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누가복음 9: 57~62
제목 : 주님을 따르는 성도의 자세 17.12.3 am/ 진관
[본문말씀]------------------------------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하시니라.』
--------------------------------------
할렐루야 ! 2018년 12월 첫 주일을 맞아 하나님께 나오신 여러분 모두 환영 하고 축복한다.
서로 인사하자. “하나님이 오늘 당신을 만나주십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되는 줄을 아시는가?
/장관급 30명, 차관급 88명, 국실장 457명, 1∼3급 1121명 등
/그리고 각종 자문위원회 위원 약 1200여명
/헌법기관 고위직들(대법관14명,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9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3명)
/공기업, 준정부 기관 고위직들(한국관광공사,한국전력공사,한국조폐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마사회 등 공기업 17개,국민연금관리공단,한국주택금융공사, KOTRA 등 준 정부기관 29개 기관장 및 감사 88명)
/기타 공공기관장(서울대병원,산업은행,수출입은행,동북아역사재단 등18개, 그리고 한국방송공사사장,
한국은행총재,금융통화위원,뉴스통신진흥회 등) 등등
법률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인원이 무려 1만 여개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한동안 ‘친박, 진박’ 하더니 이제는 ‘친문. 진문’ 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ex)엊그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한병도 정무비서관을 승진 발령했다. 한 정무수석은 대통령비서실장인 임종석과 같은 전대협 3기출신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문재인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이미경 전의원이 코이카의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권력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를 따르는가?’ 로 그의 진로가 결정되어진다.
◻ 그런데 예수님이야말로 당시 가장 인기가 있는 리더였다.
그래서 따라다니는 무리들이 많았고, 따르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하루는 주님이 길 가실 때 어떤 사람이 자원하여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했다.(눅9:57) 그렇지만 웬일인지 그 사람은 곧 따르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 같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고 하신다.(59)
◼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 자원하던 사람이 돌아가 버렸는가?
주님을 따르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라고 한 사람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는 주님말씀에 사라진 것이다.
아마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머리 둘 곳마저 없는 처지임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말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은 평탄한 길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음의 자세를 바로 해야 따라갈
수 있다. 자세가 되지 않으면 이 사람처럼 따라갈 수 없게 된다.
◼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성도는 왜 자세를 바르게 가져야 하는가?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고난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님이 빵을 만들어 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들을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하신 까닭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도록 하는 표적으로 주신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표적이 아닌, 떡을 먹는 까닭』 이었다.(요6:26)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아니한 사람들은 다 고난이 오면 도망해 버릴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얼마 후에 십자가고난을 말씀하실 때 그들은 다 떠나 버렸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고 물으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매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 했다.(요6:67,68)
-성도여러분! 주님을 따르는 성도는 믿음을 갖고 끝까지 따라야 한다.
-세상을 사랑한 데마같은 사람,/ 돈을 사랑하여 주님을 판 가롯유다같은 사람,/
재물을 놓지 못해 돌아간 부자 청년같은 사람은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의 자세가 중요하다.
ex)군대에 들어가면 훈련소에서 가장 먼저 하는 훈련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제식훈련이다. 차렷, 열중쉬엇,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 이런 훈련부터 시킨다.
자세를 똑바로 세우면 바른 정신으로 군대생활을 잘 할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도 자세가 중요하다. /어떤 마음의 자세로 예배를 드리는가? 는 너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세를 보시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바른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열납하시고 자세가 바르지 않는 사람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아벨은 열납되었고 가인은 열납되지 않았다. 다윗은 인정받았으나 사울왕은 인정받지 못했다.
믿음의 바른 자세를 가진 사람은 생각이나 말도 바로 하고, 일을 맡겨 놓아도 바로 일을 처리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나름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지만, 그들은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였다. 성도여러분은 믿음의 바른 자세로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a. 주님을 따르는 성도의 자세는 고난을 각오하는 자라야 한다.
-57절에 한사람이 주님에게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겠나이다.』 고 한다.
이 고백만을 본다면 이 사람은 온전한 주님의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의 마음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는 주님을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분’으로, 그는 정치적인 자세로 따른다고 한 것이었다.
-아마 그는 주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리이다.』 한 것이다.
