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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나라 별별 음식
독문과 교수가 어느 날 교수 휴게실에서 험한 말을 했다. “불국인은 나날이 새로운 요리를 발명하는데, 독일 녀석들은 맨날 감자와 돼지고기만 먹는다. 유학하고 있을 때에는 그거라도 감사하게 여겼는데, 교수 노릇을 한참 하다가 가보니 먹을 것이 없어 굶을 판이었다.” 독문학을 전공한 것이 원천적인 불운이니 어떻게 하겠나.
“독일 사람처럼 많이 먹고, 불국인듯이 미식가이다.” 이것은 벨기에 사람들을 만만하게 보고 놀리는 말이다. 이 말은 좀 억울하다. 벨기에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것은 기껏해야 'moules frites'이기 때문이다. 'moules‘은 ’홍합‘이고 ’frites'는 튀김이다. 홍합 튀김을 먹는 것이 아니고, 홍합 끓인 국에다 곁들여 감자튀김을 먹는다. ‘감자’라는 생략하고 ‘감자튀김’을 ‘튀김’이라고만 한다. 이것은 값싸고 소박한 음식이다. 양이 많지 않고, 미식과는 거리가 멀다.
'moules‘이라는 말로 벨기에 사람의 별명으로 삼는데, 이 말에는 ’홍합‘이라는 뜻과 함께 ’멍청이‘라는 뜻도 있다. 벨기에는 가련한 나라이다. 국어가 없고 북쪽은 네덜란드어를, 남쪽은 불어를 쓰면서 서로 반목한다. 나라 이름도 네덜란드어로는 'België', 불어로는 ’Belgique'여서, 영어인 ‘Belgium'이 널리 쓰인다.
이런 벨기에를 주위의 덩치 큰 녀석들이 집단 따돌림의 대상으로 삼지 못해 안달이다. 별명이 홍합이기도 하고 멍청이기도 한 말인 것이 그 때문이다. 불국이 괴롭힘에 앞장선다. 시인 보들래르(Baudelaire)는 푼돈이나 벌까 해서 만만한 벨기에에 강연을 하러 갔다가 환영을 받지 못하고 돌아와, 밸기에는 여자들이 못난 나라라고 험담을 했다. 벨기에 사람들이 불어를 지나치게 정확하게 쓴다고 불국인이 핀잔을 준다.
벨기에 자랑할 것이 없지는 않다. 와플(Waffle)이 유명한 것은 한국의 아동주졸들도 다 안다. 맥주 종류가 가장 많은 것은 상당한 사람이라야 안다. 웬만한 식당에도 누르면 생맥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너무 많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눈여겨보고 왔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지 빠지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한가락 하니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대식가 이야기로 돌아가자. 대식가 시합에서는 독일인보다 미국인이 단연 앞선다. 그 때문에 비만 인구가 월등하게 많다. 뉴욕 한국 식당에서 곰탕을 시키니 네 사람은 먹어야 할 분량이었다. 나라 같지 않은 나라에 가서 음식 장사를 하다가 소중한 한식을 망쳤다.
이런 말을 들으면 불국인은 “거봐, 우리가 제일이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태리도 있고, 스페인도 있다. 불국 음식이 맛있는 것은 남쪽으로 가면 마늘을 쓰기 때문이다. 마르세이유에 가면 마늘을 걸어놓고 파는 가게가 이어져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 이태리에 가면 전국 어디에서도 마늘로 맛을 낸다. 스페인에서는 마늘과 함께 고추도 많이 쓴다. 공정하게 채점하면, 스페인 1등, 이탈리아 2등, 불국 3등인데, 불국이 1등인 척한다.
마르세이유 일대에서 자랑으로 삼는 부이야베스(bouillabaisse)를 말하지 않고 지나가면 무슨 큰 잘못이나 저지른 듯이 항의하고 나설 염려가 있어 말썽을 피하기로 한다. 마르세유에서 바다 구경을 나서면 초라한 좌판에 볼모양 없는 생선을 이것저것 놓고 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런 잡어를 팔다가 남으면 큰 냄비에 넣고 아무렇게나 끓여, 다행이 마늘도 넣어 부이야베스라는 것이 생겨났다.
‘끓인다’는 의미의 ‘부이에'(bouiller)와 ’낮추다‘는 뜻의 “아베세’(abaisser)를 합쳐 ‘끓으면 불을 낮추어라’는 것 외에 이름에 다른 뜻이 없는 이 음식을, 그 일대의 사람들이 신주 모시듯 모기면서 외국 관광객이 먹고 찬사를 바치지 않고 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야단이다.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면서, 우선 한 마디 설명을 한다. 우리 매운탕과 그리 다르지 않고 맛은 조금 모자라는 줄 미리 알고 먹어야 실망을 적게 할 수 있다.
