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온천 여행의 시작은 이랬답니다.
차가운 날씨에 방에 웅크리고 있기보단 떼지어 겨울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마냥
단체로 지하철을 타고서 온양온천으로 목욕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었지요.
그러다가 몇몇 회원들이 “시성비(시간 대비 성과의 비율)”가 너무 형편없다며
보이콧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하나 아까울 것 없는 시간을 마음껏 퍼부어 혼자 다녀왔답니다.
길을 나서면서부터, 이것 저것 갈아타며 앉았다 섰다 하는 3 시간의 전철여행을
사람구경 바깥구경 하며 억지로라도 즐기기로 마음 먹고서 말이지요.
여행이라는 것이 본디, 보는 재미 먹는 재미 외에도, 오 가는 길에 불쑥 만나는
경치구경 사람구경이 더 재미있기도 하니까요.
다행히 온양온천까지 대부분이 지상철이라,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차창의 경치를
바라보거나, 객실 내의 온갖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관찰하며 갑니다.
그렇게 잘 도착한 온양관광호텔의 대온천탕은 정작 별로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남자들의 목욕이라는 것이 대개 한 번 씻고 탕 안에 한 번 들어가면 끝이니까요.
그렇게 어영부영 목욕 마치고 남은 시간에, 호텔을 한 바퀴 돌아 보게 되었지요.
호텔 정면으로 나오면서 오른쪽의 정원에 사각 기와지붕의 비각이 보여, 가까이
다가 가보니, 신정비(神井碑)라는 안내문이 보이더군요.
안내판에 이르기를, 세조임금께서 온양온천에서 목욕 중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바로 옆에 차가운 샘이 같이 있으니 매우 신기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지요.
반대편으로 건너 가니, 기단 위에 겹 처마 이익공 팔작지붕의 비각이 보이는데,
안내판에는 영괴대(靈槐臺)로 저 유명한 사도세자가 활 쏘던 곳이라 합니다.
영험한(靈) 회화나무(槐)가 있는 곳(臺)이라니, 이름의 내력이 궁금하여 비각의
창살을 붙잡고 어두컴컴한 비문을 힘겹게 들여다 봅니다.
비의 앞면에는 큰 글씨로 내려쓴 靈槐臺가 있고, 뒷면에는 御製靈槐臺銘이 있어
눈을 비비며 다 읽어봤지만, 왜 영괴(靈槐)인지는 나오지 않더군요.
아무튼 돌아오는 전철에 앉아, 신정비(神井碑)와 영괴대(靈槐臺)의 두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을 되새겨보느라 3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 놈의 권력이 뭐라고, 한 사람은 제발 살려만 달라는 조카를 무참하게 죽였고
또 한 사람은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굶주리며 처참한 생을 마감했지요.
권력을 빼앗긴 자나 빼앗은 자나 모두, 세월 흐르면 흙먼지로 돌아가 흔적 조차
희미해지는데, 뭘 위해, 오늘도 여전히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들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