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외국인 친구를 일 때문에 한국에서 만났을 때, 그의 손에는 아이폰(iPhone)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곧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아이폰이구나’ 하며, 매력적인 디자인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디자인과 관련된 애플사의 노력은 뉴밀레니엄을 맞이하며 1999년 그들이 선보인 아이맥(iMac)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아이맥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조형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솔직히 혁신적 디자인은 언제나 혁신적 시대정신을 구현하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했다. 근대적 의미의 디자인의 탄생 역시 그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여피적 허영의 발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태도와 가치를 구현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그마한 가정용 컴퓨터는 '투명성, 개방성, 용이성'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구현하기 어려웠던 키워드를 가장 심미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을 통해서 우리는 뉴밀레니엄의 가치와 정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림 1. 1999년의 아이맥 광고 © Apple Inc.
아이폰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을 눈치챘는지 그는 나에게 선뜻 자신의 아이폰을 건네주면서 친절하게 얼마나 아이폰이 매력적인지를 설명해줬다. 스마트폰을 쓰고 싶었지만 뭔가 스마트하지 않았다고 느꼈던 나는 아이폰의 인터페이스와 인체의 미세한 전기로 인식하는 정전식 터치만으로도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는 것 같았다. 스크린에서 화면들을 줌업하고 줌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순간 초기화면으로 넘어가는 인터페이스에서 매우 초보적이긴 하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 앤더튼과 ‘아일랜드’의 매릭 박사가 아카이브를 넘기는 장면을 떠올리며 신기해 했다.
지난해 말 드디어 아이폰이 한국에서도 출시되었고, 이 출시는 하나의 현상으로 우리에게 작용했다. 아이폰을 꺼내드는 지인에게 “아이폰으로 바꾸셨어요?”하자, “아직도 아이폰이 아니에요?”라고 반문하는 정도이다. 수많은 성인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받고 흥분하는 어린이들처럼, 아이폰의 다양한 기능과 자신의 취향에 따라 구매된 아이폰 앱을 작동시키며 자신만의 놀이의 형식을 발명하고 있었다.
그림2. 애플 어플리케이션 광고 © Apple Inc.
중요한 점은 아이폰이라는 기기가 갖는 특수성이라기 보다 아이폰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의 문제일 것이다. 어떤 차원에서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IT 강국이라고 자축하고 있었지만, 디지털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요청하는 삶의 가치와 태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아이폰의 등장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삶의 가치와 태도를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한 데 있을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의 발명은 언제나 새로운 태도와 신념 그리고 가치의 변화를 야기해왔다. 맥루한이 미디어의 발전과정을 통해서 밝혀내고자 했던 것 역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야기된 미디어가 어떻게 새로운 삶의 태도와 신념 그리고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가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 본연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공감각적 인식체계를 어떻게 구체화하며 그것을 통해서 사회와 대면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차원적인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차원 혹은 그 이상의 유기적 혼돈이 합리성과 비합리성 사이를 가로지르면서 작동될 것이다.
솔직히 한국에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매우 표면적으로 인식된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요청하는 가치들인 '개방성, 상호관계성, 투명성, 이동성, 통합성' 등은 떠다니는 기호처럼 정부, 기업, 개인을 통해서 선언되지만, 이러한 가치가 궁극적으로 사회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맥루한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사회는 여전히 핫미디어에 익숙하거나 핫미디어적인데, 쿨미디어적인 것도 아닌 그와 유사한듯한 어떤 것으로 자신들을 위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디자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이러한 위장술의 방법론을 제시해주는 시녀로 전락했는지도 모른다. 1999년 아이맥이 등장했을 때, 그 디자인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 성찰하기보다 그 투명케이스를 복제하기 바빴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폰이 출시되었고 다양한 사람들은 이제 일상에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혹자는 자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뉴미디어의 직관성을 전화기를 통해서 경험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혹자는 한국의 모 기업이 휴대폰 기술을 개발하는데 집중했다면 애플사는 휴대폰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을 개발하는데 집중했다고 하면서 아이폰을 극찬했다. 그리고 한국의 IT산업의 낙후성에 대한 질타를 넘어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누구는 아이폰은 단순히 ‘머스트해브(must have)’ 아이템의 하나 정도로 인식하면서 패션 트렌드로서 디지털 기기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사용자의 몫일 것이다. 다만, 우리는 레이몬드 윌리암스(Raymond Williams)의 언급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관행의 변화는 오직 감정의 일반적 구조에 급진적인 변화가 있을 때만 일어난다’고 이야기했다. 이 언급은 대중의 감정/감각의 변화가 급진적으로 변화될 때, 사회의 관례적 상태가 변화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구현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한국 사회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확장가능성을 전화 단말기를 통해서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으며, 이 기기가 야기하는 변화된 감각의 구조는 한국 사회의 어떤 견고한 차원을 흔들어놓을지도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서 경험하게 될 감각의 구조가 야기할 새로운 변화가 무엇일지 흥미롭지만, 아마도 어떤 이가 아이폰 앱 개발을 통해서 억대 부자가 되었다는 기사들만 접하게 될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나조영_문화연구 및 문화 인류학 전공. paul.jy.nah@googlemail.com
문화 인류학적 시각으로 동시대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트렌드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지만, 그 트렌드를 쫓아 가기 보다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 삼고자 할 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적용 전유 가능한 또 다른 시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