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에 있는 만해 한용운의 생가이다.
만해는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도전과 희망을 키워갔다.그는 1897년 19살 되던해에 출가하였다.
그 해는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지 3년째 되던 해이다.
만해의 아버지 한응준은 홍성 관아의 관리로 동학군을 토벌하는 관군이었다.
부친이 자신에게 늘 강조하던 의인.절사가 되라는 모습과 불의를 떨치고 일어난 동학 농민군을 토벌하는 아버지를 보고 심적인 고뇌끝에 출가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절에 가서 유교서적과 주역을 공부하던 그는 화엄경 보현행원품을 읽고는 불법의 깊은 세계에 눈을 뜨고 설악산 백담사로 발심 출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건봉사 출신의 김연곡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봉완이라는 법명을 받고 정식 승려의 길을 걷게 되있다.
1906년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불교 학교인 명진학원에 입학하였다.명진학원은 현 동국대의 전신이다.동대문 숭인동에 있었던 원흥사에 세워진 명진학교는 구한말 승려들이 불교의 근대화를 이끌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백담사의 본사인 건봉사의 추천으로 명진학원에서 신학문을 수학한 만해는 다시 건봉사로 돌아와 무불선원에 입방하여 선의 세계에 깊이 몰입하였다.
건봉사에서 정만화 선사의 법을 전수받아 용운이라는 법호를 받았다.정 만화스님은 염불 만일 선회를 결사하여 1908년에 회향한 대 선지식이었다.현재 건봉사 경내에 있는 만화당 대선사 비명 음기에는 제자 명단에 용운이 새겨져 있다.
불교개혁가이며 민족시인이고 최고의 독립운동가인 만해는 설악산 오세암과 백담사에서 읽어버린 조국과 중생과 님을 기리는 사랑의 증도가 88편의 시를 써내려 갔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엺어 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1925년 8월 29일밤 백담사 화엄실에서
불후의 명작 ,님의 침묵,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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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대원사ㅡ석현장
충남 홍성에 만해 한용운의 생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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