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 🌟
2024년 3월 31일 주일 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다 같이 기도함으로 3월 31일
주일 예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활 주일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에 다 함께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게 해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시간 이곳에 임재하여 주셔서
저희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그리고 저희들이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시는 말씀의 은혜받게
하옵시고 저희와 가족들에게 주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찬송가
https://youtu.be/l41jYY35Aeg?si=dPdmpSNXnEHsUumG
🌟 교독문입니다.
시편 4장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 본문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한 주간도 평안하셨는지요?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으시길 축원드리겠습니다.
오늘 주일 예배도 주석과 자료 등을
인용해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서
다섯 번째 사데 교회에 대해서 알아보며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사데는 크로에소스(Croesus)의 몰락(BC 56)까지 고대 루디아 왕국의 도성이었습니다. 바사 총독의 주재지. 로마 제국 시대에는 도의회(道議會, Conventus)의 소재지. 비잔틴 시대에는 루디아도의 수도였습니다.
사데 지역으로 성지 순례를 가보면
로마 시대의 극장이나 최근 전도
영상에서 촬영한 체육관 처럼 육체와
마음을 단련하는 거대한 체육관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그 옆으로는
100m 넘는 길이의 거대한
유대인 회당도 일부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금이 많이 나오는 사데 지역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도 사데 지역에
타락한 문화의 물들어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사데는 시벧리(Cybele) 여신을
섬겼고 황제 숭배가 극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데미(Artemis) 신전이 있습니다.
4세기에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
아데미 신전은 교회로 사용됐습니다.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사데 교회는
초대교회 중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예배당을
갖춘 대형 교회였고, 사도 바울이
세우고 사도 요한이 양육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제자이며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던 클레멘트가
사데 교회의 첫 감독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2세기에 이르러 변증가며
주석가로 유명했던 멜리토(Melito)가
이 교회의 감독이 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데미 신전 뒤편으로는
붉은색 벽돌로 만든 비잔티 시대의
작은 교회 건물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비잔틴 시대에는 성도의 숫자가
작아져 소규모 교회당으로 지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점차 약화된 교회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물질적 부요로 말미암아
내적인 피폐로 안일과 부도덕의 모습이
교회에까지 침투하였습니다.
복음화가 되었던 유럽에 있는 교회들도
세속화 되어 지금은 쇠퇴하였고 현재
한국 교회도 사데 교회처럼 세속화 되어
성도의 숫자가 줄어들고 문을 닫는 교회도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데는 난공불락이라고 과신하고 방비를 게을리하였기 때문에 BC 549년 고레스에게, BC 218년에는 안디옥 Ⅲ세에게 격파당하였습니다. 깎아 세운 듯한 바위의 틈새를 타고 숨어 들어온 병사들에게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297년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소아시아가 재조직된 다음부터는 루디아의 재건된 지방의 수도가 되고, 지사와 대사교의 기관이 설치되었습니다.
716년 아랍인에게 정복되어 1403년 치무르인에게 멸망되었습니다. 현재는 작은 마을로 사르트(Sart)라는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사데는 구약성경의 '스바랏'(Sepharad)입니다.
사데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더불어 칭찬이 없는 교회입니다. 고대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소아시아 지방을 정복하는 헬라인들에게 가장 끈질긴 공격을 받았습니다.
'크로에수스'가 통치하던 주전 546년에는 바사의 고레스에게 침략을 당해 바사 총독의 관할이 되었고 그 후 주전 33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주전 218년에는 셀류쿠스의 안티오쿠스(Antiochus)에게 함락, 잠시 버가모에 넘어갔다가 주전 133년경에 로마에 점령되었습니다. 주전 17년에 대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80Km, 두아디라에서 약 48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시는 천연 요새지로 남쪽을 제외하고 계곡 위로 450m 높이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근본적으로 그 성에 접근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중세 교황권도 난공불락이었는데,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가 나타나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곳은 부와 철학, 음악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양털의 염색이 이곳에서 시작되어 염직 공업이 흥행하였고, 모사 공장과 자주 공장, 금, 은, 보석 등의 세공 공장이 많이 있어서 부요한 도시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는 앞의 세 교회가 이단의 교리와 신앙의 혈전을 벌이는 것과는 달리 부요 때문에 세속적인 풍습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교회로 전락하였습니다.
