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강론>(2023년 1월 1일)
1.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서로 새해인사를 나눠봅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2년을 돌아보면, 말과 행동에 대해 미련과 아쉬움이 없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좀 더 잘 할 걸!’,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할 걸!’, ‘아껴 쓰고 절약할 걸!’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는 2022년의 마지막 날이었고, 오늘은 2023년의 첫 날입니다. 평소와 같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년도에서 오는 느낌 때문에 모든 게 달라 보이고, 어제 일은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살아간다면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일화’ 1가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
어느 마을 길모퉁이에 리어카 과일장수가 있었습니다. 손을 다쳐서 그때까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리어카를 마련하여 마을 어귀에서 과일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손님이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이 사과 어떻게 하지요?”
“예! 천 원에 2개 드립니다.”
그 손님은 3,000원을 내고 사과를 골랐는데, 작고 모나고 상처가 있는 사과만 6개를 골라서 봉투에 담아 갔습니다. 며칠 후 그 손님이 또 와서 똑같이 그렇게 사과를, 작고 모나고 상처 난 것만 골라 담더랍니다. 그 손님이 세 번째 오던 날, 과일장수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손님,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좀 고르시지요.”
손님은 행상이 하는 말을 듣고도 그저 웃는 얼굴로 여전히 작고 시들고 모나고 못생긴 사과만 골라 담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야 남은 사과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지요. 저도 어렵게 사는데, 댁은 저보다 더 어려워 보이세요. 힘을 내세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과일장수의 숨이 멈춰버렸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직 이렇게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과봉지를 들고 가는 그 손님의 뒷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더랍니다. 또한 자기도 모르게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용기가 불끈 생기더랍니다.
---------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웃을 이런 마음으로 도와야겠습니다.
3. < 내가 만난 천사 >라는 글을 계속 소개해보겠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박윤향 씨가 2005년 12월에 쓴 글입니다.
-----------
며칠 전, 비 오는 날이었다. 동네 슈퍼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쓰고 갈 우산이 영 마땅치 않았다. 평소 집에는 우산 여유가 있었는데, 그날따라 가족들이 회사며 학교에 두고 와서는, 모두 우산을 새로 가져갔다 보다. 우산을 찾다 보니, 실밥이 뜯어져 버리려고 한쪽에 미뤄놓은 헌 양산이 눈에 띄었다. 가까운 곳이라, 우선 아쉬운 대로 비는 가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헌 양산을 들고 집을 나섰는데, 평소 안면이 있던 자매와 마주쳤다. “비 오는 날에 웬 헌 양산이야? 우산도 아니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그 자매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며 한사코 자기 우산과 바꿔 쓰자고 했다. 그런데 그 우산은 새것이었다. 아니라고, 저도 가까운 거리라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막무가내로 바꿔 쓰시고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지셨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매주일 남은 주보를 모아서, 쉬는 교우 10여 세대의 우편함에 넣어드리고 있다. 가끔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의 눈총을 받곤 하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그 자매님도 그 중의 한 세대이다.
이튿날 아침, 날씨가 활짝 개었다. 집안 정리를 마치고, 미사시간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어서 혼자 차를 마시려는데, 어제 그 자매님이 들어오시더니, 내 양산과 조그만 종이가방 하나를 전해주시고는 급히 가셨다. 아침 햇살을 보고, 매일 성당 가는 자매인데, 성당 갈 때 쓰고 가게 빨리 갖다 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갖고 오셨단다. 감사한 마음으로 양산을 들고 집을 나섰는데, 실밥 뜯어진 곳이 말끔히 손질되어 있었고, 종이가방 속에는 깨끗이 손질한 우산 2개와, 사은품 같은 새 우산 1개가 들어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전화했더니, 남편의 직업상, 집에 우산이 늘 여유가 있다며 웃으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매일 미사 다니는 사람과 쉬는 교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는 성서말씀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는지. 부활 판공성사는 받았는데, 또 쉬고 있다고 쑥스러워 하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 자매님은 생활이 곧 기도가 아닌가 싶다.
4. 오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성경 안에는 성모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 나오는 성모님도 별다른 대사 없이 등장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 역을 맡은 배우는 다른 배우들처럼 대사를 많이 외울 필요가 없어서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표정으로 자기 마음을 다 표현해야 하니까,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튼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성모님은 존재만으로도 겸손함을 느끼게 합니다. 성모님의 겸손함은 오늘 복음내용처럼 곰곰이 되새기는 자세에서 생깁니다. 성모님이 마음에 간직하신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었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다는 말은 ‘하느님 뜻대로 살려고 하셨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한 해를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성모님처럼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담아 곰곰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하는 겸손한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