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오동나무와 목화(木花)를 심는 뜻은~~~
우리 부모들은 가실이 돌아오면 농촌에서는 연중행사로는 김장을 하고 지붕을 새 이엉으로 이는 등 이웃끼리 품앗이를 통하여 월동 생활 준비를 입동쯤에는 분주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가을에는 예견된 가정 내 큰일인 자녀들 혼사(婚事)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에 특히 집안의 친지들은 상부상조로 물심(物心)을 모처럼 한 데 모아주는 집안 행사이다.
더구나 우리 조상들은 자녀에 대한 혼례 개념이 개혼(皆婚) 사상이 고정되어 생전에 모든 자녀들을 짝을 맞추어 여우 살이 까지 보내야 하는 임무에 젖어있었다.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는 혼인 하루 전날 음식 준비는 일 년 동안 농사지은 곡식 그리고 푸성가리의 농산물과 이웃집에서 담 너머로 건네준 달걀 꾸러미, 푸줏간에서 떼어온 고기 몇 근으로 잔치 음식을 장만하느라 부침개 철질하는 참기름 냄새는 온 동네 고샅길을 가득 메우고 채 알 막은 마당에서 하늘거린다. 우물가에는 밀주(密酒)로 담아둔 막걸리를 아낙들이 체에 내려 거르기가 한참이다. 그리고 뒤뜰에는 아껴 뒀던 씨암탉을 잡을 뜨거운 물을 끓이는 난장의 가마솥 뚜껑을 열었는가? 김이 굴뚝처럼 솟아오른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내려앉자 신랑 집에서 채단(綵緞)을 넣은 함을 지고 신부 집에 온 함진아비는 온 동네에 ‘함 사세요! 함 사세요!’ 란 왁자지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신부 어머니는 함진아비와 함 값 흥정에 애교 섞인 실랑이가 오고 가더니 약간의 거마비와 거나한 주안상으로 해결이 끝나고 함을 넘겨받아 뚜껑을 열고 채단을 확인하고 구경 온 동네 아낙들도 축하의 함박웃음으로 함께한다.
혼인 당일 날 신부 집 마당에서 동네 사람들 그리고 먼 곳에서 찾아온 친지와 신랑 집안에서 오신 상각 손님(상객. 上客-혼인할 때, 가족 중에서 신랑이나 신부를 데리고 가는 손님으로 윗자리에 모시어 대접해야 할 손님)들이 방과 마루 그리고 마당에 즐비하게 서 있다.
사모관대는 원래 벼슬아치의 복장이었으나, 지금은 전통혼례에서 착용하는 복장이다. 신랑은 '사모'를 머리에 쓰고, '단령'을 입었다. 그리고 허리에 '각대'를 찬 다음, '목화(木靴-목이 긴 신발)'라는 신발을 신었는데 이 차림을 사모관대라고 한다. 조선 후기에 와서 혼례는 인륜의 대사라 하여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않고 사모관대를 혼례 당일은 착용하는 것이 허용되었단다.
신부도 전통 혼례 시 입는 화려한 옷은 '활옷'이라고 하며. 이 옷은 원래 궁중에서만 입던 옷인데, 역시 혼례를 할 때만 특별히 입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족두리도 쓸 수 있도록 했단다.
마당 체알 아래서는 연지곤지 족두리에 예쁜 신부와 사모관대의 의젓한 신랑이 홀기(笏記)에 따라 집사의 집전으로 혼례식이 진행되고 있다.
어설픈 신랑 신부의 혼례 동작에 사람들의 박장대소가 그치질 않아 혼례 탁자위에 보자기로 싸서 올려놓은 수탉과 암탉이 놀래서 푸다닥거리며 마당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혼례식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신부 신랑에게 하객들은 쌀과 팥을 한 움큼씩 집어던진다.
쌀은 다산을 의미하고 팥은 잡귀를 추방하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단다.
딸내미의 여우살이는 옷 몇 벌과 장롱이었고, 아들의 경우는 넉넉하면 집 한 채에 전답 몇 마지기 떼어주며 제금을 내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딸내미 혼수는 전자제품이나 가구는 모두 세트로 일괄 구입하여 장만해 주는 것이 통례로 되었으나 그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양지바른 뜰이나 논 밭두렁에는 오동나무를 심어 오동나무가 다 자랄 시기쯤에는 어린 딸도 성숙하여 과년(瓜年)한 나이로 혼례를 치러야 되는데 그때 다 자란 오동나무를 베어서 목수한테 부탁하여 장롱(欌籠)을 만들어 시집보낼 때 혼수로 보냈다. 그리고 혼인 당해 년에는 목화를 심어 목화솜이불을 만들어 이부자리로 보냈다.
