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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과 성도의 궁극적인 승리 롬8:31-39
주신 말씀 롬8:31-39절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사랑과 성도의 궁극적인 승리]라는 제목으로 멧세지가 선포될 때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앞 단락 26-30절에서 성령의 중보사역과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말씀 후, 본문은 인간 구원의 가장 결정적 근거요 원동력이자 확실한 보증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로 인한 성도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환희의 찬가입니다
지난 중에 선포형 말씀은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결과를 책임져 주시기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는 기다려야 하지만 기회는 내가 만들고 찬스는 붙잡는 것입니다.
안된다는 사람은 실패하고 해보자는 사람은 반반이라면 하나님께서 하시면 이루고 할 수 있다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왜냐하면 내 능력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이룰 수 있을까요?
첫째로 아무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31-34)
둘째로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5-39)
셋째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37)
성도는 비록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을 당하게 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고 승리할 것이라는 최후 승리의 확실성을 힘차게 웅장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이룰 수 있을까요?
첫째로 아무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31-34)
아무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먼저 성도들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여타 필요한 은사도 아낌없이 성도들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32).
성도의 선한 싸움은 하나님께서 싸우시기에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가라는 시간에 나가라는 장소에서 전신갑주를 입고 적을 향해 돌진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을 주시고 전법을 주시고 나의 칼을 휘둘러 주시므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결코 정죄함을 당하지 않는다고 믿으시는지요?
죽어 썩어질 몸이지만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는 줄 믿으시지죠?
성령 하나님을 모심으로 하나님을 아버지 아빠라 부르는 은혜 받으셨죠?
성령의 도우심과 성도에 대한 예정의 은혜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확실히 믿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성화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영화의 단계까지 선히 인도하실 주님의 은혜가 믿어지시는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하시므로 누구도 성도를 대적하여 구원의 자리에서 끌어낼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위하시면 (ύπέρ:휘페르)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주이시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없고 말고요.
성도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써 또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써 사단과 불의와 싸워 이겨야 하는 투사 즉 십자가 군병인 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십니다. 우리 편일 뿐만 아니라 이길 수 있도록 각자에게 필요한 무장을 은사의 형태로 해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실한 능력으로 어떤 사람은 지혜로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어떤 사람에겐 믿음으로 큰 물질을 드리게 하고 어떤 사람에겐 병고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겐 방언의 은사를 주어 기도하며 방언의 말씀을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게 하십니다. 영을 분별하여 이단에 미혹되지 않게 합니다. 오늘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대비할 일들을 말합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셨는데 어찌 다른 것들을 은사로 내어 주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 꼭 있어야 할 것 그리고 주신 것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넘치도록 은혜와 은사를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다음은 성도를 대적할 수 없는 것은 성도를 의롭다 판정하신 분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이신바 아무도 더 이상 성도를 송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33).
그렇다고 성도에 대한 성사가 전혀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성도와 성도 성도와 목회자간의 송사가 끊이지 않는 것이 한국교회의 실정입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성도를 정죄함으로 멸망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하나님 앞에서 송사하는 자는 사단입니다.
사단은 하나님 앞에서 성도를 송사하는 자요 참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이라 한 욥까지도 참소합니다.
사단의 참소로 욥이 고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믿음으로 시험을 잘 이겨낸 욥에게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욥이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고 슬퍼하며 애닲음을 단순한 숫자의 보상으로 다 갚을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고통과 애절함을 하나님은 더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즉 질적 양적으로 갑절의 복을 더해 주신 줄 믿습니다.
즉 천국에서 욥의 상급이 갑절이나 더 있게 된줄 믿습니다.
복음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처럼 의롭다고 선고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성도는 신앙양심에 사단의 끝없는 송사를 당하며 삽니다.
내가 조금만 잘못해도 ‘그것봐라, 너는 거짓 신앙인이다 너는 위선자다 내가 감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웃기지 마 넌 직분도 감당 못하는 형편없는 자야’라고 우리를 부추깁니다. 결코 속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 주신 은혜 굳게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 안에 거하면 아무도 성도를 빼앗아가거나 송사할 자가 없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크신 어깨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를 꼭 껴안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시는 것은 우리가 완전무결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 속죄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선언해 주신 줄 믿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송사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빠뜨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믿지 못하도록 하려는 방해 공작일 뿐입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의롭다하면 그것이 법이 되어 의로운 것이지 다른 논리나 학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성도를 정죄하지 못하는 줄 확실히 믿고 참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나님보좌 우편에서 성도를 위해 중보 기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3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정죄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를 정조하지 않으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즉 우리를 위해 변호하고 계신다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죄인들을 심판할 권세를 위임받으신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시며 동시에 산자와 죽은자의 심판주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여 정죄하기 위한 심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되었던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정도로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입니다.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값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성도들이 완전한 구원, 즉 저 천국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변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거의 죄를 십자가에서 이미 사하여 주셨습니다.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거짓과 미움과 음란과 부정과 부패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고 나를 덮고 엄습하는 이 현재의 죄를 어떻게 하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내가 짓고 있는 내 마음속의 작은 미동까지도 주님께서 아시고 나를 대신해 하나님께 중보기도해 주시므로 우리의 죄를 그때 그때 씻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마치 아이가 여기 저기 어질며 군것질을 먹는 것을 그냥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것을 치우며 주워 먹으면서 ‘아고 잘 먹네 어서 먹어’ 하는 할머니 보다 더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신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시간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하나님 아버지께 변호하고 계신줄 믿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이룰 수 있을까요?
