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기우뚱한 외 1편 심수자
한 사람이 세 사람이 되고, 네 사람이 되는 동안
꽃들은 침묵에 들었다
오후 세 시가 새겨진 커튼 속 괘종시계가
울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해도
달팽이 걸음은 멈춘 듯 멈추지 않는다
오독의 시간이면 어때
우기에 끌려다녔으면 어때
사람과 사람 사이 내리는 안개비에
시계의 톱니바퀴는 녹슬고 녹슬어
저절로 삐걱거리고
침묵의 꽃봉오리들 깨어나 기웃거리면
세시의 유리창을 가로막은 커튼의 무게는
점차 가벼워지겠지
마침내 네 사람이 한 사람이 되고
피었던 꽃들 저절로 고개 숙였다 해도
탁자에 놓인 책의 낱장, 저절로야 넘겨지겠는가
시계 반대편 벽에 걸린 그림 속 여자의 표정은
나를 닮아 여전히 기우뚱이어서
더는 끈적이는 슬픔, 만지지 말기로 한 나
앓고 있는 편두통 속에서
화가 모딜리아니를 꺼내주고 싶다
맨발의 감정
떼어내는 불두화 꽃잎에서 걸어온 길을 감정해 본다
발 부르트도록 걷다가 달리다가
생긴 가슴 통증, 얼마를 더 견뎌야 꽃
바글바글 피워
걸어갈 길에 등불로 밝힐 수 있을까
배가 고파 발등밖에 볼 수 없는 나는
지평선 따라 쉼 없이 걸어가지만
땅의 끝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
빠르게 사라지는 양지 뒤에서 밤을 지키는
어둠 속 까마귀
젖은 목소리 들려 올 때마다
칠흑의 하늘에 생겨나는 별자리들은
독수리자리, 물병자리, 전갈자리
마른 풀잎처럼 헝클어진 감정 가지런히 추슬러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평 맞추느라
두 눈은 자꾸만 붉어진다
빛과 어둠 함께 밟으며 어제를 견디고 또 오늘을 견디는
저 맨발의 까마귀를 닮고 싶은 나
불두화로 감정鑑定한 감정感情의 무게
손저울에 가만히 얹어본다
//심수자 약력
2014년 《 불교신문 》 신춘문예 시 당선
2014년 <엔솔로지> 젊은 시 20인에 선정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수성문인협회, 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대구경북예술가곡회 회원
2023년도 문화예술진흥원 문학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술뿔』 『 구름의 서체』 『 가시나무 뗏목』 『종이학 날다』 『 각궁』
<2023년 모던포엠 10월호 게재 시>
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겨울판화(박윤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