사데 지역에 유통되었던 화폐 디자인은 ‘두루마리’였습니다.
사데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
영적 생명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성령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일곱은 완전수로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이 충만한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실까요?
그것은 성령의 완전성과 충만성과 편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적으로 죽어버린 사데 교회의 치료자로 나타나신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예언적으로는 교회가 다 죽어가기 때문에 성령의 강한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시려는 것을 예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태는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나타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 5: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1: 4, 16, 20. Lenski, Morris).
"일곱별을 가진 이"
교회의 관심과 사랑으로 주의 종을 붙들어
주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별'은 천사 그리고 주의 종을 예표 한다고합니다. 저의 아이디가 Star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가지셨다'는 것은 세웠다는
의미입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는
계시록 1: 16과 20절의 말씀을
반영한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데 교회에 주님은 일곱 별을
붙잡으신 권능의 손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참 종들을 통해 영적으로 죽은 교회를
일으키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저와 우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 성도분들과 동역자들과
깨어있는 마지막 때 사명자들이
현대의 죽어가는 교회들을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 중세 교회(카톨릭)가 타락하여
세속화 되고 부요와 권력과 짝하고
정치와 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고 마틴루터 등을 통하여 종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카톨릭은 배교 집단이며
이단들의 어미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때를 맞아 현대 교회들이
종교통합으로 배교하여 음녀 카톨릭과
연합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가진'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천사의
역할을 주관하심을 시사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하시는 주된
일은 내적인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원을 확증케 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4: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시는 성령과 교회를 지키는 천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죽은 사데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며,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는 소수의 사데 교인을 지키고 계심을 시사합니다. (4절, Mounce, Moffatt, Ramsay, Ford).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서머나 교회는 처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차츰 영적으로 살아난 교회였습니다.
반면 사데 교회는 처음엔 뜨거웠지만
나중에는 죽어가는 교회가 돼 주님으로부터 '살아 있으나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데 교회는 주여, 주여 하는 외식적인
믿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7: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 앞에 보이러 오는 신앙은
있었습니다.
이사야 1: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더러운 것으로 드리는 예물은 있었습니다.
말라기 1: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땅에 묻어 둔 직분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5: 24-28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불법을 행하는 권능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7: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지금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있지요.
"들 포도를 맺은 열매도 있었습니다."
이사야 5: 4 -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실지로 사데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교적 문화나 주변 환경과 타협함으로 생명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사데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한 사실을 단적으로 묘사한 '죽었다'는 표현은 사데에서 약 11km 떨어진 언덕같은 수많은 묘지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맞아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는 말씀은 마치
좀비를 떠오르게 합니다.
항간에 들리는 얘기로는
코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이
나중에는 좀비가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일깨워'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그레고논'(*)
은 계속적인 경성(警醒)을
시사합니다(Moffatt, Beck, Robertson).
이는 사데 지역이 난공 불락의 천연 요새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안일에 빠져 두번씩
이나 점령을 당했던 사데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입니다
(Mounce, Lenski).
그리스도께서는 '일깨워'라는 권면을 사데 교회에 하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함과(3절) 동시에 사데 교회가 비록 죽음 직전에 있으나 완전한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 아님을 암시합니다(Weymount).
한편 '굳게 하라'의 헬라어 '스테리손'(*)은 아직 남아있는 영적 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코백신을 맞고 PCR을 받은
사람들은 일깨워 철저히 회개하고
자신의 영혼육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거룩하게 보존을 해야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또한 현대 교회들은 일깨워 초대교회와
우리나라 초기 교회처럼 깨어있어
마라나타 신앙을 회복하고 보존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24: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그리고 우리들은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되어야
됩니다.
마태복음 25: 1-13 = 열 처녀의 비유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온전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레로메나'(*)는 '충만함'을 나타내는 헬라어 '플레로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완전함 이라기 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온전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비록 사데 교회가 외적으로 보기에 풍성하며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시기에 허망하였음을 시사합니다 (Greijdanus).
