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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080722기사 김지운 감독 인터뷰
“욕망의 가장 지독한 형태를 구현하려 했다” 김지운 감독 인터뷰
<달콤한 인생>(2005) 이후 3년, 남자들의 스타일리시한 누아르 세계를 탐구한 김지운 감독이 모래바람 휘몰아치는 만주 대평원으로 돌아왔다. ‘만주 웨스턴’ <놈놈놈>은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보물을 찾기 위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세 남자의 이야기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는 여전하지만 웨스턴 세계가 내뿜는 에너지의 위력은 감독의 전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김지운 감독을 만나 그 에너지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시작은 한 장의 보물지도다. 청나라 때 사라진 보물이 다량 매장된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것. ‘좋은 놈’ 도원은 돈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는 현상금사냥꾼. ‘나쁜 놈’ 창이는 대륙 최고를 꿈꾸는 악명 높은 마적단 두목. ‘이상한 놈’ 태구는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누비는 열차털이범. 세 놈은 각기 다른 성격과 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보물지도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목적이 같아진다. 보물을 가운데 두고 이들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만주 대평원은 그야말로 혼란의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이런 욕망의 꼭짓점에는 그 누구도 아닌 김지운 감독이 자리 잡고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은 김지운 감독의 개인적인 판타지가 깊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코미디(<반칙왕>), 공포(<장화, 홍련>), 누아르(<달콤한 인생>), SF(<천상의 피조물>)를 경유하며 만주 웨스턴 <놈놈놈>으로 장르 실험을 완성하고픈 욕망, 자신이 과거 열광했던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The Ugly>(1966)와 리메이크하고 싶었던 고(故)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를 자기 식으로 해석해 새로운 웨스턴 세계를 창조하고픈 욕망이 작용한 것이다.
<놈놈놈> 칸 버전에 이어 기자시사회를 통해 한국 버전을 선보였다. 시사 후에 다시 손보고 있는 것 아닌가?
김지운 감독 맞다.(웃음)
어떤 부분을 다시 편집하고 있나?
김지운 감독 시사회를 마치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중 나를 약간 건드리는 지적이 있었다. 결말부 대평원 장면 경우, 태구가 대평원에서 황야로 가는 도중 중간에 혼자 지나가는 계곡 장면이 있다. 1분 30초 정도 들어낼 생각이다. 사실 칸 버전보다 한국 버전의 대평원 추격 장면이 더 늘었다. 다시 손을 봤더니 분량은 늘었지만 늘어지는 맛은 없고 오히려 간결해지면서 볼륨감이 늘었다. 리듬감이 살면서 응집된 느낌이 강해졌다고 할까. 계곡 장면을 없애고 바로 엔딩으로 가는 것이 대평원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존하는 방법일 것 같다.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영감을 얻다
이 영화 만들기 전 <놈놈놈>을 포함해 여러 가지 구상 중인 작품이 있었다고?
김지운 감독 <놈놈놈>처럼 시대극인데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사립탐정물 얘기가 있었고 또 하나는 송강호, 윤제문, 오달수, 문소리가 나오는 ‘고인돌’ 영화. 이들이 말도 안 되는 동물 소리를 내면서 맘모스와 싸우는 영화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송)강호 씨가 오케이하면 본격적으로 추진해보려는데 차마 얘기를 하지 못했다.(웃음)
<놈놈놈>이 구체화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김지운 감독 한국영화계가 호시절이던 때, 몇몇 동료 감독들과 친한 프로듀서, 그리고 허문영 선배(현 부산 시네마테크 원장)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선배 감독들의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어떻겠느냐, 너무 좋은 기획이다. 단절된 한국영화 역사를 후배 감독들이 잇는다는 의미도 있고. 그러던 중 허 선배가 한국에도 서부극이 있다며 언급한 영화가 바로 <쇠사슬을 끊어라>였다. 당시 나는 영화도 못 보고 존재 자체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리메이크하고 싶다고 했다. 더군다나 <반칙왕> 이후 오랫동안 강호 씨와 영화를 못했기 때문에 함께 서부극을 해볼까, 그런데 이게 과연 한국에서 가능할까, 해서 한국영상자료원에 가 <쇠사슬을 끊어라>를 봤다. 근데 반 정도 보다가 뛰쳐나왔다.
