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소련 침공과 카멜레온의 기적
독일장교와 병사들을 치료해 주다가 들었다는 의사의 전쟁 상황은 루카스와 오스카 가족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오늘이 1939년9월17일이니까 소련의 붉은 군대가 폴란드에 침공한지 사흘째입니다.
폴란드는 전 지역에서 밀리고 바르샤바는 엄청난 폭격으로 함락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군은 전쟁 물자를 보급 받지 못해서 더 이상 진격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는
우리군은 패배를 직감하고 흩어졌다고 합니다.”
“예? 소련의 붉은 군대가 독일 나치와 협공을 해 왔어요?”
폴란드의 슬픈 운명에 루카스 일행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요하나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 내렸다.
빌은 요하나의 눈물을 보자 폴란드가 모국처럼 슬프게 다가왔다.
빌은 의사에게 폴란드 군 행방을 묻고 의사는 들은 이야기와 예단까지 들려주었다.
“지금쯤 붉은 군대가 있는 곳까지 밀려가서 소련과 마지막 일전을 치루거나 도시에서 독일 군과
게릴라전을 치를 것 같기도 합니다. 전투기는 쫓겨 루마니아로 갔다고 하는데 폴란드는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후~”
의사의 깊은 탄식에 루카스는 이제는 숲정이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는 것 같았다.
벨라루스인 ‘호멜’ 부부와 우크라이나인 ‘체르니 히우’ 부부가 들려준 신천지 ‘주상절리’로 완전히
굳히고 의사에게 물었다.
“제가 꿈꾸는 마을에도 의료시설이 필요할 것 같은데 구경 좀 할 수 있을까요?
“예? 그건 좀....”
의사가 망설이자 루카스는 말을 잘못 꺼낸 것 같았다. 노인은 살며시 웃음을 띠며 말했다.
“필요하다니 보여주게, 이분들은 폴란드인이고 신앙인 같은데 믿음이가네.”
리나는 노인과 딸에게 숲정이의 차를 대접하려는 생각에 남자들만 따라 가라며 벤의 등을 떠밀었다.
집 뒷문으로 나서자 크고 작은 나무 사이로 창고 문이 보였다. 문은 허름한 창고 이었지만 들어서자
바깥 분위기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햇볕이 드는 천정 창. 넓은 공간에 간이침대와 의자 그리고 꼭 필요한 의료 장비들이 있고 나란히
룸이 두 개가 있어 감탄을 했다.
“오~ 훌륭해요 이건 창고가 아니라 시골 작은 병원보다 나은 것 같아요 우리가 살던 숲정이에도
없었는데 와~”
“그런가요?”
“저기는 입원실 같은데 볼 수 있을까요?”
의사는 또 망설였다. 루카스는 또 실수를 했나 싶었다. 의사가 말했다.
“잠깐 들어가서 카멜레온과 상의를 하고나서 말씀 드릴게요.”
“예? 카멜레온과 상의를 해요?”
룸에 들어간 의사는 잠시 후에 손짓을 했다. 입원실에는 가슴에 압박 붕대를 두르고 엄지와 검지만
있는 손가락 붕대를 감은 젊은 남자가 작은 상처는 드러낸 채 앉아 있었다.
루카스는 자신이 생각했던 카멜레온이 아니라 사람이라 실 웃음이 나오려했지만 붕대를 보고 참았다.
벤은 환자를 보자마자 두려워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아버지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폭격으로 여러 군데가 다쳤는데 더 치료를 해야 될 것 같아서 저희가 좀 더 치료 후에 돌아가시라고
붙잡았습니다.”
루카스와 오스카는 환자를 위로하는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았다.
묵도가 끝나자 환자는 환하게 웃으며 감사인사를 했다. 의사는 더 환하게 웃으며 환자소개를 했다.
“이분은 폴란드 군인인데 부상을 당했을 때 사망한 독일 군 군복으로 갈아입는 위장을 해서 살아났어요.
그래서 제가 이름을 카멜레온 이라고 불러 주었어요. 하하하.”
“아하 그런 뜻이. 저는 카멜레온과 상의를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카멜레온은 그제야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독일 군과 함께 치료를 받으며 폴란드 군인이라는 것을
숨겼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진실의 문이 왈칵 열렸다.
“저는 독일과 대치한 폴란드 최전선에서 복무를 했는데 여기까지 밀려오게 됐어요.”
벤은 독일과 대치한 폴란드 최전선이라는 말에 자신이 복무했던 곳이 아닐까 하고 귀가 열렸다.
하지만 정보장교와 불상사 때문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카멜레온은 색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르샤바가 나치에 넘어 간 것 같은데 치료 후에 제할 일이 정해졌어요.
나는 폴란드 군인들과 시민들을 모아 수도 바르샤바를 탈환하는 봉기를 시작할 겁니다.
조국을 찾는 나의 꿈은 꼭 이루어 질 겁니다. 아멘~”
끝으로 던진 ‘아멘’이라는 말에 모두 화답을 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귀로만 듣던 벤은 ‘최전선’이라는
말이 자꾸만 자신과 같은 부대에서 복무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멜레온의 말은 이어졌다.