그리고 온전(穩全)한 자란 장성한 자로써 주님과 결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과 휴거 신부로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 장성한 자요 온전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선지자들의 신앙 위에 자기를 건축하여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장성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었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 온전한 자들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16: 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계시록 22: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본문은 사데 교회를 향한 세 가지 명령입니다. (1)생각하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모뉴에'(*)는 '염두에 두다'란 의미의 ' 므네모뉴오'(*)의 현재 명령형으로 '항상 상태를 되돌아 보라'는 뜻입니다(12:5). (2)지키어.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이'(*) 역시 '유지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테레오'(*)의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이미 받았고 들었던 복음을 굳게 붙잡아야 함을 시사합니다. (3)회개하라. 이것의 헬라어 '메타노에손'(*)은 '돌 이키다'는 의미를 가진 '메타노에오'(*)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죄에서 돌이킬 것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단회적이며 시급한 돌이킴에 대한 명령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심판을 내다보며 죄로 부패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함을 나타냅니다(Behm).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생각할수록 회개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시간마다 '예수님처럼, 초대교인처럼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를 거스른 것과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육적인 죄와 신앙적인 죄를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날마다 내 곁을 떠나면 안 됩니다. 회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말라기부터 마태복음까지, 구약에서 신약까지, 모든 예언서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종교통합하고 백신과 PCR과 자가키트를
받은 것은 더욱 회개하고 돌이켜야
됩니다.
이사야 1장을 보면 무서운 책망이 있습니다. 책망하고,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회개하면 회복하여 축복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 마지막 말라기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또 타락했습니다. 그 때는
회개하라는 말이 없이 끝나버립니다.
그러므로 그 때부터 수백년간 하나님의
무간섭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신구약 중간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손을 놓아버린 시대입니다. 이때가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상 가장 비참했습니다. 성전은 불태워지고, 돼지로 드리는 제사가 성행했습니다.
A. D. 70년에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순교하신 뒤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손을 떼 버렸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끌려 다니면서 갖은 수치와 고난을 당했습니다. 선민들을 이방 나라들이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중요합니다. '회개하라'는 음성은 사랑한다는 음성인
것입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내가 알지 못하리라."
본 문은 마24:34과 살전5:2을 반영한
것입니다.
주님 오시기 가까운 마지막 때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권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죄 속에 머물러 생명력을 상실한다면 마치 도적이 밤에 들이닥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예기치 못할 때에 오셔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을 귀환시킨 것으로
유명한 고레스왕이 사데를 침략하자
돈이 많았던 사데는 자신들이 자랑하던
기마부대로 맞섰는데 고레스왕이
예상외로 낙타부대로 승리를 거두자
난공불락 요새 안으로 들어가 시간을
끌며 장기전으로 돌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성벽 위에 병사가 철모를
성벽 아래로 떨어뜨렸고 난공불락의
요새 가운데서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성벽인 줄 알았는데 병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성벽에서 내려와서 투구를 쓰고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그 길로
밤에 도둑같이 올라가서 사데 성을
점령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도 밤에 도둑같이
멸망히 홀연히 임하게 될 것이라고
사데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빛의 아들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예비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성도에게는 도둑같이 오시지 아니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본문은 대부분의 사데 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으나 그 가운데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입니다.
(1)혹자는 단순한 도덕적 순결로 해석한다(Moffatt).
(2)혹자는 성적인 불결에 서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해석한다(Zahn).
(3)혹자는 구원받은 자가 사회적인 풍조와 혼합에 물들지 않는 기독교적 성결로 해석합니다(고후7:1, Lenski, Johnson).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합니다. 당시의 사데 교회가 처한 입장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이나 성적인 범죄와 같은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내적이고 기독교적인 문제였으며, '옷이 더럽다'는 것은 기독교적 순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고전8:7; 고후11:2; 유1:23).
이처럼 다원주의로 타 종교의 구원을
인정하며 종교통합하고 백신을 맞는
교회는 기독교적 순결을 잃은 교회인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옷에 대한 예는 양모 산업이 발달하여 옷에 대해 관심이 많던 사데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것입니다.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흰 옷'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입니다.
(1)혹자는 '그리스도의 속 죄로 말미암는 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Plummer).
(2)혹자는 '최후에 그리스도인이 하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 성결'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Al-ford).
(3)혹자는 '죄나 이교도적인 혼합에서 분리시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Lenski).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합니다. 사데 교회의 교인들은 외적인 겉모습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정결과 이 교(異敎)와의 분리된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입니다(Johnson). 한편 '함께 다니리니'는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그와 함께 교제함을 표현하는 것으로(창5:22; 요:6,7) 단순히 현재적인 교제는 물론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교제를 시사합니다(Ladd, Greijdanus).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합당한'은 종말에 있게 될 심판의 기준에 타당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2:7,17,27,28)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누리는것을 시사합니다(Clarke, Morris).