둘째로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5-39)
보이지 않는 성령의 줄이 우리 목을 매고 있습니다.
아니면 성령의 줄이 우리를 코뚜레 하듯 결코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줄로 연결되어 있어 칼로도 총으로도 폭약으로도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으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의 줄은 평소에 느슨해서 매여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얼마 전 서울대공원에서 시베리아 호랑이 코풀소 개코원숭이등 맹수들이 탈출하는 소동이 있어지요. 끊이 끊어졌기 때문이지요. 통제가 해이해졌기 때문이지요. 부주의가 잠간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동물은 동물일 뿐입니다. 동물은 본성적으로 사랑이 없습니다.
먹여주고 씻겨주고 돌봐주는 사육사도 알아보지 못하고 목을 물어 중태라 합니다. 간혹 길이 잘들었다 하던 써커스단 호랑이도 조련사를 사육사를 공격했다는 기사가 종종 나옵니다. 먹이 때문에 순종할 뿐 여건만 되면 감추었던 본성이 튀어나와 자기 주인을 공격하는 것이 짐승입니다.
사람은 주인을 알아봅니다. 자기 가족, 조국과 민족 그리고 하나님을 압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이나 다른 세상, 땅위의 것이나 땅의 것들, 혹은 현재나 미래나 그 어떤 것도 성도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생명 즉 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 유혹 핍박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심으로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십니다.
사망 즉 죽음은 하나님과 성도를 갈라놓지 못하는 것은 우리 주님 계신 곳으로 성도를 인도하는 발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하여 영생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천사들이나 권세자들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부리는 존재이지만 권세는 하나님에 대적한 사탄에 속한 타락한 천사입니다.
이들 타락한 천사들은 자기들이 차지하고 독점해야할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이 차지하는 것을 싫어하고 시기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성도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사랑의 줄을 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사단의 방해공작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뿐입니다.
능력은 폭풍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 같은 놀라운 능력을 말하기도 하는데 ,천재지변을 당하여도 진정한 성도는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자이기에 하나님의 사라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높음이나 깊음은 천체의 별들을 가리키는 말로써 높음은 별이 가장 높은 정점에 있을 때이고 깊음은 별이 가장 낮은 위치에 있을 때로 별자리에 따라 길흉을 치던 페르시아 별점에서 유래한 말로 이런 별이 뜨던 지던 천체의 이변이 성도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피조물에는 외계인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가 전혀 모르는 그 어떤 피조물일지라도 성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위치는 고귀하고 하나님의 절대사랑에 바탕을 둔 견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절대 사랑위에 있는 매우 안전하고 복된 삶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크신 사랑 절대사랑으로 꽁꽁 묶여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견고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절대 감사 완전감사하며 감격하여 나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도록, 온전한 희생 번제로 이몸 드리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놓치지 말고 굳게 잡고 이 사랑을 힘입어 어떤 고난도 넉넉히 극복하는 사랑의 메신저들이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이룰 수 있을까요?
셋째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37)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며 받은 각종 고난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방선교사로 일하면서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은 바울 사도가 늘 겪고 있었던 고난들입니다.
전도하 옥에 갇히고 매도 무수하게 맞고 여러분 죽음의 기회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환난은 밖에서 습격해 오는 고통이요, 곤고는 안에서 솟아나는 고통입니다.
핍박이란 신앙 때문에 받는 모든 고통을 말하는 것이요 굶주림, 헐벗음, 위협, 칼등은 신앙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온갖 고난과 생명의 위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고난과 위협과 위기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하십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는 말 ύπερνικώμεν(휘페르니코멘)은 ύπερ(~이상의, ~ 때문에)+νκάω(이기다. 승리자가되다)의 합성어ύπερνικάω의 현재능동태 동사로써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를 하다, 승리 이상의 승리를 하다. 압도적인 승리를 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지식에 의한 승리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승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 마귀의 일을 멸하신 예수 안에서만 이 승리를 맛볼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성도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약속 가운데 견고히 서서 그리스도를 좇는다면 우리는 대적들에 대해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이기게 될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성도가 이기게 될 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능력이 되어 주시고 직접 역사하시므로 반드시 승리를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가 세상 고난을 이기도 넉넉히 이기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신앙적인 고난을 넉넉히 이기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일시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몸을 괴롭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주실 천국의 영광과 존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과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더 밀착되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는 성도의 의지로 세상의 고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음으로 극복해 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고난을 간신히 겨우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손쉽게 완전하게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퍼펙트 게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해를 보내면서 그리고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차마 감당치 못할 고난 환난시험이 있으신지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어떤 시험 환난 고난도 능히넉넉히 이겨내는 당당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성도가 세상을 이길 무기요 힘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 인생의 힘이요 무기로 삼아 넉넉히 악한 마귀 사탄을 넉넉히 이기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성숙한 성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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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은혜 충만한 주일 되세요
^^
은혜의 설교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