그러나 -58절에 주님깨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신다. 따르는 자가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는데 고난이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을 따르려면 짐승만도 못한 처지에서 춥고 배고프며, 욕먹는 대접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조용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문제는 이 사람처럼 영광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이다.
ex) 12제자들도 한 때는 그랬다.
a.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직접 체험했다.
b. 베드로,야고보,요한으로부터 들은 주님의 변화산 사건의 모습의 소식은(28) 제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주님을 따르기만 한다면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수가 있다는 소망에
들뜨게 하였다.
c.그래서 찬란한 왕국에서 누가 큰 자인가는 제자들에게 관심 거리였다.
그래서 길에서 『누가 큰 자인가?』 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46)/
-이전에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께 찾아와 노골적으로 주님의 우편과 좌편에
두 아들이 앉게 해 달라고 로비를 벌인 적도 있었다.
d.사마리아 한 마을에서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을 알고 영접하지 않으니 야고보와 요한은
『불을 명하여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기 까지 하였다. 물론 주님이 꾸중하시지만
그들은 주님의 능력을 전매특허 낸 자들처럼 너무나 당당하게 주님께 요구하는 것이다.(54)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고난의 길임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고난을 받을 것이라 하자 이구동성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고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마16:22)
주님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다.(눅9:23)
-제자들이 이러하니 하물며 그 시대의 무리들이 『주님을 따르는 길』 이 고난의 길임을 감히 생각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성도여러분, 물론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길은 영광의 길이다.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나면 면류관을
받아 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고난이 있는 길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지니라.』 했다.(행14;22)
생각해 보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다.
그렇다면 인자에게도 집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미물인 짐승에게 굴이 있고 집이 있다면
창조주이신 주님에게 거처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주님에게는 거처가 없을 뿐 아니라 머리 둘 곳마저 없으셨다.
주님을 따르는 성도의 자세는 고난을 각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들이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불신자들이 더욱 누리고 잘 살아가는 것만 같고 우리는 현실적으로 더 많은 고난을 겪으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우리에게 고난이 있으나 후에는 하나님이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도다.』 했다.(롬8:18)
-주님을 따르는 여러분은 주님의 보상을 바라보라. 보상을 바란다면 현재 당하는 고난이라도
각오하는 자세를 갖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b. 주님을 따르는 성도의 자세는 우선권을 하나님께 두는 자라야 한다.
-59절에 보니 주님은 또 다른 사람을 향하여 『나를 따르라.』 하셨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하였다.
-그러므로 60절에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셨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장례식을 치루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따라서 모든 일에 우선해야 할 일이
이런 일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마땅히 할 말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왜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가?
ex) 주경학자들에 의하면 이 사람의 아버지가 아직 죽은 것이 아니었다. 자기에게 부친이 계시므로
그 부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봉양하다가 부친이 돌아가시면 장례식을 치른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주변사람들에게 신앙을 가지라고 권유하거나 성도들에게 봉사하라고 하면 인간적인 의무로
거절하거나, 혹은 여러 조건들을 가지고 뒤로 미룬다.
-육에 속한 것으로 영에 속한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ex)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은 ‘가정마다 달력이 세 개씩 있다.’고 했다.
a.하나는 사람이 만든 달력으로 365일로 된 달력이다.
b.그런데 안방 침대 머리맡에 달력이 하나 있는데 마귀가 만든 달력이다.
그것의 모양은 사람이 만든 달력과 똑 같은데 한 장 들추면 정월 초하루가 아니라 "내일"이라 쓰여있다.
또 한 장 들추면 또 ‘내일’이다. 일 년 365일이 전부 ‘내일’만 되어 있는 달력이다. -마귀는 날마다 속삭인다.
『너희 가족이 다함께 쉬는 날이 오늘이 아니냐? 목사님도 그것을 알아! 그러니 오늘은 놀러가고
교회는 내일 가라. 오늘은 친구만나고 교회는 내일 가라.』
그래서 이렇게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 있다. 마귀시간표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c.마지막 하나님의 달력이 있다. 이 달력은 첫 장을 들추어도 ‘오늘’ 또 들추어도 ‘오늘’ 이라고 쓰여 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성도여러분! 오늘에 충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본문의 첫 번째 사람은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었다.