알려주어야 할 요령도 있다. 마르세유 바닷가 어물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비싼 집들, 왼쪽으로 가면 싼 집들이 있다. 종업원이 곁에 서서 생선 가시를 발라주면 그 인건비를 얹어 계산이 많이 나온다. 생선 가시 발라주는 솜씨를 구경하는 값을 내지 않으려면, 왼쪽으로 가서 싼 집을 찾아가 편안하게 먹어야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에 다서 끼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빵 조각과 커피로 입을 다시고. 열시쯤 간식 같은 식사로 먹는 즐거움을 조금 누린다. 점심은 오후 한시부터 한두 시간 동안 좋은 것들을 차려놓고 느긋하게 즐긴다. 저녁은 아홉시 넘어서 점심보다 더 잘 들기 시작해 자정을 넘기기도 한다. 여기까지 말하면 세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하루 다섯 끼나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일은 언제 하는가? 이것이 큰 질문이다. 먹기 위해 일하지,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은 아니다, 먹는 여가에 일은 조금만 해도 되는데, 일하기 위해 사는 것 같은 사람들도 있으니 가련하다. 일에 미쳐 모든 돈으로 전쟁이나 하는 나라 사람들은 쓸데없는 수작을 거두고 저리가거라.
하루 다섯 끼를 먹으면 온 국민이 비만일 것인데 어떻게 걸어다니느냐? 이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자주 먹으면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식견 부족으로 생긴 오해이다. 다섯 끼 스페인 음식의 총 열량은 미국 음식 한 끼, 독일 음식 두 끼를 넘어서지 않는다. 미식가는 대식가를 경멸한다. 鶴(학)은 돼지와 전연 다른 데서 논다.
한 시에 먹고 아홉 시에 먹으면 간격이 너무 길지 않는가? 이것은 하잘 것 없는 질문인데, 신명나게 대답할 수 있다, 다섯 시 무렵에 맥주 한 잔과 함께 타파스(tapas)라는 안주를 몇 개 든다. 작은 접시에 조금씩 담겨 있는 타파스는 가지 수가 아주 많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고, 어느 것이든지 맛이 기막히다. 하몽(jamón)이라고 하는 생 돼지고기 햄이 별미의 제왕인 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스페인에 가서 타파스를 들면서 하몽을 맛보지 않았으면 음식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을 논할 자격도 유보해야 한다.
“스페인 음식이 1등인인데 왜 덜 알려졌는가요?” 스페인문학 연구의 대가 김현창 교수에게 이렇게 물으니, “보편성이 부족한 탓이 아닌가요?”라고 했다. 주의의 다른 나라에 매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수준 높은 감식가가 없어 진미를 모른다. 이태리 사람들은 피자나 파스타를 싸구려로 팔아 그러 것들밖에 없다고 오해하게 한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불국인이 자기 나라 음식이 1등이라고 하면서 목에 힘을 준다. 음식에 관한 철학 같지 않은 철학을 잔뜩 늘어놓아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작전도 쓴다. 불국 음식이 1등이라는 수작이 세계인을 속이는 데 성공한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가만 두지 않고 시비를 건다. 한식도 할 말이 있다.
스페인 1등, 이탈리아 2등, 불국 3등이라고 한 것은 공연히 해본 소리이다. 음식은 등수가 없다. 어느 나라 음식이든 그것대로 훌륭하다. 누구나 각자 자기 기호에 따라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천부의 인권이 있다고 하겠지만, 만국공통의 위장을 지니지 않았으면 고루 맛보지 못한다.
먹던 것들만 먹는 사람은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국법으로 금해야 한다고 말해 몰매를 맞을 지경인데, 만국공통의 위장을 자랑하기까지 하면 무사하지 않을 염려가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세계에 어떤 맛이 있는지 말할 것은 말하고 사라져야 여한이 없다. 내 편이 되어줄 독자도 있다고 믿고 용기를 가진다.
처음에는 거북감이 없을 것들부터 들어 발언의 수위를 조절한다. 헝가리의 굴라쉬(goulash)나 모로코의 쿠스쿠스(couscous)는 우리 육개장과 흡사해 거부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굴라쉬는 빵과 함께 먹지만, 쿠스쿠스에는 조밥 같은 것이 함께 나와 어린 시절에 떠난 고향이 생각나게 한다. 후식으로 대추야자를 한 소쿠리 갖다 놓고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자 감격이 절정에 이르렀다.
인도는 아주 좋아하는 사람과 아주 싫어하는 사람만 있고 그 중간은 없다. 카레라는 말이 따로 없고 모든 것이 카레인 나라에서, 누렇고 걸쭉걸쭉한 액체를 밥에 얹어 비벼 먹으면 온갖 절묘한 향내가 입에 가득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누구는 천국에 오르는 열락을 누리고, 누구는 지옥에 빠져 고초를 겪는다. 네루대학 총장 초대연에서는 천국이 더 크게 열린 것을 몰라주고 지옥의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오해하는 가련한 중생도 있었다. 인도에 갔으니 그 모두가 업보인 줄 알아야 한다.
네루대학에서 각국 유학생들이 자기네 음식을 자랑하는 축제를 벌였다. 세계 일주를 잠깐 사이에 하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서 먹는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이 나라 저 나라, 이런 음식 저런 음식을 맛보다가, 네팔 것들이 특히 맛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머머(momo)라는 만두도 있고, 툭빠(thukpa)라는 칼국수도 있어 친근하면서도 맛이 특이해 매혹되었다.
