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여호와의 궤
역대상 15 : 1 – 15 (13:1-14)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최우선으로 한 일은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쳐서 빼앗고 이름을 다윗 성이라고 했습니다.(5:7)
그리고 거주할 궁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장막을 치고 여호와의 궤를 시온 성으로 메어 올리고자 했습니다. 여호와의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삼하6:2)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시는 작은 상자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광야까지 왔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올려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시고 언약궤를 만들게 하셨습니다.(출25:10-22)
궤 위에 속죄소가 있고 안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십계명을 새긴 두 돌비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히9:4)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령할 모든 일을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출25:22)
궤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순금으로 덮은 작은 상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백성들을 만나시고 말씀하시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양의 피를 뿌리며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 때 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지만 일곱 달 만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삼상6:1) 기럇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에 이십 년(삼상 7:2, 실제로 사십 년) 있었습니다.
사울 왕 때에는 여호와의 궤를 찾지도 않았고, 묻지 아니하였지만, 다윗 왕은 여호와의 궤를 찾고, 다윗 성으로 옮기고 여호와를 가까이 모시고 섬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기고자 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하지 아니하였음이라”고 말했습니다.(13)
궤를 옮기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한다는 규례를 정해 주셨습니다. 채를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고 옮기게 하셨습니다.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라고 했습니다.(출25:14,15)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았습니다’(대상13:6,7)
그리고 다윗은 지휘 감독하고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였습니다. (대상13:8)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고 했지만 새 수레에 싣고 옮겼습니다. 궤를 메는 것보다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옮기는 것을 더욱 좋게 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옮긴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한 것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시온 성으로 옮기고 섬기고자 한 것은 오늘의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앙적 행위로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신앙행위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 외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총회가 만든 ‘예배 모법’대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대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전해 내려온 예배 형식은 시대적으로 맡지 않다고 새로운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예배가 된 것입니다.
다윗은 전에 우리가 규례대로 하지 아니하였음으로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었다고 말했습니다.(13)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옮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 했지만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습니다.
다윗이 규례대로 하지 아니하였음으로 화를 당했던 것처럼 우리도 규례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보다는 진노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이 처음에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옮겼기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습니까?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모으고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삼하6:1,3)
‘뽑은 삼만 명’은 적을 대적하고 싸울 수 있는 군인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였습니다.(삼하6:5)
삼만 명의 군인과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소들이 끌고 산에서 내려올 때, 다윗의 지휘에 따라 온 족속은 각종 악기로 연주하며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사하게 산길을 잘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평지인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므로 궤가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위험하고 비탈진 산길에서는 무사히 수레를 끌었던 소들이 평지인 타작마당에서 뛰었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산길에 내려올 때 소들이 뛰어 궤가 넘어졌다면 길이 험하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평지인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어서 궤가 넘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의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저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6:7). 고 말씀하셨습니다.
넘어지는 궤를 웃사가 손으로 붙잡은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넘어지는 궤를 보고 가만히 있었다면 크게 책망을 받았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러한 상황일 때는 웃사와 같이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크게 책망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웃사를 치시고 죽인 것은 규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법궤는 레위인 고핫 자손이 메고 옮기어야 하는 규례가 있습니다.(민4:15) 레위인이 아닌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가 여호와의 궤를 붙잡은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어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행위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례대로 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잘해도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가 아닌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진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규례를 무시하고 여호와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제사장도 아닌 아비나답의 두 아들에게 수레를 몰게 했습니다.(대상13:7) 우리도 규례대로 예배드리지 않고 더 좋게 더 열심히 섬기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도 소들이 뜀으로 넘어지는 궤를 붙든 웃사가 왜 죽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곳으로 오게 하리요’라고 말하며 궤를 버리고 돌아갔습니다.(대상13:12)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고자 한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섬기고자 하는 열심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섬김으로 자신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까지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지켜 주시는 복을 받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규례대로 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웃사가 죽는 것을 보고 다윗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궤를 버리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버리고 간 여호와의 궤를 오벧에돔이 자기 집으로 옮김으로 크게 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이 석 달 만에 그의 집과 모든 소유에 복을 받았다는 소문을 다윗 왕이 들었습니다.
실패는‘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패는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달아 알게 해줍니다. 화를 당했을 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깨닫는 것은 더 큰 복을 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
다윗은 왕이지만 별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오벧에돔이 여호와의 궤를 자기 집으로 옮겨서 많은 복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복 받는 사람을 보고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오벳에돔이 어떻게 해서 많은 복을 받을 수가 있었는가를 살펴봅시다. 무엇보다도 오벧에돔이 레위인입니다. 13절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라고 했습니다.‘가드 사람 오벧에돔’이라고 해서‘가드 사람 골리앗’과 같은 블레셋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레위인인 그핫 자손인 고라의 후손입니다.(대상16:1-4) 레위인은 여러 지방으로 가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조상이 블레셋의 접경 지역인 유다에 속한 가드로에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가드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대상13:6)
오벳에돔은 궤를 멜수 있는 제사장 가문에 레위인 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궤를 메어 자기 집으로 옮겼습니다.(삼하6:10) 오벧에돔은 궤를 수례에 싣지도 않았습니다. 연주하는 악대로 없었습니다. 궤를 어깨에 메고 자기 집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무엇을 특별히 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윗이 새 수레에 궤를 싣고 두 마리의 소에게 끌게 하고 온갖 악기를 연주하며 옮겼던 것과 오벧에돔이 궤를 메고 옮긴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오벧에돔은 다윗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단순하고 초라했습니다.
이사야 시대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무수한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예배가 규례대로 드리지 않는다면 예배와 함께 악을 행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규례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복 받기보다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의 예배가 규례대로 드리는 예배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쩌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다윗 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여호와의 구례대로 궤를 옮겼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총회가 정한‘예배모범’대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규례대로 여호와의 궤를 옮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는‘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몸을 성결케 하고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고 옮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14,15) 이 규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이므로 절대적입니다.
다윗 성으로 제사장들이 궤를 메고 들어 올 때 다윗과 온 백성들은 찬송을 부르며 기뻐하였고 다윗 왕은 춤을 추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습니다.(대상18:13) 이스라엘 왕국과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복을 받았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벧에돔처럼 규례대로 하나님을 섬깁시다. 다윗 왕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규례대로 궤를 옮김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심으로 복을 받았던 것처럼, 규례대로 하나님을 섬깁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복을 받읍시다.
출처: ╋예수님좋다오 글쓴이: 허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