재미가 없었나?
김지운 감독 영화는 재미있긴 한데 빨리 집에 가서 시나리오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더라. 순수한 오락 형태의 장르영화로서 너무 재미있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웨스턴이 가능하다는 확신과 용기를 줬다. 바로 뛰쳐나와 강호 씨한테 가서 서부극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처음엔 생뚱맞은 제안에 특유의 웃음으로 깔깔 웃다가 “감독님, 한번 해보죠.”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쇠사슬을 끊어라>의 어떤 면에서 모티브를 얻었나?
김지운 감독 배경이 1930년대인데 당시 국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이 내게 어필을 했다. 극중 세 명의 주인공이 오로지 개인의 욕망에 집착하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오히려 애국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맘에 들었다. 그런 무정부 상태의 인물들이 각자 자기의 욕망과 꿈에 집착하게 될 때 빚어지는 아비규환, 혹은 대소동극을 만들고 싶었다.
욕망의 아비규환을 다루기 때문인가, 전작을 통틀어 <놈놈놈>은 가장 과잉의 영화다.
김지운 감독 그렇다. 누군가는 그렇게 표현하더라, 마니아틱한 블록버스터라고. 예를 들어, 샘 레이미(<이블 데드> <다크맨>)가 <스파이더맨>을 만드니까 마이너한 정서가 블록버스터 안에 녹아들어 이상한 아우라를 풍기며 즐거움을 주지 않나. 그런 마니아적인 요소가 내겐 블록버스터가 아닌가 한다. 내가 신뢰하는 지인은 <놈놈놈>을 두고 “순수 오락영화가 이렇게 광기가 느껴지는 건 처음”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와 닿더라. 우리가 <놈놈놈> 촬영했을 때 임했던 태도와 상황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찍었다.(웃음)
1930년대가 배경이지만 시대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희미하다. 오로지 욕망에만 초점을 맞춰 접근하니 도리어 현실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
김지운 감독 맞다. 개인적으로 박물관 스타일로 시대를 고증해 설명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과거도 미래처럼 SF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현재성이 들게끔 생생한 느낌을 가져오려 했다. 극중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집착이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게끔, 또는 반영할 수 있게끔 구도를 가져왔다.
영화의 많은 부분이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은 <석양의 무법자>에서 가져왔다. 사실 <놈놈놈>이 <석양의 무법자>에서 차용한 건 제목과 결말부의 구도 정도가 아닌가.
김지운 감독 사실 제목의 <놈놈놈>은 주인공의 성격뿐 아니라 마지막 총격전을 벌인 후 처한 상태까지 말하는 거다. 좋은 놈은 현상금사냥꾼인 만큼 창이와 태구가 쓰러지는 것을 본 후에야 쓰러지니 좋은 상태, 나쁜 놈 창이는 자신이 최고임을 확인하지 못하고 쓰러지니 나쁜 상태, 이상한 놈은 그런 상황에서 이상한 소리나 해대니 이상한 상태.(웃음)
처음부터 제목이 <놈놈놈>이었나?
김지운 감독 몇 개 더 있었다. <3인의 악인전>,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난 후에 칸 버전을 보니 <너희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바꾸고 싶더라.(웃음) <놈놈놈>을 제목으로 할 생각은 없었고 단순히 가제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죠스>를 설명할 때 ‘식인 상어가 나오는 해양 사무라이’라고 했다는데 영화의 성격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나. 나도 그런 식으로 영화를 설명하려고 ‘일제시대의 서부극’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너무 호응이 좋은 거였다. 그렇게 상업적인 요소가 있는 제목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무국적 공간에서 빚어지는 욕망의 충돌
<장화, 홍련>은 10대 소녀의 ‘내면’을 형상화했고, <달콤한 인생>은 조폭 남자들의 ‘외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놈놈놈>은 욕망이라는 내면과 액션이라는 외면을 모두 보여준다.
