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시고 시뻐하신다.
눌림받는 약한 사람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져주신다.
[시편 149:4]
시편 149편은 주님께서 찬양받으실 이유들을 열거한다.
주님이 찬양받으실 이유는,
창조주이시며,
당신의 백성을 기뻐하시며,
눌림받는 약한 사람에게 승리를 주시며,
뭇 나라에게 복수하고,
뭇 민족을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6절에 찬양하는 이들의 손에 '두 날을 가진 칼(6)'이 들려있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힘'이다.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찬양을 통해서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노래, 찬양'은 단순히 멜로디 혹은 음악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입술로 드리는 찬양도 내포한다.
입술로 드리는 찬양의 날과 삶으로 드리는 찬양의 날,
이것이 두 날을 가진 칼의 의미가 아닐까?
온갖 악기와 보컬로 이뤄진 '찬양집회'에서 찬양을 드리는 이들은 얼마나 뜨거운가?
하지만, 그들이 삶도 그렇게 뜨거운가?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찬양은 찬양인가?
80년대 엄혹하던 시기에 경험한 일이다.
5월 18일,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이 거리에서 권력의 폭압에 저항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밝히기 위해 맨 몸으로 싸우는 그 시간이었다.
용산에 있는 어느 교회의 찬양집회에서는 울며불며 두 손을 들고 찬양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심지어는 전쟁을 찬양하는 노래도 있었다.
나는 청년부 담임전도사로 청년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었으며, 다시는 그런 류의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찬양이 정말 찬양일까?
그것이 새 노래로 찬양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 찬양은 노래로 삶으로 드려지는 찬양이며,
새 노래는 음악적인 것뿐 아니라 모든 것(문학, 예술 등등)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