"5절" 본절은 사데 교인들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약속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사데 교회의 경우 다른 소 아시아의 교회와는 달리 외적 핍박이나 특별한 이단 그리고 신비주의가 언급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문맥과 사데 교회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세상의 부패나 타협, 안일함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한편 승리자에게 주어질 첫번째 약속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희게 되었으며(7:14)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의, 영광을 닮아(18절; 6:11; 7:9,13; 19:14) 하나님 나라에서의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받음을 시사합니다 (4절 주석 참조, Ladd,Johnson).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생명책'은 신,구약 성경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13:8; 17:8; 20:12,15; 21:27; 출32:32; 시69:28; 눅10:20; 빌4:3).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의미하였으며(출32:32,33), 신약성경에서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여 그리스도의 피로 의로워진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13:8; 17:8; 20:12,15; 21:27; 눅10:20; 빌4:3, Rosh).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승리자를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롬 8:38,39)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시민권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Johnson, Beasley- Murray).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세번째 약속으로 마10:32을 반영합니다(막8:38; 눅9:26; 12:8).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공적(公的)으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시인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게소'(*)는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시인하시겠다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국의 대통령 앞에서 인정받는 것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데, 하물며 전 우주의 주인이시자 영원한 아버지 집의 주인 되시는 그분 앞에서 인정받는 이름은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름을 시인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이름을 시인한다.'는 것은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보장입니다. 이것은 법정 용어로서의 가치를 지닌 말입니다. 하늘의 총회 앞에서 공적으로 시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공중으로 강림 할 때
세상 끝에 재림할 때 너를 휴거 시키고
구원시켜서 영광스러운 나라를 상속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법에 인정받는 것보다 더 좋은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디 있습니까?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되지만 패배한 자들 즉 탈락자들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의 신앙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이름을 계속 기억시켜야 합니다.
마태복음 10: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자신의 이름을 기억시키는 방법"
(가져온 글입니다.)
예배 참여-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예배에는 말씀 기도 찬송 봉헌 신앙고백 성만찬 친교 축복의 기도가 있습니다)
십일조 봉헌- 하늘 문을 여는 일이요
도적이 없는 곳에 쌓아 놓는 것입니다.
전도-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리라.
구제- 고넬료의 가정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번주 주일은 부활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리하여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로
살아나겠고 우리가 사는 마지막 때는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시어
살아있는 우리들도 부활체로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목격한 사도들과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헛것을 볼 수는 있으나
500명이 동시에 헛것을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초대 교회 당시에도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믿는 자들이 있었고 믿지 못하고
조롱한 사람들이 있었듯이 지금도
주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살아있는 사람들의 휴거를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믿지 못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베드로후서 3장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분들은
주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과 살아있는
자들의 휴거를 믿어서 주의 날에 휴거
되는 성도분들이 되시길 축원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오늘 살펴본 사데 교회는 두아디라에서 약 48Km 지점에 위치하기도 하지만
금년 4월 8일 미국에서 발생하는 개기일식에
대해서도 조금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전 설교에서 저는 4월 8일
개기일식 중에 십자가 크로스가 만나는
지점 근방에는 의인 아벨을 죽인 가인의 지명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4장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이 구절은 인류 최초의 살인이
벌어진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4월 8일 개기일식과
같은 4장 8절에 인류 최초의 살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개기일식은 예로부터 신의 진노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에 금년 4월 8일에 미국에서 발생하는 개기일식은 마지막 때
바벨론 미국과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인으로 다가옵니다.
아마도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세계 3차 대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경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8장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앞전 설교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이번에 미국에서 발생하는 개기일식이
지나가는 경로에는 노아와 관련된
이름들과 방주와 관련된 지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8장 4절은
4월 8일 개기일식과 같은 숫자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믿는 대환난전
휴거 처럼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휴거의 모형인 노아의 방주 처럼
휴거가 발생한다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이어서 출애굽기 4장을 보겠습니다.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이 말씀도 4월 8일 개기일식과
같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표적은 마치
이중적인 표적으로 금년 4월 8일
개기일식을 연상시킵니다.
