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절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첫째 부활을 더 하시는 신랑 예수의 신부가 된 룻이 지금은 시모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육신의 남편 되었던 말론을 낳아 준 시모가 아니라 신랑 예수를 맞이하게 하신 어머니입니다.
룻은 자기가 말론의 아내로 시집 온 그날부터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씀이 참된 영생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었고 오늘까지 이 자리로 인도하신 그의 교훈이 다 참된 영생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상17:24) 사르밧 과부가 자기 아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후에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고 한 것과 같이 나오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어머니께 대하여 이루시는 그 뜻대로 내게도 이루실 것을 믿고 다 행하는 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되는 아브라함도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실 때에 반드시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그 믿음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고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창12:1)
6절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룻이 그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는 것은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순교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보지 못하면 도리깨로 치고 바람에 날리는 그 타작 마당에 자기 발로 걸어서 내려 갈 수 없고 도망치는 자가 될 것입니다.
7절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보아스는 신랑 예수시니 그로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께서 그대로 다 이루시고 계시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요16:13)
바울과 실라가 밤중쯤 되어 깊은 옥중에서 기도하고 찬미하는 그 소리를 듣고 즐거워하고 있는 신랑 예수님이십니다.(행16:25)
바울과 실라의 기도는 죄인 가운데서도 괴수가 된 나와 너를 부르시고 사도로 세우시고 복음과 진리를 증거 하게 하시고 이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기 위하여 순교까지 하게 해 주시는 예수님 앞에 감사하고 찬미하고 있습니다.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고 있는 것을 보시는 신랑 예수의 마음이 즐겁습니다.
보아스 곧 신랑 예수께서 누워 있는 것만 보지 말고 그 예수님의 안식의 품에 들어 와서 함께 누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적가리는 알곡을 모아서 쌓은 곡식 더미이니 첫 삼년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자기에게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계7:13-17)
(단12:1)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니, (계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 책에 녹명 된 자는 하나도 빠짐 없이 이끌어 순교하게 하여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신랑 예수께서 반드시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안식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8:4)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찌니라 하시는데 아직도 흔들어 깨우는 예루살렘 여
자들은 사람의 열심과 충성으로 순교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랑 예수께서 나를 깨워 주시는 그 때에는 내 영혼이 제단 아래서 흰 두루마기를 받아 입고 있을 때가 되는 것입니다.(계6:11)
복음으로 불러 믿게 하신 이도 예수요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 이도 예수요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신 이도 신랑 예수시오니 그 자리까지 인도하시는 역사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참된 믿음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단12:4,9) 두 번이나 말씀하신 대로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 하셨다가 그 마지막 때에 보내심을 받은 나에게 이 말씀을 열어 보이셨으니 그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그 믿음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 룻으로 보여 주시는 안식입니다.
8절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밤중은 (마25:6) 말씀과 같이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시는 환난의 때입니다. 그 사람 보아스는 신랑 예수님이신데 무엇 때문에 놀라고 계실까요?
이와 같이 신부의 믿음까지 자라게 하시는 역사는 계속 되고 있으나 그것을 듣고 보고 이 자리까지 나오는 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만나지 못하였는데 이제 이 자리까지 나온 한 사람 룻을 보고 놀랍도록 기뻐하고 계십니다.
내가 죽을찌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또는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하는 베드로와 같은 무리들은 많이 보았으나 자기 발치 이불 아래 들어와 있는 룻과 같은 신부는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현실을 나타내 주십니다.
9절 "가로되 네가 누구뇨"
보아스가 그 여인을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 예수께서 자기 신부를 몰라 볼 수가 없고 그 신부는 자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신랑이 그 자리까지 이끌어 오게 하신 신부인데 몰라 볼 수가 없습니다.
(마25:12) 기름을 사 가지고 온 다섯 처녀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니 라고 말씀하셨으니 너는 신랑인 내가 아는 자냐 알지 못하는 자냐 네가 누구뇨 묻고 계십니다.
네가 신랑 예수를 찾아 온 자냐 신랑 예수께서 이끌어 주신 자냐 네가 누구뇨 묻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각자가 네가 누구뇨 물으시는 물음에 확실한 대답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네가 나를 찾아 왔다면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고 도망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나는 아직도 시녀의 자리에 있는 룻이오니 이제는 신랑 되신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어 주셔서 신랑의 품안에 안기는 신부가 되게 하소서 구하고 있습니다.
옷자락이라는 말씀은 (사6:1)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내가 주를 영화롭게 할 수도 없고 나를
영화롭게 할 수도 없사오니 주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셔서 주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소서 구하고 있습니다.
(계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라고 하셨습니다.
이십 사 장로는 십 사만 사천이요 자기 면류관은 영광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금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경건하게 두 손으로 받쳐 드리지 않고 먼데서 던지고 있습니다.
그들도 자기들의 생활대로 심판하신다면 가시 면류관 밖에 쓰지 못할 자기들에게 금 면류관으로 씌워 주시는 것을 보고 이 금 면류관을 받아 쓰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데 있는 자기들을 보기 때문에 오직 금 면류관을 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영광 돌리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금 면류관을 씌워 주기 위하여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이십니다.(마27:29)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엘리멜렉에게 주셨던 그 영광된 기업의 땅을 팔고 모압으로 내려가서 그 땅을 사 가지고 죽은 자의 자리에 있을 때에 우리를 다시 기업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으니 그 기업의 땅도 물러 주셔서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큰 기쁨으로 찬송케 하실 자이십니다.
이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하여 죽은 자들은 모압 땅에 장사 지내게 하시고 살리신 자들을 이곳 기업의 땅으로 인도하셨나이다.
기업을 물려주신다는 말씀은 그 기업의 땅을 도로 주셔서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생활입니다.
엘리멜렉은 비록 그 영광된 기업을 버리고 모압으로 가서 죽은 자가 되었을지라도 그의 아내가 된 나오미는 그 영광된 기업을 이미 받았고 엘리멜렉의 두 아들은 모압에서 죽었을지라도 말론으로 인해서 룻을 살려 이 영광된 자리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 기업의 땅이 헛되지 않게 지켜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