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0차 강원도 인제 설악산 12선녀탕 계곡(2024.8.1.)
오늘은 설악산 12선녀탕 계곡을 다녀왔습니다.
원래 A코스는 장수대에서 대승령을 넘어 12선녀탕 계곡으로 오는 코스였는데 등산 시간이 6시간도 더 걸릴 뿐만 아니라 장수대 도착이 이미 11시여서 관리인도 완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고, 가려는 사람도 몇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모두 계곡 트레킹으로 바꾸었습니다.
사실 나는 좀 힘들지만 좋을 기회라고 생각해서 대승령을 꼭 넘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또 맞이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강행할 생각을 했었는데 아쉬움을 남긴 체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계곡 트레킹을 하면서 완주하지 않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도 덥고, 몸 상태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어서 완주했다면 존난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엄청나게 고생했을 뿐만 아니라 다들 많이 기다리게 했을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습니다. 역시 산행은 무리해서는 안 되고 과욕을 부리는 것은 더욱 안 된다는 교훈을 이번에 얻었습니다.
명산은 그냥 명산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명산을 찾는 사람은 마음가짐부터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번 우리 산악회는 명산을 맞이하는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산행을 미리 잘 계획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일찍 출발하든가 해야지 그냥 평소처럼 하는 것은 명산을 대하는 자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이런 안일함을 설악산이 꾸짖은 것이 아닐까요? 엄홍길 대장이 TV에서 산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산은 그냥 생각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물건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인간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악인은 이 산의 가르침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배우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남교리 주차장에서 복숭아탕까지 8km가 넘는 코스였습니다. 계곡 길이고 등산로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산행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계곡은 그 이름에 걸맞게 멋진 장관들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습니다. 쉴새 없이 이어지는 폭포와 물웅덩이들이 더위를 더위로 느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인 복숭아탕은 높은 절벽 하부에 복숭아처럼 움푹하게 구덩이가 파여 있고 그 위로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폭포와 물에 깎인 매끄러운 바위를 보면서 장구한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기껏해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순간을 살다가는 존재이기에 장구한 시간을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오늘 계곡에 물로 파인 바위들을 생각해 보세요. 단군 이래 5천 년이라는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구한 세월이지만 그 세월 동안 물이 저 바위를 몇 cm나 깎았을까요? 그리고 저 복숭아탕의 저 복숭아 모양 구멍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걸렸을 것이며, 그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 바위가 보기에 우리 인간은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아지랑이와 뭐가 다를까요?
제가 우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자연을 보면서 우주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우주에서 이 먼지 같은 지구지만 이 지구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그리고 거기에 붙어 있는 이 인간 또한 먼지보다 못한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이 우주에서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산행을 한다는 것은 자연을 즐기는 일이지만 이 즐김을 통해서 이 대자연의 위대함과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려오니 회장님이 “선녀를 만났느냐?”고 하더군요. 선녀탕은 보았지만, 선녀는 보지 못했습니다. 왜 보지 못했을까요? 선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던 시절에는 분명 선녀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소란스럽게 사람들이 다니는데 선녀가 내려올까요? 더구나 그 나무꾼처럼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어요. 선녀는 지금도 분명히 있는데 내가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나의 이 순결하지 인간의 눈에 어떻게 그렇게 순결한 선녀가 보일 수가 있었을까요?
다음에는 목욕재계하고 욕심도 버리고, 나쁜 생각도 버리고, 순결한 마음으로 와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선녀가 보이겠지요?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선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순결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내기해 볼까요? 누가 먼저 선녀를 보나.
이렇게 오늘도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광고] 다음 주는 물한계곡에 야유회로 갑니다. 총무님이, 도시락도 싸지 말고 화장만 예쁘게 하고 오면 된다고 하네요. 닭백숙이 제공된다고 합니다.
첫댓글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정말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며 노닐었을듯 싶네요~
총장님 오늘 A코스 타시려는걸 많이 말려가지고 조금은 후회도 했지만 역시 현명하신 판단이었던것 같아요~나중에 또 기회가 오길 바래야겠죠_
그리고 다음주 하계야유회인데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먼길 건강하게 잘다녀오시길 기도드립니다 .
#오늘 다음주 야유회에 쓰라고 거금(20만원)을 찬조해주신 유근형 고문님께 고맙다는 말씀올립니다.
#현물찬조해주신분: 하존용님~빵을 보따리로..
김종분님~복숭아(200개)
*회원님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연을 보며 그져 입만 벌리고 있을 뿐입니다. 총장님의 일지를 읽으며 이까본 계곡이 눈에 선합니다. 8월 첫날 우리는 멋진 계곡을 다녀왔습니다 . 저도 계곡 물에 발을 담그며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매끈한 돌을 집어 들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버스로 오고가는 중에 보이는 산야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회원님들 모두모두 편안하시고 8일 반갑게 뵙겠습니다.
푹푹 찌는 복 더위에 십이선녀탕 계곡은 딱 좋은 트레킹이였습니다.
근래 비도 많이 와서 수량도 풍부하고...
오랫만에 걸었던 울창한 바위계곡은 물빛도 곳곳마다 옥빛 비취색으로. 풍덩. 들어가 말복까지 실컨 지나고 싶었답니다.
하산길에 물가에 발 담그고 누워. 파란 하늘에 흰구름도 지나는 바람도 넘 좋았습니다.
총장님 산은 늘 그자리에. 먼길 잘 다녀오시고. 어느 가을날 걷고 싶었던 그길에서 멋진 화이팅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