이어서 성경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8장
4.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출애굽이 나오는 성경에서
4월 8일 개기일식과 동일한 숫자에서
개구리 재앙이 나옵니다.
그런데 7년 대환난이 나오는
계시록에서도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 나와 전쟁을 일으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4월 8일 개기일식은 7년 대환난이
임박함을 알리는 것일까요?
이어서 성경을 보겠습니다.
레위기 4장
8. 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월 8일 개기일식 숫자와 동일한
구절에서 하나님의 성전인 회막에서
송아지를 잡아 번제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위기 8장
4.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매 회중이 회막 문에 모인지라
이 구절을 찾은 어느 사역자가 회막문의
히브리어 원어를 찾아 보았는데
"회"는 모에드로 מוֹעֵד 지정된 시간과
장소를 뜻하고 "막"은 오웰 אֹהֶל 성막으로
하나님의 장막을 뜻하며 "문"은 페타흐 פֶּתַח 열린다는 뜻으로 회막문의 뜻은
"정해진 때에 열리는 하나님의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회막의 문을
뜻하는 히브리어 달렛(ד)은 하늘의 문을
뜻합니다.
그리고 올해 2024년은 유대력으로
5784년으로 달렛(ד) 문이 열리는
해라고 합니다.
4월 8일 개기일식은 하늘의 문이
열리고 휴거가 임박하다는 사인같이
다가옵니다.
요한계시록 4장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숫자 4는 히브리어 4번째 알파벳
달렛(ד)으로 문이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4월 8일 개기일식과 동일한 성경
마지막 책인 계시록 4장 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리고 개기일식과 같은 숫자가
나오는 계시록 8장 4절 말씀을 보면
성도들의 기도가 천사의 손으로부터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마치 성도들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씀같이 다가
옵니다.
요한계시록 8장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제가 성경에 나오는 4장 8절과
8장 4절에 모든 말씀을 찾아보지
않았지만 이 모든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 옵니다.
주님 오심이 가깝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읽었던 교독문
시편 4편은 다가오는 개기일식 날짜
처럼 4장 8절까지 되어 있습니다.
시편 4장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우리가 평안히 눕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천국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천국에서 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
시편 8장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영원한 천국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곳은 오래전 청년 시절 주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선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비몽사몽간에 있을 때
천국의 삶을 조금 체험하게 해주셨는데
천국에서의 삶은 아무 근심이나 걱정이
없고 눈물과 아픔과 저주가 다시는 있지 않으며 무한한 평안과 행복 가운데서
영원을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좋은
천국을 예비해 놓고 계신다면 우리도
이 땅에서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받쳐
충성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모두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깨어있어 주님 오시는 길을 예비하고
평탄하게 하여 주의 날에 휴거 되는
성도분들이 되시길 축원드리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라나타
🌟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저희를 사랑하셔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성경 말씀 처럼 3일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를 위하여 천국의
예비처를 준비하고 계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오 주님, 저희들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으로
헌신하게 하옵소서!
생명 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더럽혀 지지 않은 흰 옷을 입은 주의 택함 받은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께 기도하옵기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휴거
되게 하옵소서!
남는 가족들이 있더라도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을 믿고
짐승의 표를 거부하고 구원을 받게
하옵소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성만찬 예식
이 시간에는 부활절을 맞이하여
성찬예식을 거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며
거리낌이 없이 성찬식을 원하는
성도분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 빵(과자,케익,떡,)과 포도주스
(붉은색 계통의 음료)가 없으신
분들은 준비를 하시어 성찬 예식에
참여 하시면 되겠습니다.
🌟 성찬 예식을 위해 성경을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 성찬 예식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이 시간 저희들이 서로 몸은 떨어져
있으나 영으로 함께 하여 주의 몸된 빵과
주의 잔을 함께 나누오니 이시간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여 주셔서 성도들과
영적 교제가 있게 하옵시고 성찬예식으로
주의 몸과 피를 마실때 주님과 한 몸이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주의 몸된 빵을 먹으며
주의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주님 오실 때까지 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 빵을 한 입 먹습니다.
🌟 주의 잔을 마십니다.
🌟 축도 함으로 주일 예배와 성찬식 예식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 함께 예배드리고
성찬 예식의 참여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