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師)의 길
권 두 언 어떤 기도
정 영 곤 국어교육과 73학번, 퇴직사대 출신이니 사관학교 출신과 마찬가지다라는 생각은 있었다. 그래도, 시를 예로 들면 소재, 주제, 운율등으로 정리부터 먼저 하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은 학생들의 숙제로 돌리고 수업 시간에는 작품에 대해 토론하거나 서로 느낀 바를 말하게 하는 수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그날 이후 간 곳이 없어졌다. 학생들을 좋게 말해서 엄격하게, 나쁘게 말해서 까다롭게 대하는 태도를 가지게된 것이다.내 휴대폰 종료 화면은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언제라도 가는 줄 모르게 세상을 떠나면 그게 인생의행복이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깔아놓았다.그 그림을 늘 보면서 항상 던지는 질문과 바치는 기도가 하나씩 있다.질문은 만약 내 초임발령지가 내 모교가 아니었다면?아니 발령받아 간 첫날 교무실에서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교사가 되었을 것인가?이다.첫 발령지는 부산남중이었고, 모교였다.어릴 때부터 살았던 집은 영도 아랫로타리에서 첫번째 시작하는 사거리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있었다. 그곳은 초·중·고·대를 마치고, 10년 후 결혼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즉, 첫발령지는 내 모교였고, 집에서 10분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었다.발령 첫날 교무실에 가 앉았을 때 어떤 교사가 큰 목소리로 학생을 꾸짖고 있었다. “영도놈의 새끼들, 뱃놈의새끼들, 배운 것도 없는 놈의 새끼들.” 그 학생은 그 교사에게 양쪽 뺨을 돌려치기로 맞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 교사가 학생을 때리면서 하는 말 하나하나가.중입시험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소위 4대 명문 중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거나 시내에서 영도로 발령받아 오는 교사들 중, 그렇게 영도에서 나서 자라는 학생들을가슴 아프게 하는 교사들이 있던 그 시절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교사로서의 내 길이 정해졌던 것 같다.가정방문을 갔을 때, 초등학교때 내 친구들처럼 학생들은 산복도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 옆, 이송도길 아래에서 보아 까마득한 절벽 위에 책상 하나 놓을 마루와연탄 아궁이가 바로 붙은 허름한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거기에 네댓 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애들이 나중에 성공하게 하기 위해서란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학생들에게 나는 괜히 까다롭고 힘든 교사였었다.그런 태도는 다음 발령지인 남여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도 운이 안 좋았던 게 발령받아 간 첫날에 있었다. 역시 거의 선머슴아 같이 보이는 여교사 한 명이“이 가시나야, 니가 그래 갖고 가시나라고 할 수 있나?섬가시나지.”하고 나무라고 있었다. 어, 여기서도?나는 1학년 담임이었다. 반 학생들이 반 대항 댄스경연 대회에 디스코로 하겠다고 했다. 안 된다, 정통 댄스를 하라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웠다. 나는 백조의 호수 같은 그런 댄스만 댄스란 고정 관념을 갖고 있었던것이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캉캉을 했다. 일종의 반발이었으리라.여중에서도 가정방문을 갔었다. 일송도로 가는 아랫길에 살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 집도 아랫길 큰 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골목 안에 있었다. 아주 허름한 집이었다. 상당히 부끄러워하는 학생에게 그럴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받아들여졌을지......학생들을 까다롭게 대하는 태도는 관리직이 되기 전까지 평생을 끈 태도가 되었다. 인문계고등학교 근무할 때, 야간자율학습 담당 교사가 나라고 하면, 그날은영광의 탈출(?)을 하는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운동장 구보를 최소한 열바퀴 이상은 돌렸기 때문이다.⼤ 師範⼤ 同 52다시 질문을 하게 된다. 첫 발령지에서 그렇게 모교 학생을 모욕하는 언사를 듣지 않았으면, 좀더 여유가 있고, 유머가 있는 교사가 되었을지. 그래서 대학을 졸업할 때 다짐했던 것처럼 눈썹도, 머리도 허옇게 되어서교탁 앞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죽는 줄 모르고 죽으면 그게 평생의 보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지.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있다. 살아있으면서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는 게 인생사이다. 직·간접으로 내 옆에 잠시다가왔다가 떠나간 학생들 모두가 건강하고 잘 되기만을 바라는 게 교사의 마음이다. 신문이나 언론상에 잘된 학생들이 보도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통해서 듣게 되면, 그들이 나를 알거나 모르거나 기쁜마음이다. 그렇지 않고, 나쁜 일로 보도되면 '내가 잘못가르쳐서 그런 것이다.' 하고 뉘우치게 된다.그럴 때마다 기도를 하게 된다. 제발 하루바삐 잘된 길로 다시 걸어갈 수 있게 해주시라고. 잘되었거나 그릇되었거나 그들 모두에게 항상 하는 말, 다시는 만나지못하기도 하겠지만, 우리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성실하고도 열심히 살아달라고. 또 그렇게권 두 언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도회의 창문 하나하나에 어리는 얼굴마다 새기며 때론 뉘우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