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이란 단어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많이 외면당하는 단어 중 하나닙니다. 누군가에게 복종을 한다는 말은 그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니 자유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젠 교회 안에서도 복종과 순종을 이야기하면 싫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복종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최고의 권위이신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가치 기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유의 주재(主宰)이신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복종과 순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순종과 복종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이기에 그러한 분위기가 교회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를 향한 복종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끼리, 교회의 지체들끼리 서로 복종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달라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은 복종을 원하지 않습니다. 부패한 인간, 타락한 인간, 세속에 물든 인간은 지배하기를 원합니다. 반항하기를 원합니다. 복종이라는 미덕은 타락한 인간의 생리와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복종이라는 것은 거듭난 사람들만이 이행할 수 있는 덕목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성은 서로가 서로에게 복종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말씀을 읽다 보면 부부 관계에서, 부모 자녀 관계에서, 종과 상전의 관계에서 복종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복종의 반대말은 지배, 권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부모가 그 자녀를, 상전이 그 종을 지배하라는 말씀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배라는 말을 별로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서로 복종하는 자세로 관계를 맺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복종해야 할 이유, 복종의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죽으실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원하셨기에 주님은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본 받아 다른 지체들을 위해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실 말이 쉽지 다른 지체들에게 복종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복종은 계산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서도 안 됩니다. 종이 하는 복종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냥 시키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피차 복종하라고 하셨다면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서로 복종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임하셔서 우리를 지배하시면 서로 복종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성령 충만하여 서로 복종하면서 아름다운 교회공동체를 이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지난 주일 공동체예배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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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하우스 고양 공동체예배 설교
2024년 10월 6일(주일)
제목/ 서로 복종하라
성경본문/ 에베소서(Ephesians) 5:21
설교자/ 안창국 담임목사
https://youtu.be/diVAA6H2CeY?si=PwcWTnATxa_Wok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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