/무엇때문인가? 바로 우선권이 잘못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신다.(60) 우선순위를 말씀하신 것이다. 참으로 성도들은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므로 자신의 신앙의 자세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은 그는 우선순위를 바로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등하지 아니하고 바로 순종하였다.
-조카 롯의 종들과 자신의 종들이 서로 대립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향하여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먼저 택하라.』 고 하였다.
이런 신앙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언제나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ex)요셉을 보라. 그에게 하나님이 꿈을 주셨을 때 그는 그 꿈을 가장 우선시 한다. 이해하지 못한
형들이 미워한다. 부모들마저 그의 꿈에 대해 책망한다.
그럼에도 어린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 곧 비전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환경이 그 꿈을 포기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을 버리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죄수의 신세가 되었다. 이쯤 되면 하나님이 주신 꿈을 포기할 만하다.
그럼에도 그는 꿈을 놓지 않았다.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요셉의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고, 언제나 하나님께 우선순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ex)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다.(마6:33)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순간순간 선택을 요구받는다.
-이 때 하나님 말씀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논리를 우선시할 것인가?
-하나님의 교회를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을 우선할 것인가?
이 때 선택을 잘해야 한다. 이런 선택을 통해 나의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잘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그 어떤 것보다 앞세우고 생활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됨을 믿으라.
그래서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c. 주님을 따르는 성도의 자세는 뒤돌아보지 않고 일하는 자라야 한다.
-61절을 보면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하소서.』 하였다.
이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기는 하나 아직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62절에서 주님께선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리라.』 는 하셨다.
-주님은 가족의 친분관계를 금하신 것이 아니라 가족 때문에 예수를 따르기를 꺼려하는 자에게
내리신 처방이다. 이 사람의 경우, 작별인사를 통하여 결심이 번복, 또는 포기할 가능성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에 금지하신 것이다.
-그러면 『손에 쟁기를 잡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 일을 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일하도록 부름 받은 일꾼이라는 것이다.
-성도여러분! 일꾼이 쟁기를 잡고서 뒤를 본다면 제대로 밭을 갈아엎을 수 없다.
설령 앞으로 나가더라도 삐뚤삐뚤하게 밭이 갈아져 농사를 망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지 쟁기를 잡은 자는 앞만 보고 갈아야 한다.
-이 세 번째 사람은 아마도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온 사람인 듯하다.
었다. 그래서 “먼저 가족들과 작별하고” 라 한 것이다.
-오늘의 교회에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다.
툭하면 『내가 집사시절에는 얼마나 일 많이 했는데』 『내가 청년부 때는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우리 집안이 교회에 몇 대째 교인인데』 등 과거를 자랑하면서 지금은 교회 일에 관심도 없고,
맡은 직분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물론 누구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기억하고 돌아다볼 줄 아는 것은 귀하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앞을 향하는데 덜미를 잡고 있다면 해로운 것이 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ex)영국이 아프리카를 지배할 때, 똑똑한 청년을 공부를 시키면 나중에 그 민족의 지도자가 되겠다
싶어서 한 청년을 택했다고 한다. 영국정부는 그 사람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기로 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와서 공부하라고 통지를 했다.
그러자 그 청년은 『공부하러 가겠습니다.』 하면서 한 가지 단서를 붙였다.
그것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가겠습니다.』였다.
그래서 『네 부모님의 연세가 얼마나 되느냐?』 물어보았더니 『40세』 라 했다.
-성도여러분! 이 사람이 영국 갈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쟁기를 잡은 성도들도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는 믿고, 따르기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바로 순종해서 실천해야 한다.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다.(고후6:2)
'형편 되면 하겠다', '빚 갚고 나서 하겠다', '아이들 키워놓고 하겠다' 이렇게 하다가 세상 떠날
때까지 못하고 마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말에 '내일 보자는 놈은 무섭지 않다.' 고 했다.
성도여러분! 지금 믿음의 쟁기를 힘 있게 잡아야 한다. 그리고 잡았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끝까지
밭을 갈아 내야만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일꾼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 이다.
계란을 깨지 않고서는 후라이를 만들 수 없듯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맡은 일에
일관성을 가지고 끈기 있게 일하는 사람이다.
성도여러분! 이제 부터 앞만 보고 신앙의 밭을 주 뜻대로 갈아 가시길 바란다.
힘들더라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바른 믿음의 자세를 가지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믿음은 성도로서 바른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