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선수에서 스타 감독으로 야구계의 한 획을 긋다.
Remember. 지금도 가끔 내가 힘이들 때면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곤 한다. 그는 내가 잊지 못할 스타 선수였으며, 코치였고, 감독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만난 곳은 경산 볼파크였다. 당시 스포츠를 사랑하고 특히 야구에 미쳐있던 나는 삼성라이온즈 선수들과의 만남을 쫒아다니기 바빴다. 그렇게 바쁘게 쫒아다닌 결과 나는 2군의 한 백업 포수와 친분을 가지게 되었고 그 친분을 시작으로 그는 나의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신고선수로 데뷔 한 당시 그의 나이는 27. 신인 선수, 신고 선수 치고는 아무 경력도 없었다. 보통 신고 선수면 고졸,대졸 신인으로 데뷔해 입단 후 빛을 못보다가 재계약에 실패한 후 테스트를 통해 다시 입단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는 중교 야구를 마지막으로 야구 인생을 마감했던 것이 끝이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는 나의 아이러니를 깨버린 몇 안되는 사람중 하나가 되었다. 2018년 1군 포수들의 부상을 틈 타 1군라인업에 진입하더니 2군에 있을때와는 엄청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해의 신인왕은 물론이고 데뷔 첫 해에 올스타로 뽑힌 것만해도 그는 팬들의 이목을 잡기 충분한 기록을 남겼다. 데뷔 첫 해 0.301의 타율 20홈런 도루 저지율만 해도 8할에 가까운 저지율을 보여주었고, 언론은 그를 박경완, 진갑용과 같은 거물 포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포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하지만 그는 중교 야구로 한번의 마감을 겪은 이유가 된 오른쪽 팔꿈치 손목 수술 후유증은 그의 발목을 다시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유유히 선수 생활의 마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게 그가 은퇴하고 1년뒤 나는 배터리 코치와 스포츠 기자의 신분으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명목상 그때 그 시절 스타선수는 무엇을 하고있을까? 라는 주제로 그와의 만남을 가졌지만, 나는 그의 진 면목을 다시한번 보게 되었다. 그는 경산 볼파크의 재활의 신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당시 인터뷰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시는 나같은 부상의 잔해로 인해 야구를 그만두는 이를 바라볼 수 없다. 그들을 위해 내 남은 인생을 야구에 바친다. 그의 열정은 대단했고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2년 뒤 삼성의 1군 배터리 코치로 그 후로 5년 뒤에는 수석 코치가 되었고 다시 3년뒤 그는 꿈에 그리던 감독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감독 데뷔 초 팀의 성적은 초라했다. 작년 KS우승팀이 6월까지 5할의 승률도 못 올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사실이었고 모든 이는 그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알고있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해낼 것을. 그리고 내가 할 수있는 언론으로 그를 적극 도왔고 다수의 질타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그의 팀은 7월 무더위가 기승하는 여름이 되자 위용을 드러냈고 팀 순위는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 해를 시작으로 팀은 매해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2023년 을 제외하곤 통합 우승을 놓친적이 없었다. 2024년 WBC대표팀 감독으로 나가서 전승 우승으로 대한민국을 야구 강국으로 위치하게 했으며 고교 야구 발전과 신생 구단 창립에 아낌없는 지원을 퍼부었다.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한 통 왔다.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무슨말이냐고 따지듯 말렸지만 이미 그는 확고히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20대후반부터 평생을 야구에 바쳤던 그이기에 더욱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KBO에서도 노장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빛내주기 위해 대구시와 삼성구단이 협의해 대구 스타디움에서 그의 마지막 은퇴식을 하기로 계획했다. 그의 은퇴식이 있는 날. 그의 수 많은 후배들, 제자들이 찾아왔고 팬들이 찾아와 대구시 교통은 마비가 되었고 야구계의 역사적인 날으로 기록되었다. 그렇게 기쁨과 슬픔에 잠긴 틈을 타 몇일 뒤 그의 부인으로부터 연락한통이 왔다. 서울 삼성병원인데 그가 곧 있으면 고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그 다음날 그는 고인이 되었고 야구를 그만 둔다는 진짜이유도 그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그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한국프로야구계를 포함한 사회전반이 추모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살아생전 장선근이라는 이름 석 자가 세상에 남기고 간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고(故)인이 되었고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도 되었다. 그는 포기를 몰랐으며 마음먹은 것은 이루고마는 그런 고집스런 사내였다. 당신을 평생 기억하겠소. 다음 생에 꼭 다시 만납시다.
첫댓글 실제로 운동선수를 하셨다면 정말 잘 하셨을거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시는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많이 리얼한 실제 기사를 읽는 느낌이네요.
교수님의 말씀대로 꿈을 잃지 마세요^^ 잘 읽었습니다~!!!
잘봤습니다. 역시 야구하면 삼성 라이온즈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금도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꿈을 잃지마시고 꼭 이루시면 좋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어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05.28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