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1] 윤준식(尹俊植) - 만세 반석 열린 곳에 1. 큰 뜻을 위한 연단의 과정 - 2
12 피를 닦고 앉아 있으려니까 허술한 옷차림의 조그마한 보따리를 든 아가씨가 우리들 앞으로 오더니 말을 걸어왔다. “학생들 왜들 그렇게 맞았어요?” 대답이 없자 안타깝다는 듯 그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물어 왔다.
13 “우리는 무전여행하는 학생인데 논산훈련소 구경 좀 하고 가려고 무임승차했다가 깡패들에게 변을 당했어요.” 그녀는 몹시 걱정되는 표정을 하더니 돈을 꺼내어 주면서 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였다. 그리고 차표까지 두 장 끊어주는 것이 아닌가! “고맙습니다. 어디 사시는 누구십니까? 은혜를 꼭 갚겠어요”
14 그러나 그녀는 잘 가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인간에게 고마운 정을 느껴 보기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다시 목포 유달산을 거쳐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하여 한라산에 오르게 되었다.
15 점심 대신 빵 몇 조각을 넣고 상봉인 백록담에 오르긴 했으나 갑자기 한파가 몰려오면서 비바람이 몰아쳤다. 등반 경험이 없는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며칠 동안을 바위틈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바람은 계속 불었다.
16 다행히 가지고 간 나침판이 있어서 방향을 잡고 하산을 시도했으나 한참 동안 가다가 보면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배가 고픈 우리는 풀잎이며 나무뿌리를 질근질근 씹었다. 나중에는 이가 아프고 힘이 없어 그나마 씹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17 “하나님! 우리가 죽더라도 이 섬에서만은 죽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사람이 다급해지면 누구나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살아야 한다는, 살아서 인간답게 살다가 죽어야겠다는 생각만이 온몸을 채우고 있었다. 이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 어머님의 얼굴이 스쳐갔다.
18 나를 사랑하시는 어머니를 못 뵙고 죽게 된다는 생각이 드니 비 맞아 볼에 흐르는 빗물보다 눈에서 솟는 눈물이 더더욱 많아졌다. 살자! 용기를 내자! 우리는 마지막 방법으로 계곡을 타고 무작정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19 옷은 갈기 갈기 찢기고 온몸은 가시덤불과 돌에 찔려 상처투성이였다. 다행히 6일 만에 하산에 성공하여 어느 촌락에 들어섰다. 인간의 목숨이 그렇게 연약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구 학생들이 왜 이러지이!” “아주머니 밥 좀 주세요” 밥이 나왔다. 밥! 어떻게 먹었다고나 할까. 새까만 보리밥에 된장국이었지만 그것은 어느 진수성찬에 비할 수 없이 맛있는 것이었다.
20 배가 부르자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고향 생각이 났다. 부모형제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눈물 없이 살아온 나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열여덟 시간 후 부산에 닿는 순간까지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21 산이 준 교훈과 생의 존엄성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었다고나 할까? 경주 불국사를 거쳐 강원도 명승지를 돌고 고향의 마루턱에 닿았다. “고향의 산도 집도 변함없구나” 그러나 나는 변하고 있었다.
22 지난날 철부지 하게 살아왔던 생활이 뉘우쳐지면서 새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깊이 결심하게 되었다. “무언가 가치 있는 인생을 살자. 육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위해서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하자!” |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