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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 한국에 비해 미래가 없다는 중국의 상징은 周易 28 澤風大過택풍대과이고, 미국 兌少女와 우리나라 艮少男이 부부가 된다는 상징은 周易 31 澤山咸택산함이며, 분단으로 빨갱이/파랭이가 반목하지만 결국 통합을 이루는 상징은 周易 38 火澤睽화택규였다. 변화원리인 周易은 君子之學군자지학으로서 철학적 經傳경전이지만, 나는 豫測學예측학과 豫言書예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나라 미래는 통일대국이 될 것이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우리로서는 살 맛 나는 희망의 세상이겠지만, 반면 중국은 잠깐 빛을 볼 뿐 미래가 없다고 예측했다. 과연 그러할까? 周易을 보고 주장했을 뿐 신이 아닌 이상 솔직히 자신 있게 장담할 수는 없다. 현실적 국제관계와 과거사를 통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석학들의 국제정치 분석은 정확한 데이터에 의해서이기에 과학적이다. 눈동냥 귀동냥으로 어쭙잖게 얻은 정보지만 우리 모두 공유하여 나쁠 것이 없다 생각하여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1492년 해풍을 따라 항해하는 돛단배를 띄워 스페인을 출발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되고,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전쟁준비를 마친 나라의 군인들은 바다 건너 육지라면 어디든지 가 빼앗고 지배하며 약탈을 했다. 동시에 유럽 각국에서 많은 사람이 아메리카로 건너가 신세계를 개척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고, 오랜 세월에 걸쳐 서부개척사가 전개된다. 말이 서부개척사이지 마구잡이식 살상을 자행한 서양인들의 아메리카에 대한 대륙 침략사이다. 철과 화약으로 만든 무기로 마치 산짐승을 사냥하고 그물로 물기기를 잡듯 원주민을 살상하며 무한대로 펼쳐진 대륙을 쉽게 빼앗으며 넓혀간 것이다. 기름진 땅에서 수확된 농산물은 엄청난 치부였고, 공업화와 함께 땅을 파헤치며 캐낸 지하자원은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개인주의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친 집단은 그야말로 無所不爲부소불위였고, 합리적 분배원리를 생각해 냈으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시작이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이렇게 생겨났으며, 힘없는 나라는 힘있는 나라에게 속절없이 먹히는 무법천지가 바로 국제관계고 국제정치다. 한 편 영국 탄광 기관부의 기관공으로 근무하던 조지 스티븐슨은 1814년 외연기관인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폭발적 산업혁명에 기여를 한다. 송진의 화석 琥珀호박을 헝겊으로 문지르면 磁場자장이 생긴다는 것에서부터 출발, 전기에 대해서는 2천 년 전부터 연구되어 왔다. 이후 자석이 전력을 만든다는 것에 착안 초기 발전기를 발명했고, 전기로 세상을 밝힌 남자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는 1821년에 최초의 전기 구동 모터를 성공적으로 시연하면서 혁명적인 전기 기술을 세상에 알려 응용 전기기술의 황금시대를 연다. 1879년 미국의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게 되고, 이후 산업현장에서 전기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많은 전기 기술을 응용하게 한다. 서양에서는 공업기술의 폭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공업기술의 원동력은 에너지의 뒷받침이 필요했기에 석탄과 석유는 국력과 국부를 좌우했다. 엔진이라 부르는 내연기관은 1859년 벨기에의 기술자 에티엔 르누아르가 고안하고, 독일의 기술자 니콜라우스 오토가 개량하면서 공업화에 성공하고, 결국 외연기관인 증기기관의 몰락을 예고한다. 내연기관이 실용화되면서부터 공업화로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세계 각국에게 석유는 절대적 자원이었으며, 석유수송을 위해 해양산업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변해갔다. 석유제품은 훗날의 이야기이고.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은 일본 동경 앞바다에 군함을 띄워놓고 개항을 요구했으며, 하는 수없이 에도 막부는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는다. 그리고 1858년에는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으니, 이것이 근대일본의 탄생이었다. 19세기 중엽 청나라가 영국에게 무릎을 꿇으니 아편전쟁이 그것이었고, 이는 중국에 대한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발판이 되었으니 청나라의 몰락은 급속도로 진행되어 갔다. 일본의 공업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규모가 커갔고, 미국 영향력에 굽실거리고 빌붙으며 영역을 급속도로 넓혀갔다. 