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감리교회 주일가정예배
2021년 8월 1일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같이
찬 송 ‥‥‥‥‥‥‥‥‥‥ 93장(예수는 나의 힘이요) / 다같이
공동기도 ‥‥‥‥‥‥‥‥‥‥ 다같이
주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창세 전에 저희들을 계획하시고, 권능으로 다스리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니 이 시간 저희들이 진심을 다해 주 예수님을 예배합니다. 주님! 저희들의 실상은 거짓되고 악하며,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생명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저희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백하오니 십자가 보혈의 피로 용서하여 주옵소서. 정결케 된 저희들의 영혼에 성령과 말씀을 채워주시사,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가득히 품고 누구에게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장기간 대혼란을 겪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계속 확산 속에 있어서 오늘도 비대면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주여!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정치는 불신으로, 경제는 엉망으로, 사람과의 관계는 멀어지고만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주여!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크신 능력으로 저희들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희 동문교회가 내부리모델링을 하고 있습니다. 온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사오니 이 모든 일들이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 될 줄 믿습니다. 모든 과정을 인도하여 주시옵고, 아름다운 성전으로 지어지게 하옵소서.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수고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더하사 안전사고 없이 아름답게 지어지게 하옵소서. 코로나 기간에 모든 성도님들을 지켜 주시옵고, 하루 속히 해결되어 대면예배로 들어갈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봉독 ‥‥‥‥‥‥‥‥‥‥ 누가복음 18장 1-30절 / 다같이 교독
설 교 ‥‥‥‥‥‥‥‥‥‥ <하나님 나라의 기도자> / 인도자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처음에 약속된 2주가 지나서 2주 더 연장되어 오늘도 비대면예배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환자수가 꺾이질 않고 있으니 언제나 다시 정상화될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지난주간에 전에 우리교회를 나왔던(등록은 안하고) 어떤 집사님을 오랜 만에 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자신에게 있어서 코로나는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돌아다 볼 기회가 없었는데, 비대면으로 지내다보니 성경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 하게 되어 모든 건강을 되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선진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타고난 대단한 능력자들이 아니라 기도로 능력을 경험한 자들이었습니다. 생명의 안위를 주님께 맡기고 이 코로나를 기도로 이기는 능력자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절 이 말씀처럼 주님은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으로 있을 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신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 4가지 원리>
1.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의 원리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죄를 해결할 길도, 구원도, 천국도, 진리도 없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도덕적 수행입니까? 아니면 기복신앙적인 열망의 표현입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영적인 행위요, 호흡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대화와 교제의 자리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의 원리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예수님은 2천년 전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아직도 육신의 몸으로 살아계셔서 유대 땅에 계시다면 나이도 2천살이나 되고... 뭔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열왕기하에 엘리야도 죽음을 보지 않고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원리
요한일서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경에서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의 불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타 죽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여 주십니다. 주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번제할 어린양이 되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대속을 위한 번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얼굴을 맞대고 우리를 변호하여 주십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의 원리
히브리서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동물을 잡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제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저 우리는 예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께 이를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완전하게 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세상의 모든 악에서 승리하며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신념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소원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할렐루야!
오늘 누가복음은 1-8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두 명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과부와 재판관
먼저 재판관.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재판관은 통속적으로 ‘도둑놈 재판관’이라 불렀답니다. 지금도 무전유죄 유전무죄이지요. 하물며 2천년 전입니다. 로마시대 재판관들은 돈을 받는 대로 판결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과부. 과부는 헬라어로 케라입니다. 뜻은 ‘버려진’ ‘텅빈’.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형사취수제(고엘제도:형이 죽으면 동생이 책임짐)가 있었습니다. 친족들이 과부와 결혼해서 인생을 책임져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사회에서 과부는 극히 드물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재산도 없고, 아무 돌볼 사람도 없는 사람입니다. 과부는 공민권의 제약을 받았고, 사회적 보장을 받지 못했으며, 복지나 의료 혜택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착취와 학대의 대상이었습니다.(마 23:14)
자, 재판관은 악질적인 도둑놈 재판관이고, 원고는 아무 능력 없는 지독히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끈질기게 매달리고, 졸라댑니다. 재판관이 주차장에서 내리면 기다렸다가 계속 붙들고 울며불며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화장실가면 입구까지 따라가서 기다립니다. 나오면 바지끄덩이 잡고 늘어집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얼마나 간절했는지 이제 오히려 악질적인 재판관이 들들 들볶이다가 두 손 들고 항복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거, 뭐냐? 빨리 말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별 막말을 다해가며 재빠르게 일을 처리해줍니다. 이렇게 안했다가는 바지 벗겨지게 생긴 것입니다.
5절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7절 기도하면 복을 받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도하기를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이 과부만큼 간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1. 기도의 목표를 정하십시오.
주님은 항상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먼저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필요를 몰라서 질문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이 정말로 그것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시려면 주시고 아니면 말고...” 이렇게 기도하면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기도가 길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2. 기도는 쌓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한 번에 해결도 되지만 주로 쌓이고 쌓여서 응답받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이 과부도 불의한 재판관을 찾고 찾았지 않았습니까?
구름도 쌓이고 쌓여야 비가 되어서 하늘에서 내립니다. 눈이 내려서 쌓이고 쌓여야 온 세상을 덮습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곧바로 다메섹으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을 아라비아 광야로 보냅니다. 아직 기도가 쌓이지 않았다. 이런 뜻입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무려 14년 동안 기도를 쌓았습니다.
3.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하십시오.
기도는 수단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영적인 태도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라, 기도가 쌓일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계속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게 되고, 결국 주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변화된 기도자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7절 ‘하물며’ 즉 그렇게 악한 자라도 간절한 청원을 들어줄 줄 아는데 살아계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녀의 기도를 모른척하실 분이 아니지요. 즉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인격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결국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8절 기도를 통해서 더 깊이 나아갔습니다. 과연 말세에 얼마나 믿음 있는 자가 있겠느냐? 더 깊이 기도로 나아가니 말세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당부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렇다면 기도응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까지 알게 되는 깊이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1절 희랍어 데이(δει)가 빠졌습니다. 데이는 반드시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항상 기도하라 이런 뜻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항상 해야할 성도의 의무입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의 기도가 쌓이고 쌓여서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이 충만하고, 더욱 흔들리지 아니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 예배자들 모두 기도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서 코로나도 이기고, 모든 악한 사탄의 미혹과 저주도 이겨서 마침내 아름다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 영광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헌금찬송 ‥‥‥‥‥‥‥‥‥‥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 다같이
헌금기도 ‥‥‥‥‥‥‥‥‥‥ 호윤례 권사
축도 ‥‥‥‥‥‥‥‥‥‥ 강순욱 목사 - 내 사랑의 교회 동문감리교회(2021년 8월 1일 주일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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