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볼리비아 <1> 김성희 수녀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안녕하세요? 축복의 땅 한국은 교황님의 방문으로 수많은 치유와 기적과 기쁨과 감동의 시간으로 충만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저 또한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 알토의 조그마한 본당에서 교황님의 일정을 따라가며 연신 뿌듯했었지요. 때때로 우리는 보이는 기적을 바라지만 교황님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믿지 않는 이들까지도 하나로 모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요 기적이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명 한명을 부르실 때도 의심과 나약한 마음을 벗겨내시고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지만 가장 은밀하고 개별적인 확신과 사랑으로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저는 이곳 사람들의 투박한 마음을 통해서 깨닫곤 합니다.
신부님은 자동차 정비사
저희 본당에 올해 새로 부임하신 ‘루이스’ 신부님은 아이마라 원주민으로 현대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시골 벽촌에서 자랐습니다. 14명의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형제 중 7명은 어릴 때 죽고 지금은 7명의 형제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는 귀도 안 들리고 치아가 하나도 없는데 지금도 혼자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신부님이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집을 떠날 때 어머니는 “가지 마라”고 붙잡으셨는데 신부님은 “어머니가 제 인생을 대신 살아 주느냐”며 집을 떠나셨답니다.
루이스 신부님은 어릴 때 자신이 사는 시골 동네로 미사를 오신 외국인 신부님의 영향으로 사제의 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신학생 시절에는 공부하면서 페인트칠, 담쌓기, 공사일, 청소 등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신학교 공부가 무료가 아니므로 공부를 하는 대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릴 때는 터진 신발을 철사로 꽁꽁 동여매고 학교에 다니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맨발로 다녔다고 합니다.
사제가 되어서 첫 발령을 받은 시골 본당은 미사도 없고 일거리도 없어서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에 거의 굶어 죽을 뻔하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했습니다. 덕분에 자동차를 조립해서 만들 정도의 실력으로 자동차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12년 동안 성당만 있고 사제관도 없는 곳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밤에는 성당 의자에서 쪼그리고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이곳으로 발령을 받아 처음으로 사제관이 생겼다며 날마다 콧노래를 부르십니다. 신부님은 “나는 가난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부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제관에 가 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분명 신부님 사제관에는 침대도 있었고 책상과 가스레인지 등 살림살이가 있었는데 전에 살던 신부님이 몽땅 가져가 버려서 사제관이 텅텅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남은 것은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찬장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루이스 신부님은 묵은 먼지를 청소하고 기도실에는 감실을 모시고 마룻바닥 왁스질을 하며 지금의 삶에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루이스 신부님은 밤에는 살레시안 대학에서 야간 수업을 듣습니다. 그리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을 합니다. 사제가 됐다고 해서 월급이 나오거나 생계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본당 운영을 위해 신부님은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 지역은 신자들도 가난하고 그날그날 살기가 어려우므로 노력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 먹고 살기가 힘이 듭니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오늘 하루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신부님은 이곳에 와서 한국 수녀들을 만나서 아주 좋다고 하십니다. 당신은 우리가 있어서 힘이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도움을 드린 것뿐인데도 당신도 이것을 도와주겠다, 저것을 도와주겠다면서 보답을 하시고 외국인이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느냐며 우리의 어려움에 함께 해주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도 장담을 하시고는 쩔쩔매기도 하시지만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로 웃으면서 넘어가곤 합니다.
주님의 이끄심에 정든 고향을 떠나
이곳 볼리비아에서 익숙한 곳을 두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마라 원주민들은 자신의 고향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가까운 도시 아래 라파스에 내려가는 것조차도 두려워합니다. 더군다나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이들이 가족을 뒤로하고 집을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독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곳의 삶을 묵상하다 보면 마치 척박한 오지 마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메마른 우물을 파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메마른 지가 하도 오래되었는데 하루아침에 물이 나올 리는 없겠지요. 그런데 다시금 신부님의 삶과 성소를 보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시골 벽촌에서도 숨은 보물을 찾아내시는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듯 사무엘을 부르시듯 모세를 부르시듯 그렇게 당신의 일꾼을 찾고 계셨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부르심의 연속이고 하느님께서는 구체적인 목적지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며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시니 그 점만 굳게 믿고 따라오라는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야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부르심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삶의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결국 다다르게 될 궁극적 목표는 바로 하느님 당신이겠지요.
이들에게 성소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고 부르심의 길을 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일은 커다란 기쁨입니다. 이곳에서 저의 존재는 그저 수도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니까요. 하느님께서 이들 한명 한명을 부르시고 이끌어 가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커다란 신비요 기적이며 이들을 통해서 제 성소를 더욱 사랑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알토 신학교는 30여 명의 신학생이 입학하면 사제가 되는 이들은 2~3명에 불과합니다. 척박한 성소의 땅이지만 그렇다고 씨앗을 뿌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겠지요.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이끄신 것 또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도의 어디쯤인지도 몰랐던 낯선 땅으로 부르시고 계속해서 돌보아 주시고 미리 마련해 주시고 어려움이나 걱정들이 생길 때마다 당신의 섭리로 해결을 해주시니 이보다 더 좋으신 분을 저는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성소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 사람의 구체적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하느님께서 주신 성소를 사람이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요. 하느님 앞에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며 모두가 부르심을 받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사는 것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분의 부르심에 합당한 응답을 드리기 위해 서로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를 이끄시어 참 삶의 길, 해방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힘과 용기를 주시는 주님과 함께 오늘도 힘차게 길을 나섭니다.
도움 주실 분(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시티은행 622-00044-252-01 (김효진수녀)
신협 131-016-157630 (이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