일본은 공업기술력으로 무장을 한 다음 한반도를 손아귀에 넣었고 곧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청나라 속국이나 다름없던 조선은 힘없이 무너지며 열강들의 전초기지가 되어갔고, 내란으로 인해 일본군을 끌어들인 탓에 한일합방을 당한 것이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사이 일본은 미국이 생각했던 것 보다 엄청나게 커갔다. 방치하면 우환이 될 것이라 생각한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에 대주던 석유 수출을 중단했다. 석유가 없으면 기동력이 떨어지고 손이 미치지 못하기에 조선도 중국도 식민지 그 어느 나라도 모두 독립할 것을 알기에 다급해진 일본은 석유가 생산되는 인도네시아를 침략한다. 헌데 인도네시아는 이미 프랑스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세계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으며,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연합을 맺어 2차 세계대전에 합류하며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 태평양 전쟁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1945년 독일은 연합군에게 항복했고, 일본도 미국에 항복하면서 조선은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지만, 소련과 미국이 나누어 갖기로 해 남북은 38선을 경계로 분단되고 만다. 조선이 분단된 것은 조선의 힘이 약해지면서 일본이 식민지화했기 때문이다. 다행이 미국이 일본을 이겨냄으로써 해방될 수 있었으니 엄밀히 말해 우리는 일본은 미워하더라도 미국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우리에게 한 짓을 보면 밉지만, 그러기 전 우리가 힘을 기르지 못함을 반성해야 한다. 만에 하나 미국이 한반도를 소련에게 양보하고 떠났다면 우리는 어찌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직한 일로 고맙고 은혜로운 미국이라 해도 아깝지 않다. 易地思之역지사지로 보아 우리가 일본이었다면 조선을 어떻게 했을까?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더하지 말란 법도 없다. 대륙성 기질과 함께 한민족에게는 잔인함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일제치하 독립 운동가를 연상해보자.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한 민족성인데, 언제부터인가 강자한테 약해지고 쉽게 분개하며 요행을 바라기도 한다. 일본인들의 영향이라고 본다. 강탈당하지 않았으면서도 가난하다면 부자를 나무라면 안 된다. 부자가 되는 길을 가지 않았기에 가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내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비겁하다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어려서 철들기 전 미제 구호품을 받아먹은 기억이 난다. 생소한 깡통 속의 분유와 커피가루와 통조림, 누나는 입던 헌 옷이지만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배급받았다. 밀가루와 강냉이가루와 안남미 쌀 배급에 멋모르고 좋아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약소국가 백성의 서글픈 기억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가까운 이웃 일본사람이 구호품을 주었다던 말은 듣지 못했으니, 멀리서 보내온 구호품으로 보아 미국은 맘씨 좋은 신사 나라로서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미국은 남한 정부를 세우도록 도와줬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와서 구해주지 않았는가? 미국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공산치하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친일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반미를 외치는 부류도 있으니 이유는 무엇인가? 제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국민성에 있다고 본다. 김상국의 노래 회전의자에 ‘억울하면 출세하라’가 있고, 많은 사람이 이 말을 인용하며 강조하는 이유를 곰곰이 음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과 미국이 맺고 있다는 소파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계약이 평등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불리하거나 싫으면 거절하거나 안할 일이지 불평하면 안 된다고 본다. 갑질은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힘의 원칙만이 통하는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군인과 군사력은 전쟁하기 위하여 막대한 돈을 써가면서 준비하는 것이고, 군사훈련 모두는 살상과 파괴가 목적이다. 적십자와 의료진은 그렇지 않겠지만 오로지 사람 죽이는 연습이 군사훈련으로, 군사작전에 들어가면 살인면허를 받은 것과 같다. 고의가 아니라면 작전 중 민간인을 죽거나 다치게 해도 죄를 물을 수 없다. 군사작전에서는 사람을 죽여도 좋다고 했으면서 막상 사람을 죽였다고 책임추궁을 한다면 군인의 입장에서는 군대가 아니다. 