“저는 신앙이나 믿음이 없는데 ‘아멘’하고 외친 것은 아멘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이라고 들어서 믿고 빌려온 것입니다. 우리 부대에 신입병졸이 왔는데 찬송가를 읊조리고 아멘
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아~주 순수해서 신도 그의 기도는 다~ 들어 줄 것 같아서
몰래 훔쳐 써먹는 중입니다. 하하하.”
벤은 놀라며 그 신입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멜레온이라는 부상병이 누군지를 떠올렸지만
신입 사흘 만에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카멜레온의 말은 이어졌다.
“그 신입은 찬송가나 부르는 심약한 병졸로 전선에 투입되면 총도 못 쏠 병졸 같았는데 한 사건에
휘말렸어요. 하지만 저는 신입의 찬송가 생각에 결코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 했지요.
그래서 평소에 개판인 정보장교가 술을 먹고 자해 소동을 벌였다고 거짓 보고를 했습니다.”
의사도 처음 듣는 말이라 선한 거짓말했다며 웃었다.
“그게 선한가요? 아무튼 신입은 탈영을 하고 나와 부대원은 개를 몰고 추적을 했는데 적군도 못 죽이게
생긴 신입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추적 견의 급소를 찌르고 달아났는데 그 밤에 우리도 당할 것
같아서 돌아와 허위보고를 한 겁니다. 하하하.”
카멜레온의 웃음에 벤은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사건이 단번에 풀려 버렸다.
루카스와 오스카도 놀람과 동시에 벤을 부르며 껴안았다.
벤은 긴 시간동안 답답하고 억울했던 누명을 벗은 기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루카스는 벤을 부르며
세 사람은 깊은 포옹을 했다.
카멜레온은 벤이라는 말에 그제야 신입의 이름이 생각났다.
“벤? 그럼 혹시 그 신입이 자네야?”
“예. 맞습니다. 1939부대 8월30일. 술 취한 정보 장교님이 찬송가를 부르는 놈은 겁쟁이이고
살려달라고 구걸하느냐며 칼로 죽이려고 달려들 때 넘어진 제 위를 덮치고 칼 든 손목을
비틀었는데 장교님 목에.”
“맞아 내 생각대로 자네는 결코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해서 아주 기뻐.
만나 확인하고 싶었는데 차용한 아멘이 이루어졌네. 하하하.”
“신의 가호입니다 바르샤바 봉기도 꼭 이루어 질 겁니다.”
벤이 전선에서 죽음이 두려워 심약해 질 때마다 불렀던 찬송가와 아멘이 기적 같은 만남을 만들었다.
벤은 자신을 믿어준 카멜레온이 감사해서 손을 꼭 잡았다. 누구도 해결 할 수없는 전쟁과 도피의
생활에서 살인 누명 사건을 해결해 주신 신께 아멘과 함께 감사를 올렸다.
카멜레온이 말했다.
“벤 너를 기억할게. 너도 내가 우리조국 폴란드를 나치와 붉은 군대로부터 탈환하는
‘바르샤바 민중 봉기’에 선봉장이 되어 저항 운동사의 최고의 저항운동으로 역사에 길이남기를 바라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게. 아멘?”
창고 병실은 아멘으로 가득했다. 카멜레온은 아직 못 다한 말이 있는 듯 다시 이어졌다.
“자네의 가족은 진실한 크리스천이지만 나는 개 같은 크리스천도 보았네. 사촌형이 크리스천인데
어느 날 크리스천징집 모병관‘막시 밀리언’이라는 놈이 영웅을 만들어 주겠다며 데려 갔는데
죽었다고 들었어.”
“막시 밀리언이요?”
“왜 벤도 아나?”
“아니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그놈이 폴란드 놈이라는 게 부끄러워. 조국을 배신한 그런 사이비 크리스천 막시 같은 놈들도
모조리 없애 버리겠어.”
벤은 차마 숲정이 고향 사람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영웅을 만들겠다며 자신과 아버지를 전쟁터로 끌어가려고 했던 막시의 악몽에 온몸이 떨려왔다.
떨리던 몸은 전선에서 보초를 설 때 요하나만 생각하면 의문의 꽃향기가 났던 일도 떠올랐지만
이의문은 신의 영역에 맡겼다.
의사는 먼 길에 오느라고 배가 고프겠다며 모두 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다.
“우리 집엔 독일 군들이 주고 간 비상식량과 식재료가 있으니 마음껏 드시고 편히 쉬었다 가세요.
신의 보호로 이렇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카멜레온은 겨우 옷 한 벌 갈아입었다고 국적이 바뀌어 살아 있는 것도 신이 주신 지혜라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를 했다.
“신이여 감사 합니다 아멘~”
붉은 군대와 나치 앞에 무너지는 슬픈 소식과 기쁜 저녁식사. 슬픔과 행복이 반반이었다.
오랜만에 편안한 잠자리에서 일어난 가족은 작별의 인사를 하고 두 대의 차를 나누어 탔다.
“벤 언젠가 다시 만나세. 내가 봉기 후에 살아남는다면 주상절리를 찾아 갈지도 몰라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