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하현달
詩 / 김인수
쇠락을 새긴 가슴이 저토록 침묵하는 것은
아마도 치명적이거나
대뇌 계산에서 막장을 읽었을 것이다.
새로운 하늘 하나가 처연의 빛깔로 뜨고, 청청한
내일, 그 푸른 건반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파장으로 왔을 터,
젖은 달은 표식도 없이 마모되어 가는
그 계산대 앞에서 얼마나 아팠을까
은사시나무 위에 만월로 뜨는 달을 바라보며
걸어왔던 생 저만큼을
지워버리고 싶은 간절함이다.
고도 그 외로운 섬에서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이름 있는 병명 하나를 듣고
허공에 수만번 발자국을 놓았을 날들, 지구는 사각형이고
끄트머리는 직각일 거야
지구의 낭떠러지 깊이는 얼마나 깊을까
조금만 더 살고 싶어요.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그 여린 풀꽃
흐릿한 시야로 황달기가 완연한 눈자위, 어색한
미소가 나를 파먹고 있다.
한때 부라퀴* 그 비대한 수식어들로 가슴을 채웠던
날들은 가시가 되어 찔러 온다.
바람이 분주하던 날
잎새는 자신의 손목을 자르던 날밤,
그믐 강을 죽음처럼 건너고, 한 숨 놓을 때
창틀에 낫낫한* 태양이 다리를 걸치고 들어와
생의 행간은 가끔 움푹 파인 날이 있어요.
만추, 나무들은 불을 붙어 자신을 활활 태우던 날밤
긴 침묵이 있고,
하늘을 향한 새길 하나를 바라보고
비로소 그미* 망막에 푸른 시간들이 맺힌다.
부라퀴 /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는 사람
낫낫하다 / 상냥하고 친절한
그미 / 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