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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기타가수들◑ 스크랩 잘있거라 부산항의 백야성
장미성숙희 추천 0 조회 104 11.04.20 09: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이별과 만남 품어준 동반자여~ 부산항구

바야흐로 부산항에 저녁이 깃들고 있다.

어둠이 파랗게 깊어지고 있는 시간,

부산항은 둘레에 불빛을 뿌려놓는데

불빛은 부산항의 물 위에 떠서 일렁이고,

공중에도 번지고 있다.

양력 34년 9월 7일 서울 생.

서울 종로구 장사동에서 출생. 부친 문수일(文洙日),

모친 이아기(李阿基)씨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남.

그의 형제들은 큰 형과 스물두살 차이이며 바로 위의 형과는 다섯 살 차이였다.

부모가 1891년 6월16일 생으로 생일이 똑같으면 안된다는

당시 남존여비 사상에 의해 하루 뒤인 6월17일로 날짜를 바꿈.

그래서 어머니는 한 번도 생일상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고.

둘째형이 노래를 잘 불렀다.(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

할아버지가 무관 출신(문종식)으로 6.25 전까지 집에서 활같은 것이 집에 있었던 기억. 어릴 때 유성기가 있어 항상 음악을 들으며 자랄 수 있었고 또한 어릴 때

태평레코드 사장이 살았기 때문에 가수들이 많이 출입했고 어린 기억에도

집에 방이 많아 가수들이 기거를 하기도 했다.

들은 기억으로 어릴 때 백년설, 백난아씨 등이 며칠씩, 혹은 몇 달씩 집에서 기거를 했다. 때문에 당시 한일극장(종로 4가)이나 동양극장 등에서 악극이나 연극,

쇼공연 등을 보며 자랐다.

방산국민학교 시절엔 학예회 때 늘 일본인들을 제치고 독창을 하곤 했다.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는 53년 공군에 입대 장기범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중앙방송국 노래자랑에 출전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늘 1등을 도맡았고 공군대항, 혹은 각군 헌병대회에 출전해서 우승을 도맡아할 정도로 노래 실력이 있었고

상으로 받은 독립산업에서 만든 건빵으로 설탕에 묻혀 부대에서 회식을 하곤 했다.

후라이보이는 그보다 여덟살 위였지만 군번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바로 한 기수 위였다. 후라이보이가 공군군악대 27기, 백야성이 28기였다.

마침 제대 후 후라이보이가 미도파 뒤쪽에 위치한

은성살롱(실버스타)에 출연

(당시 김광수악단, 이후 박춘석악단 출연)했기 때문에 자주 놀러갈 수 있었다고.

그는 공군기지은행(현 경리단)에서 경리일을 맡았다.

주 업무는 예산짜는 일. 

 4년 6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58년 4월에 제대한다.
 
그는 군복을 입은 채 58년 2월, 당시 오아시스 전속가수 모집에 응시,
사흘간의 테스트를 거쳐 합격한다. 이 때 남자 우승은 백야성이,
그리고 여자는 이시스터즈의 김천숙씨가 차지한다.

그는 이를 계기로 군에서 제대하고 오아시스에 입사하자 작곡가 이재호로부터
백야성이란 이름을 지어받고 ‘귀향선’이란 곡을 받아 연습하나

음반으로는 취입하지 못한다.

그가 첫 취입하는 곡은 김초성 작곡의 ‘무전타향’ 그리고 ‘낙타야 가자’이다.
그다음으로는 이현식(당시 동양방송 CM송 작곡)으로부터 ‘왜 왔느냐’ 등
세 곡을 받고 취입한다. 오아시스에서 출반.

50년 말, 지방공연단체, 그리고 이은관, 장소팔쇼와 백조가극단에 입단해
공연 활동을 하던 중 한복남씨에게 픽업되어 ‘정든 님아 잘있거라’를 취입한다.
이 곡이 첫 히트하며 이어 ‘홍콩아 잘있거라(하기송 곡), 그리고 한복남 작곡의
’마도로스부기‘가 세 번째로 히트함.

이 때부터 마도로스 관련 노래가 목소리에 맞다고 생각되어 주로 항구,
마도로스 관련 노래를 주로 부르기 시작함.
61년 들어 아세아레코드에서 ‘ 잘있거라 부산항’ 취입함. 이 노래는 당시
김용만, 서영춘, 배삼용 등이 공연을 가서 당시 중앙동에 있던
역 부근(40계단 올라가는 곳 부근) 여관방에서 지은 노래로 무대에서
부산 관련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고 판단되어 배삼룡씨가 가사를 붙이고
김용만씨가 곡을 붙여 다음날 극장에서 불러 반응이 좋았다.

