협의회의 모습을 확대해 참사 발생 이전 단계에 적용한다면 결국 작업장 내 노동자의 집단적 voice 제기가 가장 1차적이면서 근본적인 참사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위험성 평가, 물질안전보건자료 비치, 산업안전 교육 등이 법 조항대로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아리셀 참사를 비롯한 노동 참사는 막을 수 있었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누가 이를 요구할 것인가이다. 결국 작업장 내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대변체(≒ 노동조합)의 존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노동 참사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입법과제와 노동정책이 노동 참사 예방과 수습·대응에서도 중요하다.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한 작업장 내 집단적 voice를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산재 사망·사고의 60%는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 이해대변에서 기업규모별 분절 구조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노동자의 죽음을 예방하고 매년 4,000여 명에 이르는 유가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방향은 곧 일터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대변 체계와 구조를 어떻게 갖출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는 한국 사회 노동조합이 풀어야 할 해묵은 과제이기도 하다. 전 세계 노동자의 축일(祝日)인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메이데이에 쉬지 못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지난 월요일인 4월 28일은 ILO가 정한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었다. 일하다 집으로 퇴근하지 못한 모든 노동자의 명복을 빌며 앞으로는 노동자의 명복을 비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지 죽거나 다치기 위해 노동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에 4월 30일자로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