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9(수)_사10:20-34_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새아침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보혈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늘 양식으로 나를 살게 하옵소서. 이 아침 주의 말씀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그 날(יוֹם)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과거 역사 속에서 펼쳐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자, 동시에 장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때를 동시에 상징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이 오면, 세상의 풍파 속에서 끝까지 버텨낸 ‘남은 자’와 ‘피난한 자’들이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주석가들(Calvin, Alexander)의 해석처럼 피난한 자 역시 남은 자를 뜻하므로, 우리는 이들을 ‘남은 자’로 통칭할 수 있습니다.
이 남은 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세상의 거대한 권력인 앗수르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진실하게’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실하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멘(אָמֵן)’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7장 9절에서도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고 선포했었습니다. 결국 ‘남은 자’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굳게 믿고 삶으로 ‘아멘’을 고백하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21절은 그 아멘하여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 선포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의지한 것은 하나님 대신 앗수르였습니다. 그러나 강대국 앗수르의 무서운 공격을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아, 세상 권력은 의지할 것이 못 되는구나.' 그리고 모든 민족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심판에서 남은 자들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능하신 하나님 ‘엘기보르(אֵ֖ל גִּבּֽוֹר)’는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오신 아기의 이름 중 하나입니다(9:6). 즉, 아멘하여 남은 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가는데,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 진리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앗수르라는 몽둥이와 막대기가 북이스라엘을 내리칠 때, 그들이 겪어야 할 아픔과 수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파멸’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 파멸은 멸망으로 끝나는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무너진 ‘공의’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중 누가 과연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대적하고, 경건치 않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은 참으로 정확한 표현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갈 때,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세워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공의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오직 말씀 앞으로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주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순종의 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이 악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나 끝내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멸망할 세상과 함께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23절이 선포하듯이, 주께서는 이미 온 세계 위에 내리실 파멸을 작정하셨고 끝까지 그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24절에서 전능하신 주님은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하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시온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온’은 어디입니까?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 있는 지리적인 시온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시온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주의 옷자락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닿는 곳,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며 예수님의 따뜻한 품에 안기는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성도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시온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를 향한 심판과 함께, 마침내 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과거 애굽이 그러했듯, 북이스라엘을 짓밟은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 혹독하고 철저할 것입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파죽지세로 예루살렘 턱밑까지 밀고 내려와 위협할 때,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과거 애굽을 심판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앗수르 역시 심판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구원해 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가 유다에 미치기 전에 앗수르는 꺾이고 낮아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백성을 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결케 하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강력한 앗수르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셨듯이, 오늘 이 아침 말씀 묵상을 통해 주님께 피하는 자, 주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동일한 위로를 전하십니다.
이 아침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며 나아갑시다. 파멸이 작정된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의 멍에를 메고 사랑과 순종의 길을 걸어갑시다. 날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되어, 주의 말씀을 먹으며 전능하신 예수님만 따라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오늘 하루 생명의 복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샬롬
나의묵상.
주께서 이 아침 나와 우리 더함교회를 부르신다.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예수의 살을 먹는 자들이 모여 사는 곳, 그곳은 시온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아버지와 친밀하게 교제하는 곳, 그곳은 시온이다. 우린 육체에 살지 않고, 이 몸을 주께 드려 성전이 되게 함으로 시온에 거주하게 되었다. 육체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한 줌 쥐어 보려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하게 있는 마음이다. 육체에 머무는 이 인생동안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도 바울 조차도 육체를 통해 역사하는 죄의 세력(‘하마르티아- ‘거친숨표)을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없음을 고백했다. 오직 주의 사랑(’아가페-부드러운숨표)만이 우리로 이기는 삶을 살게 한다. 그 사랑은 순종을 낳았고, 순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했다. 나와 우리 더함교회 가족이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세상의 조명(스포트라이트)을 떠나, 성령의 조명 아래 거하길 원한다.
묵상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이 곤고한 자를 사랑하셔서 날마다 주의 살을 먹으며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시니 그 은혜가 너무도 크고 놀랍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오직 목자되신 예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