김지운 감독 앞서 주인공의 감정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만든다는 질문에 대해 좀 더 보충해 답변하자면, 내가 왜 영화를 만드나 생각해봤더니 사람들의 표정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순간에 나오는 불가사의하고 불가해한 표정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장르물이든 오락물이든 사람들을 보여줬으면 했다. <놈놈놈>도 캐릭터와 스펙터클한 액션 비주얼을 계속 보여주려는 비전을 가지고 영화적 요소로 구성했다.
주인공 캐릭터가 세 명이니 만큼 시나리오 작업부터 인물 간 균형을 잡는 일이 힘들었겠다.
김지운 감독 그렇다. 각각 다른 매력과 다른 ‘간지’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충돌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확하게 구도를 짜는 게 아니라 계속 밸런스를 염두에 두면서 그때그때 맞춰나갔다. 그건 시나리오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편집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계속 고뇌했던 부분이다. 사실 태구가 사건의 키 역할을 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창이와 도원이 다른 아우라를 가지면서 이야기에 스며들어가야 했다. 그런 면에서 특히 창이의 역할이 중요했다. 태구, 도원과 달리 오롯이 하나의 감정을 가지면서 드라마의 축을 이뤄야 했기 때문에 (이)병헌 씨가 창이의 감정과 드라마를 구축하는 데 굉장히 애매했을 거다.
<메모리즈>로 장르세계에 발을 담근 이래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까지 결말이 모두 비극적이었다. <놈놈놈>은 양상이 좀 다르더라.
김지운 감독 내 영화는 사실 다 시니컬하거나 쓸쓸하거나 되게 불쌍했다. 그나마 <반칙왕>이 연민과 측은지심을 유발하며 약간 희망적인 느낌을 줬는데 <놈놈놈>이 이와 비슷하다. 내 영화 중에서 가장 희망적인 엔딩이랄까. 사실 사람 살아가는 게 인생유전처럼 아이러니컬하다. 혼란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살아보자는 일념 하나로 자신을 추스르지 않나. <놈놈놈>을 통해 삶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놈놈놈>에서 희망적인 엔딩이 가능했던 건 송강호가 가지는 캐릭터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지운 감독 그렇다. 송강호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의 힘이다. 송강호의 유머러스함이 잘 살았던 게 <반칙왕>과 <놈놈놈>이다. 송강호가 주인공이면 뭔가 비극적인 엔딩으로 끝나더라도 우리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힘을 주고 위안을 준다. 만약 이병헌이나 정우성의 엔딩이었다면 다른 양상이었을 것 같다.
보물지도를 손에 넣지 못한 창이가 한가하게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나. 스크린에 장면이 투사가 되는데 대사만 들리지 무슨 영화인지 절대 안 보여주더라. 당연히 웨스턴이겠지 생각은 하는데.
(이거 궁금했는데!!)
김지운 감독 웨스턴 아니다. 클라크 케이블이 나오는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이다. 대부호의 딸인 엘리(클로데트 콜베르)가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나와 숨어 있는 장면인데 경찰이 들이닥치자 피터(클라크 케이블)와 부부 행세를 한다. 경찰이 ‘이름이 뭡니까’ 계속 물어보는데 여기서 부하가 창이에게 “(보물지도를 가지고 있는 놈은) 태구입니다”라고 한다. 나만이 아는 유머였다.(웃음)
캐릭터의 심리를 공간과 연관시키는 당신의 능력은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취향 탓이 아닐까 한다. 공포영화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 삼아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공포로 승화하지 않나.
김지운 감독 왜 내가 공간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고민했던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질문이다. <놈놈놈>을 하면서 영화는 시간성 매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인 속성을 잘 아는 감독이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감독이란 것을 <놈놈놈>을 통해 알게 됐다. 그동안 공간에 너무 집착을 하다 보니까 자꾸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다음 영화부터는 좀 달라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은 클로드 소테 감독의 <맥스 Max et les Ferrailleurs>(1971) 리메이크 아닌가?
김지운 감독 순서상으로는 그런데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 또 다른 장르영화?
