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 H O)의 2006년도 보건 보고서엔,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7세(남 73세, 여 80세)로 되어 있었다. 평균 수명이 급속히 길어지는 현 추세 대로 간다면 머잖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수(白壽)를 누리게 될 것 같다. 백수를 누리는 시대가 지금부터라면 더욱 좋겠다.
죽어서 천당 가기보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맘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좀 더 오래 살고자 하는 게 모두의 맘이라면, 그에 따라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이 곱게 늙어 가는지, 추하게 늙어 가는지는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환갑, 진갑 다 넘긴 나이이면서 가림 없이 자기 과시에 그냥 들떠 있다면 그 보다 더 추한 꼴 또 있겠는가.
다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가졌다는 이들이 함부로 하는 말, 대중없이 쓴 글을 듣고 볼 때가 있다. 어느 모임에 초대받아 나온 분이 남의 저서를 두고 그 가치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열을 가린 일 있었다. 심지어 한 달이면 한 수레만큼씩 받는 책 중의 대부분은, 그대로 쓰레기로 버리고 만다는 말도 하였다. 실상이 그렇다고 해도 많은 사람 앞에서 할 말인가 싶었다.
또 하나는 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두 분이 한자리에서 가졌던 문학 강연에서 보인 예다. 한 분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내용으로 줄곧 듣는 이의 귀를 기울이게 한 반면, 다른 한 분은 그러하지를 못하였다. 그러하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을 내내 과시한 데 있었다.
언젠가 기성 작가 한 분이 쓴, 글쓰기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갈등을 일으켰던 적 있었다. 그의 글 가운데 사람을 일컬어 가축 이름에 빗댄 말이 있었다. 즉,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라는 뜻으로 쓴 글이 "개나 소나 다 쓴다." 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사람을 짐승 이름에 쉽게 빗대어 부르는 작가의 글을 두고서, 밤을 새워가며 제 가진 것 그대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이름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글 보다 더 나은 글이라 어떻게 하겠는가?
정상배(政商輩)의 말이나 글이야 대부분이 제 속셈을 깔아놓고 시작하는 터이기에 아예 외면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소위 문학의 한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작가가 이러할 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그분의 글이 노벨상 수상작으로 뽑힌다 해도 진정한 박수는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글을 바탕으로 하여 만난 자리는 어느 자리 못잖게 중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리에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일시적인 분위기에 취하여 남의 작품을 예사롭게 폄(貶)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글쓰기의 요건 다 갖춘 뒤에 글을 써야한다고 한다면, 과연 이 자리에서 다 갖춘 글을 쓸 이 몇이나 될까. 제 글을 두고 만인이 다 감복한다고 해서 자신마저 그에 얹혀 도도해진다면, 그의 글은 정상배가 쓴 글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오가다 보면 제 공적(덕) 기린 비 세워 놓고, 살아있는 제 눈으로 그 비문 확인해 가는 인사들이 있거늘, 글 쓰는 이 어이 그들처럼 할 수 있겠는가. 써 놓은 글 아무리 미려하다 해도 그 행적 아름답지 못하면, 그의 이름과 함께 다시 평가받게 된다는 것을 이즈음에서도 보고 있지 않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천명(知天命)이니 이순(耳順)이니 종심(從心)이니 하는 연륜 고비마다, 백지 위에 처음 붓을 대는 마음처럼 새롭게 살아가려고들 하는데 하물며 널리 알려진 분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중(自重)하는 맘, 이 보다 더 중시할 게 또 있을까. 공들여 쌓은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인간의 공명(功名)은 순간에 공명(空名)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겠다.
거미가 그침 없이 액체를 뿜어가며 한참에 그물망 만들어 가듯, 현란한 문장으로 한 점 흐트러짐 없는 글을 쓴다 해도 생의 반 이상을 넘긴 연륜에선,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이며, 남의 글은 또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07,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