군대로부터의 피해자라면 사태를 인정하되 약한 조국을 원망해야 할 것이다. 어쨌건 전쟁터에서는 사람을 많이 죽여야 영웅이다. 미군이 술집이나 거리에서 행패를 부렸을 때 억울하게 당한 우리로서는 미군을 원망할 수밖에 없지만, 군사협정이 그러하기에 우리나라를 원망해야 한다. 내 비판 받아도 마땅하지만, 미군의 횡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일로 평소 누구인가 그 미군에게 감정 나쁘게 했기에 복수심으로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을까? 옛날 의정부 동두천에서 미군 등쳐먹던 일이 비일비재했다니 그들인들 우리가 예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동족이 긴장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 우리로서는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할 일이지 불평등의 국제법을 탓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이 맞붙어 싸워 결판을 낼 수 없는 실정이라면 우리를 도와주자고 와 있는 미군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 내일이라도 미군이 없는 남한이라면 속이 시원하고 마음이 편할까? 아니면 불안할까? 강자가 갑질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면 인정해 할 것이다. 젊은이들의 반미 감정은 미군 횡포 등 사소한 감정의 발로라고 보며, 미군의 주둔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나 또한 미군이 이 나라에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만이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미국을 역이용하여 북한 정권을 무너뜨려 통일시키고 핵을 보유한 강국이 되었으면 한다. 그때는 미군이 우리에게 굽실거리며 제발 내쫓지 말아달라고 사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갑이 되어 미국에게 갑질을 할 수 있다는 것 참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命理學者 입장에서 볼 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八字가 있다는 것을 안다. 대한민국 5천만 인구 가운데 꾀 많은 숫자일 것이라고 본다. 그 중의 하나가 나이다. 나는 어렸을 때 가난한 집에 태어난 이유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의문이었고, 막내인 나로서는 부모님은 늙었기에 곧 돌아가실 줄 알았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고, 얼마 후 나도 죽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서럽게 흐느껴 운 적이 두 번 있었다. 상상했던 못된 어린 생각은 곧 현실로 나타났고,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잠자리와 세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시골 농부네 소처럼 살았다. 생각하면 힘들고 쓸쓸할 뿐이지 누구를 원망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를 속여먹은 사람에게까지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도 성인군자 아닌 평범한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화를 잘 낸다는 흠도 있고. 모두 내 탓이라 생각하고 지금도 못난 재미로 산다. 지난 주 집사람과 기분 좋게 대화하던 중 엎어지는 사고로 이마와 콧등을 찢어 꽤 많이 꿰맸지만 “나 못 난 재미로 산다는 거 당신도 알지?” 하고 주정을 부렸었으니까. 못 난 것을 알고 능력 없음을 알기에 묵묵히 열심히 살았을 뿐인 나라고 어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겠는가만, 그래도 덜 부끄럽게 살려고 노력했다. 약소국인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스리랑카나 이라크 쿠르드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고 행복이라 해야 한다.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모두 어려운 처지를 냉정하게 인정하고, 힘닿는 데까지 그 어려움을 극복하여 후대에 대물림 되지 않도록 합시다. 그럼 편히 잠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어떤 위치에 처해 있었는가를 한번 쯤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를 말하는 투의 글인 것 같고, 다음은 당장 우리나라 곧 무법천지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괄시받지 않을 강국이 될 것인지 동북아시아 국제환경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관점을 쓰려 한다.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남북이 또 대리전쟁을 해서는 안 될 일이기기 때문이다.
첫댓글 선생님
많은일들생각해봅니다
지난일을거울삼아
현재를살며
미래의일을예측해보는
계기를생각할수있는내용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