김지운 감독 이제까지 장르를 했다면 앞으로는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장르를 찾을까 한다. 장르 훈련을 많이 했고 심리적인 이야기도 했기 때문에 이제야 영화 청년에서 영화 성인으로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한다. 그래서 <놈놈놈>을 하지 않았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허남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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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 한국형 웨스턴의 시작인가- 단순한 모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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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가족 > < 반칙왕 > < 달콤한 인생 > 으로 관객과 친숙한 김지운 감독의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이하 < 놈놈놈 > )이 화제다. 개봉 나흘 만에 2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 괴물 > 의 흥행기록과 비교될 정도로
기염을 토하고 있다. 혹자는 700만 관객을, 어떤 이는 1000만 관객을 예상한다. 하여튼 < 놈놈놈 > 은 막힘없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억 가까운 제작비를 쏟아 부은 < 놈놈놈 > 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대박을 예감하는 한국형 웨스턴이라는
견해와 어설픈 흉내 내기라는 혹평이 공존한다. 한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에 환호하는 관객이 있다.
그동안 김지운 감독은 희극과 공포, 누아르와 같은 여러 장르에서 활동해왔다. 따라서 웨스턴 시도가 그에게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의 한국적 아류 정도로 치부하는 관객도 있다. 김지운 감독은
레오네 감독의 <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The Ugly) > (1966)에 대한 오마주로 < 놈놈놈 > 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런 매우 상반된 평가가 < 놈놈놈 > 의 쾌속 순항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일지도 모른다.
시간, 공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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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간은 1930년대이며 공간은 만주다. 1930년대 만주가 전달하는 내용은 입체적이고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다. 독립군과 마적단, 일제의 관동군과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의 만주국, 김동인의 단편소설
< 붉은산 > , 윤동주 시인과 명동촌, '아라사'로 표현되던 러시아 등등.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여 들끓던 시간과 공간이 영화의 배경이다.
< 놈놈놈 > 의 서사구조는 느슨하다. 어쩌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기둥 줄거리도 없이 장면과 장면의
단순한 연결로 이루어진 단색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이것 때문에 탄탄한 이야기구조에 익숙한 관객에게 < 놈놈놈 > 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것이다.
< 놈놈놈 > 의 관심은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레오네의 세 인물처럼 김지운도 '착한 놈'과 '나쁜 놈' 그리고 '이상한 놈'을 설정한다. 그러나 그들을
비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40년 전의 '마카로니 웨스턴'과 21세기 '만주 웨스턴'의 단순비교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이 이미 창작의 원천 가운데 하나를 밝힌 마당에
수평적인 비교가 무슨 의미이겠는가.
하지만 1930년대 만주라는 독특한 시공간을 살아갔던 인물들의 개별적인 천착은 유의미하고 흥미롭다.
그것은 < 놈놈놈 > 의 헐거운 서사를 보완하고, 영화에 생동감과 깊이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을 둘러싼 여러 세력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시대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삼인삼색의 욕망분출과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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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세 주인공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도 한 장으로 쫓기고 쫓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온다.
관객은 지도에 그려진 실체가 무엇인지 시종일관 알고 싶어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쫓고 쫓기는
자들의 맹목성과 끈질긴 추격 장면을 보여주는데 영화가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한 놈 박도원의 대사는 폼 나지만 그 자체에 머물러 있다.
"사람은 누구나 큰 꿈을 좇을 권리가 있어. 하지만 무언가를 갖기 위해 무엇인가를 쫓다 보면 무엇인가에
쫓기게 되지. 결국, 쫓고 쫓기는 순환의 굴레를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게 인생이야." 박도원이 쫓는 것은
수배자 현상금과 다소간의 낭만이다. 독립군과 그의 관계는 실체마저 불분명하다. 그것은
'이상한 놈' 윤태구에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끝내 말하지 못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반면 윤태구가 품은 현실적인 꿈의 실체는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가축치고 농사지을
땅을 위해 목숨 걸고 그날그날 살아가는 윤태구.