오동나무는 빨리 자라므로 심은 지 10년쯤 되면 목재를 이용할 수 있단다. 목재는 나뭇결이 아름다우며 재질이 부드럽고 습기와 해충을 멀리하고 불에 잘 견디며, 가벼우면서도 마찰에 강해 책상·장롱 등 가구를 만드는 좋은 재료이다. 또한, 목재가 소리를 전달하는 성질이 있어 거문고·비파·가야금 같은 악기를 만드는 데에도 쓰인다. 이처럼 오동은 울림이 좋아 악기의 재료로 삼기에 으뜸인 나무란다.
조선 중기의 문인·정치가. 신흠(申欽)의 詩(시)에서 오동나무 악기를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 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언제나 노래를 품으며~에서 오동나무 악기의 신비한 감탄성을 표현한 글이다.
봉황의 의미가 있는 곳이면 오동나무도 있다. 오동나무는 봉황이 앉는 나무란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으며 예천(醴泉-중국에서 태평할 때에 단물이 솟는다는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오동나무는 참 각별한 나무인가 보다. 이렇게 온 정성을 다하여 오동나무로 딸내미 혼수의 으뜸 품목인 장롱을 만들었다.
목화솜이불도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일 년 동안 재배했던 목화송이를 손으로 일일이 따서 멍석에 몇 날 며칠 고실 고실하게 말려서 씨아라는 나무 도구에 목화송이를 넣어서 씨를 제거하여 물레에서 목화솜 실을 뽑아서 베틀에서 수동으로 일일이 천을 짜서 이불 천을 장만했다. 씨아에서 걸어 낸 목화송이를 활시위를 이용하여 부풀려진 이불솜을 만들어 이불을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 부모들은 혼인 이후에는 호적에서 남이 되고 늙어 죽어서도 남의 선산에 묻혀 남의 집 귀신이 될 딸내미에게는 과학적이고 신비의 의미가 담긴 오동나무로 친정아버지는 장롱을 만들었고, 친정어머니의 사랑과 눈물이 범벅된 한 땀 한 땀으로 목화솜 이불을 만들어 어쩌면 친정 부모의 마지막 유품이 될지도 모르는 혼수 준비에 온 정성을 다했다.
혼례의 모든 절차가 끝나자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은 말을 타고 그리고 혼수품들은 소달구지나 마차에 실어 신랑댁으로 떠날 채비에 바쁘다. 친정어머니는 시댁까지 멀고 먼 길을 갈 때 가마 안에서 긴급 용변처리 용으로 요강단지에 목화씨를 넣어서 딸내미 치마 옆에 밀어주면서 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어느덧 신랑 상각들과 딸내미 가마는 동구 밖 언덕길을 가물거리며 넘어가고 있다.
친정어머니는 대문 밖에서 가물거리는 가마 꼭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떼지 못하면서 연신 흐르는 눈물을 앞치마로 훔쳐서 눈은 벌겋게 부어있고 앞치마는 질퍽하다.
친정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가득 채우고 계속 품어 대면서 무뚝뚝하고 호되게만 대했던 딸내미에게 미안하고 후회스러운지 한숨만 내쉬면서 딸내미 가마가 넘어간 하늘 쪽만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인간 삶의 보람과 즐거움은 오동나무를 심고, 목화를 재배하며 새끼들과 부대끼며 옥신각신한 삶이 조물주가 그려 놓은 보통 삶의 모습인 것 같다.
‘결혼은 하늘에서 맺어지고 땅에서 완성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하늘에서 맺어준 것은 부모들이 혼례까지의 노력을 의미하고, 땅에서 완성은 결혼 후에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 이해하고 노력할 때 행복의 보금자리는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대문 밖 친정엄마, 툇마루의 친정 아빠 이제는 시름을 거두시고 억지로라도 일상생활에 젖어 바쁘게 살아가면 모든 부모가 오동나무와 목화를 심어 여유 있게 딸자식 혼례를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의 시름은 행복한 시름일 테니 사노라면 시름이 아름다운 무지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