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탈북민 학생들이 평소 도움을 준 후원자들의 자녀들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뜻깊은 시간이 됐을 듯 한데요.
그 현장으로 홍은지 리포터가 안내하겠습니다.
<리포트>
맹추위와 함께 가벼운 눈발이 흩날리던 날.
서울 여의도 공원에는 낮부터 겨울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요.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온 사람들.
때맞춰 내린 눈이 반갑기만 합니다.
<인터뷰> 정솔(서울시 은평구) : "수능 끝나고 친구랑 같이 놀러오게 됐어요. 눈 많이 오고 그러는데, 되게 괜찮을 것 같아요. 친구랑 놀고 하다보면..."
본격적인 추위와 함께, 겨울 스포츠를 즐길 때가 왔습니다.
이곳 여의도에서는 앞으로 두 달간 저렴하게 스케이트와 눈썰매를 즐길 수 있는데요.
이곳에서 특별한 하루를 보내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만나볼까요?
서툴게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열일곱 살 소연이의 고향은 북한 양강도입니다.
<인터뷰> 김소연(가명/탈북민 대안학교 ‘우리들학교’ 학생) : "스케이트장, 야외에 있는 건 처음이에요. 빨리 탔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온 지 이제 5개월 째, 서울에서의 첫 겨울 나들인데요.
소연이네 학교를 후원하고 있는 한 은행 직원들이 학생들을 초대한 겁니다.
<인터뷰>
김영희(KDB 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탈북민) :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남한 사회에 적응함에 있어서 나를 관심 가져 주고 격려해
주고,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탈북민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같이 어울리면서 정말 세상
밖으로 좀 나와 줬으면 좋겠다..."
두 시간 전, 서울 관악구의 한 탈북민 대안학교.
바로 소연이네 학교인데요.
이곳 학생들은 대부분 탈북 과정에서 학업 시기를 놓쳐 일반 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운 친구들입니다.
늦깎이 학생 허철근 씨도 지난 해 초·중학교에 이어 올해는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볼 예정입니다.
<인터뷰> 허철근(‘우리들학교’ 학생) : "처음에는 일만 하다가 공부 좀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공부를 안했다가 하다보니까 너무 모르는 것도 많고 해 가지고 지금 그거를 배우고..."
5년 전 한국에 온 철근 씨는 생계를 위해 주말엔 아르바이트도 합니다.
학업에, 생계까지 스스로 해결하려니 늘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데요.
그런데, 모처럼 다 같이 스케이트장에 가는 날!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설렙니다.
<인터뷰>
허철근(‘우리들학교’ 학생) : "저희 고향에는 두만강이 있어가지고 두만강에서... (강이) 많이 얼어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
봐요. 저희는 자연 그대로인 데를 타고 여기는 인공적인 데에 타가지고 (여기) 환경이 좀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철근 씨가 동생들을 챙기는 사이,보현 씨도 설레는 마음을 수줍게 털어 놓는데요.
<인터뷰> 이보현(가명/‘우리들학교’ 학생) : "아주 기대가 되네요. 재밌을 것 같고 얼음 위에서 날아다닐 것 같고..."
드디어 도착한 스케이트장!
스케이트에 헬멧까지 갖추고 자, 이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탈 차례죠!
얼음 위에서 날아다닐 것 같다던 보현 씨,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걷는 것도 아슬아슬해 보이는데요.
바로 그 때,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 보현씨네 학교를 후원해 온 김루미 씨.
그런데...
<인터뷰> 이보현(가명/‘우리들학교’ 학생) : "(누가 누구를 가르쳐 주시는 건지...?) 우리 둘 다 배우는 중이에요. 저는 부모님이 일찍 다 돌아가셔서 너무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정말 어머니 같아요."
또 다른 후원자 이유진 씨는 딸 수아와 친구들을 위한 작은 스케이트 강습을 마련했습니다.
선생님은 바로 철근 씨~
철근 오빠예요.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되고 싶은 철근 씨의 꿈도 응원할 겸, 남북한 친구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겁니다.
<인터뷰> 이유진(KDB 산업은행 연구원) : "만날 때마다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남북한이 하나가 되면서 만남의 장을 많이 갖는 것이 참 좋은 것 같고요."
<인터뷰> 허철근(‘우리들학교’ 학생) : "삼촌은 스케이트를 북한에서 배웠는데, 열두 살 때 배웠어. 그 뒤에는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
열두 살 이후 처음 타는 스케이트!
몸은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지만, 조카 같은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철근 씨의 용기에, 평소 형제처럼 지내는 억철 씨도 나서서 거드는데요.
북에서 온 삼촌들의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스케이트 강습.
아이들에겐 어땠을까요?
<인터뷰> 김선우(서울 염리초 1학년) : "북한에서 스케이트 타는지 처음 알았어요. (나중에) 북한에서 북한 형과 함께 스케이트를 또 타고 싶어요."
<인터뷰> 조수아(서울 염리초 3학년) : "엄마가 집에서 북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요. 직접 북한 언니 오빠들과 만나서 스케이트를 타 보니까 (처음엔) 조금 무섭고 긴장됐는데 지금은 진짜 편한 것 같아요."
진땀나는 강습을 마치고 배는 허기지지만, 마음만큼은 든든해진 철근 씨와 억철 씨.
<인터뷰> 조억철(‘우리들학교’ 학생) : "아이들이 귀여워가지고 저희 말을 잘 들어주고 많이 따라줬어요. 아이들 가르쳐주니까 뭔가 뿌듯했어요."
오늘은 특별 공연이 있어 볼거리도 풍성한데요.
<인터뷰> 조억철(‘우리들학교’ 학생) : "동년(어린 시절)으로 돌아간 것처럼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난 것 같아 많이 즐겁고..."
소연이는 얼음 위에서 나비처럼 자유롭게 연기하는 선수들을 보며, 이제 막 시작된 남한 생활에 대한 희망을 찾습니다.
<인터뷰> 김소연(가명/‘우리들학교’ 학생) : "나도 쟤들처럼 막 날아다니고 싶다... 한국에서 저런 것도 좀 하고 싶고, 모든 걸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싶다. 그렇게 희망을 좀 가지게 되고 너무 좋았어요."
탈북민 학생들은 오늘 하루 이곳에서 남한 친구들과 얼음을 지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과 북 사이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길 바랍니다.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서툰 걸음을 떼게 해 준 북에서 온 삼촌들.
그리고 낯설고 외로운 남한 땅에서 그들을 좀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엄마 같은 후원자들.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들의 따뜻한 우정이 오래오래 계속돼 통일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