 

 
그는 방송보다는 극장무대 위주로 활동했다.

대구 공연 중에는 당시 인기가수
남일해와 앵콜대결이 벌어져 남일해는 남일해는 아홉곡,

백야성은 무려 열한곡을 부른 일화도 전해진다.

그 정도로 그는 일반 무대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작사가 손로원씨에게 부탁해 2,3절을 만들어

그 해 여름, 8월에 녹음을 했다.

보통 공연을 하면 부산 같은 경우가 하루 5회 정도나 해야 했다.
11시부터 시작되어 부산극장, 대영극장, 왕좌극장, 동명극장, 그리고
부산진의 삼일극장까지 뛰었다. 그래서 부산에만 오면 녹초가 되었다.
그는 대략 250-60을 발표했는데 그 중 3분의 1이 바다와 관련된 노래이다.

(그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은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와서부터였다.
그는 처음 부산에 와서 동광동 2가 21번지에 위치한 고외과병원
(앞-해군병원, 뒤가 일반인들이 입원했다.)이 있던 자리에서 몇 개월 간 지냈다.

처음 본 부산은 넓었고 남성적인 위압감도 느껴졌고 그래서

그는 바다에 매력이 느껴졌다.
당시엔 바다 위에 거대한 노르웨이병원선이 있었던 기억도 새롭다고.
51년 서울이 수복되었지만 도강을 못하게 했는데 환도 후 그는 국회의원,
그리고 수행원이 타는 칸에 실려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무대에서는 인기가 있었으나 방송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는 한복남, 하기송 등과 남산 중앙방송에 출연해 노래 ‘향수의 나그네’와
마도로스부기‘를 틀었으나 왜색가요를 틀었다고 해 담당 음악과장이
시말서를 쓰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송활동에 족쇄가 묶였다.
해서 라화랑씨와 손을 잡고 신민요풍, 그러니까 민요를 가요에 가깝게 작곡,

’아리랑 손님‘ ’아리스리동동‘ ’신어랑타령‘ 등을 발표했으나

이번엔 목소리가 왜색이라고 금지되었다.

더구나 66년 예륜이 생기면서 67년 그의 노래는 무더기로 금지된다.

이유는 왜색. 그는 이에 좌절하고 가수생활을 떠난다.
방송은 물론 공연을 해도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가수활동을 하긴 틀렸다고 생각.

심각한 고민을 한다. 그는 이에 밀항을 해서라도 아예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하기 위해 사물을 팔아 배삯을 건네준다.

그러나 때가 구정인지라 구정 후에 배가 출항하기로 하고 기다리는 동안

밀항을 포기하고 가수생활을 접는다.

이 때가 67년, 그는 미련 없이 무대를 떠나 결혼을 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한다

동양금속에 입사, 출납을 보는 경리사원으로 시작해 67년부터 85년까지 포항에서

작은 업체를 운영하는 등 일반인 못지 않은 회사 생활을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한다.

그는 다시 지방공연 등 활동을 한다.

그는 2년반 정도에 상철를 하고 현재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그의 아들 성호는 TBC 소년합창단에서 활동하다 중학교 입학과 함께 그만두고

막내 정원양 역시 방송국에서 활동 딩동댕 등에 출연하던 재간꾼이었다.

그는 현재 경기도 분당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글 출처 : 가요연구사>

 

 

백야성:본명 문석준

 

1934년 서울에서 출생1955년 국제대학교 2학년 중퇴

1957년 공군 제대1958년 왜 우느냐.마음의 이별 무정 타향

60년 마도로스 부기.부두의 밤61년 잘있거라 부산항. 녹쓰른 청춘

62년 재건호는 달린다. 항구의 영번지63년 동경에서 온 편지.마도로스 삼총사

64년 초반부 김군 백군.왈순 아지매64년 후반부 밤비의 정거장.미남의 4번 타자

66년경 월남에서 온 편지.비나리는 남포동

67년 마도로스 센타. 한많은 아랑낭자. 돌아온 부산항구기타,,,

많은곡들을 취입함. <등대불 사랑> <마도로스 키타> <마도로스 폴카>

<항구의 청춘> <향수의 나그네> <아메리칸 마도로스>등

 

1) 아~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 온단는 기약이야 잊으랴마는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마라, 버리지마라

아~아 또 다시 찾아 오마, 부산항구야

 

2)아~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못 잊고요

미스 리도 못 잊어 만날 땐 반가웁고 그리워해도

날이 새면 뗘나야할 마도로스다, 마도로스다

아~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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