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무, 아름다운 열매
본 문 : 마태복음 7:17-20
일 자 : 2024. 7. 14(주일 낮 예배)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을 말씀하시고, 산에서 내려 오십니다.
그리고 세 명의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마태복음 8장 1절입니다.
“에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 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아멘
첫 번째는 8장 1-4절에 나오는 한 나병환자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절을 하면서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나병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불치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 격리 수용되어 죽기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율법에 따르지 않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그러니까 이 고백은 하나님이 원하시면 고치실 수 있는데,
불치병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 하시고
즉시 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질병의 치료는 이 나병환자처럼 예수님이 원하시면
내 병을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다고 믿을 때 받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5-13절에 나오는 중풍병에 걸린 한 백부장의 하인입니다.
이번에는 병 걸린 하인이 예수님이 고쳐 주실 것을 믿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병 걸린 하인은 집에 누워있고, 그 하인을 사랑하는 주인이 예수님께 나와 간구했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이렇게 질병의 치료는 이 백부장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주여 제가 사랑하는 누구 누구가 이런 병이 나서 몸시 괴로워합니다. 고쳐 주시옵소서”
할 때 예수님께서 “내가 고쳐 주리라”하고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쩨는 14-17절에 나오는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입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이번에는 열병 걸린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께 간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베드로가 우리 장모를 고쳐달라고 기도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아가셔서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저 손만 잡아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열병이 떠나가고 앓아 주웠던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님께 수종들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신 사건을 보면 세 가지의 경우입니다.
첫째는 병자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간구할 때, 그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셨고,
둘째는 병자의 이웃, 그가 백부장처럼 주인일 수도 있고, 부모, 형제 가족일수도 있고,
친척이나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예수님께 말씀드리며 기도할 때 예수님이 고쳐 주셨고,
셋째는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나에게 병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나병환자의 같은 믿음으로 내가 예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병든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능하면 그들이 직접 나와서 이 나병환자와 같은 믿음으로 고침을 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어려우면 그들을 사랑하는 우리가 간구해야 합니다.
백부장처럼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누구누구가 무슨 무슨 병에서 낫겠사옵나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고쳐 주리라”고 하시고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경우는 예수님이 직접 찾아 가셔서 고쳐 주시는 것인데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이 찾아 가서서 위로해 주시고, 예수님이 찾아 가셔서 고쳐 주시라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어떤 경우이든 예수님의 치유의 은혜가 우리 교회에 일어나서
오늘 주시는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건강한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 17-18절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to be)좋은 존재가 (to do)좋은 행위를 내는 법입니다.
나무는 열매를 내고, 그 열매는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못된 나무인지를 입증합니다.
어느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아무리 나무의 잎이 무성하고 보기에 좋아도 좋지 못한 열매를 맺는다면
그 나무는 결코 좋은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나무가 작고 보잘 것 없어도
좋은 열매를 맺는다면 그 나무는 좋은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 아름다운 열매가 자동적으로 열립니다.
만일 내가 좋은 나무이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쁜 나무이면 나쁜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좋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교제의 결과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끝까지 쓰임받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주님의 인격을 닮아갔던 사람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선교여행 초기에 마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고, 그 문제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옥중에서 쓴 디모데후서에 보면 데모데에게 마가를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당부합니다. 마가는 자신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칭찬까지 합니다.
이렇게 사도 요한이 옥중에서 고난을 당하며 보여주는 모습은
주님을 닮아가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고난과 기도가 만나면 깨어짐이 일어납니다.
자아가 깨어집니다.
단단해진 마음이 깨어집니다.
완악하던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 낮아진 마음이 됩니다.
마음이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어진 마음, 좋은 땅에 말씀이 떨어지면 깨달음이 생깁니다.
깨달음이 생기면 순종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순종하면 열매를 맺습니다.
이 순종의 열매는 오랜 시간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맺어지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인격, 예수님의 성품은 오랜 시간 그리스도께 붙어 있으면서
하나님과 교제한 증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는 변화를 낳습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워지고, 깊어지는 변화를 경험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한 전도기관에서 새 신자를 대상으로 교회에 나오게 된 동기를 물었습니다.
교회에 나오게 된 동기가 친척이나 친구들과의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사람이 87%였고,
교회의 전도프로그램을 통해서는 6%,
목회자를 보고 나왔다는 사람은 5%,
전도지를 보고 나왔다는 사람은 2%였습니다.
이 설문은 우리가 맺는 인격의 열매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 전도의 열매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전도하는 성도보다 전도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되는 성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될 때,
전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내가 하나님과 생명력 있는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나무가 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병도 고쳐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때 기적을 보게 하십니다.
그 사람의 병도 치료하시고, 무엇보다 그 사람을 구원하시고, 천국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찾아가셔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시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천국백성으로 구원하신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찾아가셔서 구원해 주시라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모두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