네팔에 갔을 때 네와르(Newar)족이 불교사원을 본떠서 만든 호화로운 호텔에서 네와르 정식을 제대로 차려놓고 먹은 호사를 누렸다. 네와르족은 인도아리안이 아닌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어서 얼굴이 늘 보던 사람들 같다. 지배민족의 위치에 있다가 인도아리아인인 네팔족에게 밀려 소수민족이 되었다.
힌두교도인 네팔족에게 맞서서, 네와르족은 불교 신앙을 이어져오고 있다. 네와르 불교사원에서 “옴마니밤매홈”이라는 주문을 외는 것이 우리와 같다. 석가여래 당시부터 있던 불교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우리 불교의 원조의 원조를 발견하고, 고향의 고향을 찾은 느낌이었다.
네와르족은 정식은 만두, 칼국수, 요구르트, 콩 수프 등 몇 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무엇인지 모르고 모양이나 향이 기이한 음식을 여럿 곁들여 다향하고 호화로운 풍미를 갖추고, 그 나름대로 세계 최고임을 자랑했다. 한정식처럼 모든 것을 함께 차려놓고 이것저것 골라가면서 천천히 들도록 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여러 시간 즐겼다.
네팔 음식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정식을 즐긴 경력이 없으면 음식에 관해 말하지 않고 자숙하는 것이 좋다. 인도네시아 정식은 한정식과 쌍벽을 이룬다. 밥을 반찬과 함께 먹는 것이 마찬가지이고, 반찬의 재료나 양념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이렇게 설명하면 말이 많이 모자란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진미를 한꺼번에 차려놓고, 식지 말라고 밑에다 불을 갖다놓기도 한다. 이렇게 말해도 흡족하지 않다.
인도네시아 정식은 筆舌(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다. 이런 구식 문구나 가져다놓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빈다. 중ㆍ일ㆍ불국 정식을 비교하고 할 일을 다 한 듯이 뽐낸 것을 우습게 여기고 뉘우친다. 최상의 인도네시아 정식을, 네덜란드에 가서 강연을 하고 대접받은 것을 이력서에 올릴 만하다.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넓은 줄 알아야 마음이 더 열릴 수 있다.
네덜란드는 음식이라고 내놓을 것이 없는 초라한 나라이다. 아무 것이나 먹는 덕분에 기동력을 키워 잘 차린 정식을 여유만만하게 즐기는 인도네시아를 습격해 식민지로 삼았다. 이제는 인도네시아 정식을 모셔가 본 바닥에서보다 더 잘 만들도록 받들고, 네덜란드를 찾는 귀빈이 흐뭇해 하도곡 하는 데 이용한다. 네덜란드가 형편없는 나라인 창피를 인도네시아 덕분에 숨기고 최소한의 체면은 유지한다.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돈다.
멀리 나아가면서 음식 이야기를 더 하자. 우크라이나는 아주 먼 나라인데 만두가 있다. 간장이 없어 녹아 있는 치즈에 찍어먹는 것은 특이하고, 우크라이나 만두는 우리 또는 네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고 맛이어서 동질성을 듬뿍 느꼈다. 먼 조상들은 중간 어디쯤에서 오가면서 살았는가? 몽고군이 멀리까지 가서 좋은 선물을 남겼는가? .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산채덮밥이라고 할 수 있다. 향기 나는 산채를 여럿 걸쭉하게 삶아 밥에 얹어 먹는다. 음미를 하면서 명상에 잠기니, 하늘 가까운 고원 지대의 영험한 기운이 몸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산을 좋아하며 산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디 있어도 형제라고 생각되었다.
에디오피아 식당에서도 약초 삶은 것을 밀전병과 함께 내놓았다. 어떻게 먹는가 물으니, 모양은 유럽인 같고 피부색은 아프리카인이어서 황홀할 정도로 예쁜 에디오피아 처녀가 손으로 밀전병을 뜯어 산채 삶은 것 위에 얹어 움켜쥐고 내 입에 넣어 모범을 보였다. 전병도 산채도 대대로 먹던 것인데 잠시 생소하게 느낀 것이 부끄러웠다.
하와이에 가 있을 때는 묻고 물어 찾아가 하와이 원주민의 음식을 먹었다. 이상한 것이 아니고, 토란 죽이다. 우리는 국을 끓여 먹는 토란으로 죽을 쑤어 촌수가 가깝다. 사람 사는 것은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태평양을 건너다니면서 상당한 교류가 있기까지 한 듯하다.
말을 하고보니 좀 부끄럽다. 음식 여행을 이 정도 한 것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다. 경력이 모자라도 할 말은 할 수 있다고 믿고 한 마디 덧보태면서, 음식에 관해 고찰하는 이 대목을 거창하게 마무리하고자 한다.
만국 공통의 위장을 지닌 사람은 인류 화합의 역군이라, 유엔 총회에서 소리 높여 연설할 자격을 갖추었느니라. 어느 나라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사랑하면 복이 있나니, 천국이 멀지 않았느니라. 식성이 열려 있으면 마음도 넓어, 번뇌나 망상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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