이상한 놈보다 더 이상하게 보이는 '나쁜 놈' 박창이의 인간형은 상당히 입체적이다. 친일파 김판주의
개 노릇을 하면서 살아왔던 그가 돌연 자세를 바꾸는 장면은 박창이의 내면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것은 영화 전체에서 되풀이되는데, 그가 내세우는 "누가 최고냐"하는 단 하나의 명제는
사건전개에 적지 않은 힘을 부여한다.
낭만과 멋으로 무장한 총잡이 '착한 놈'과 현실적인 이해타산으로 똘똘 뭉친 '이상한 놈', 그리고
세상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칼잡이이자 총잡이인 '나쁜 놈'. 이런 인간들이 하나가 되어 '보물지도'인지,
아니면 단순한 종잇장인지 모를 소품 하나를 놓고 뒤얽히는 소용돌이 속으로 관객들은 속수무책 딸려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만 밝혀두자. 만일 < 놈놈놈 > 이 이런 관계설정에 끝까지 충실했다면 객석은 다소 썰렁했을지도
모를 것이란 사실. 김지운 감독은 이런 얼개에 예기치 않은 반전을 끼워 넣음으로써 관객의 호의적인 반응을 기
대한다. 하지만 세 인물의 끝 모를 욕망 그리고 그것을 향한 지속적인 대립과 충돌이 영화의 고갱이란 사실은
끝까지 불변이다.
한국형 웨스턴 영화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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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에서 사건은 권선징악이나 복수 같은 줄거리에 의지한다. 관습적인 서부극은 선과 악을 명징하게
갈라놓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총잡이들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반해 마카로니 웨스턴은 그런
도식과 거리를 두며 훨씬 단순하다. 거기서 핵심은 폼과 스타일이다. 초긴장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담배를
씹어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려보라.
레오네가 선보인 웨스턴은 이른바 '정통 서부극'의 고정된 틀을 깨뜨림으로써 서부극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그것은 낡은 틀의 전복과 새로운 미학의 제시로 요약된다. 너무도 진부해진 판박이 서부극에 긴장과
자기혁신의 외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레오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에서
미국 이민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그렇다면 김지운 감독은 < 놈놈놈 > 에서 시작한 '레오네 오마주'에서 정지할 것인가, 아니면 전진할 것인가 하는
명제 앞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런 명제를 살아나게 하려면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
열차 추격 장면, 말 달리며 총 쏘는 장면, 칼잡이들의 치열한 대결장면, 사막 비슷한 풍광과 거기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면면을 보여주는 장면.
김지운 감독은 기존의 서부영화나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한국형 웨스턴을 가능하게 하려면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재미와 함께 깨달음을 선사하는 방법으로
가능할 것이다. 풍성한 눈요깃거리와 폭발적인 액션, 희극적인 대화와 인물설정을 뛰어넘는 김지운 고유의
상표영화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것의 해답은 아마도 역사와 인간의 필연적인 만남과 구체화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탄탄한 서사구조에서, '한계'를 장르 편중에서 보는 평론가들이 있다. 이 점에서
김지운 감독은 장반대의 길을 선택한 셈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한국형 웨스턴의 시도와 느슨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모든 첫 번째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갔다는 점에서.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거기서 끝이다.
김지운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
< 놈놈놈 > 은 누가 뭐래도 '한국형 웨스턴'이다. 우리가 오래전에 망각한 '만주'라는 공간과 이제는
떠올리기도 싫은 '일제'라는 시간을 조합한 새로운 틀에 기초한 영화다. 서로 다른 인생항로를 가진 세 인물의
각축이 여러가지 볼거리와 어우러지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한국영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 놈놈놈 > 이 웨스턴 불모지에서 피어난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라면 별로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다.
출발점이 종착점과 동일하다면 과정에만 의미가 있을 터. 과정이 일회성에 한정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 성공한 장인들의 기본적인 삶의 궤적 아닌가. 이 점에서 영화
마지막 장면은 훗날을 생각하게 한다.
환호작약하는 관객들이나, 냉소를 머금고 비웃은 관객들이나 그들 모두 영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들이 있음으로써 영화와 영화 관계자들의 존재의의가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호시우행 하는 자세로 새로운 장르와 형식, 내용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영화감독 김지운의 성숙한 영화를
계속 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