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대상과 불자대상, 이대로 좋은가
포교대상 문건을 발견하고
조계종 홈페이지를 방문하다가 눈에 띄는 문구를 발견하였다. 공지사항에서 ‘포교대상’ 운영에 관한 문건이었다. 문건을 열어보니 2011년 7월 5일자로 전면 개정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
포교대상과 불자대상에 관한 글을 몇 차례 올렸었다. 그리고 그 문제점 또한 동시에 부각시켰는데, 이번 문건을 보니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포교대상은 스님들의 독차지이었는데, 이번 ‘포교대상 운영에 관한 령’을 보면 재가불자도 스님과 함께 포교대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4조 (추천기준) 포교대상의 추천분야는 다음의 각호와 같다. 종단스님 및 재가불자 : 겅적분야 5년 이상 활동 시찰 및 단체 : 종단등록 및 설립경과 5년 이상 다만, 포교대상 대상의 공적기간은 20년 이상으로 한다. (조계종 포교대상 운영에 관한 령, 2011년 7월 5일 전면개정공포)
조계사
위 내용을 보면 포교대상자는 스님을 포함하여 ‘재가불자’도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재가불자’라고 쓴 표현이 이채롭다. 다른 시행령에서는 ‘신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사찰이나 단체도 포교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교대상자는 스님, 재가불자, 사찰, 단체 이렇게 4개 분야가 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역대 포교대상 수상자들
포교대상 운영에 관한 령을 보니 1998년에 최초로 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포교대상은 누가 탓을까.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포교대상은 스님들의 잔치인가, 일반재가불자로 한정해야 하는 이유)에서 확인 하면 다음과 같다.
역대 포교대상 수상자들
위자료는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만든 것이다. 1998년 이전의 수상자는 검색하여도 자료가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다.
포교대상의 대상(大賞)의 대상이 되려면
표를 보면 모두 스님들이 수상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총무원장을 지냈거나 포교원장 또는 원로의원 스님, 조실스님들 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님들이다.
포교대상의 대상의 대상이 되려면 적어도 위와 같은 정도의 경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개정된 안 역시 포교대상의 대상(大賞)을 타려면 20년 이상의 공적이 있어야 된다고 못박아 놓고 있기 때문에 보통스님들이 타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참고로 포교대상의 상은 ‘대상’ ‘공로상’ ‘원력상’ 이렇게 세 가지 상이 있다.
새로 개정된 시행령을 보면 스님뿐만이 아니라 재가불자도 가능하고, 심지어 사찰이나 단체도 수상대상이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만약 재가불자가 포교대상을 타게 된다면 아래에 언급된 ‘불자대상’과는 어떤 관계가 되는 것일까.
과연 새로 개정된 시행령으로 재가불자도 포교대상을 탈 수 있을까. 시행령을 보면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가장 먼저 추천을 받아야 한다. 교구본사 주지나 신도단체의 대표자, 포교단체의 대표자의 추천을 받은 다음에 9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과하여야 한다.
9인 심사위원회중 6인은 중앙신도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이 모두 스님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3인은 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포교원장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거의 대부분 스님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공적활동이 20년 이상으로 제한 하였을 경우 재가불자가 대상자로 결정된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일 것이다.
부끄럽고 창피한 제도
포교는 불교의 지상과제이다 개신교가 득세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포교를 하지 않으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없기 때문에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부처님의 바른 법을 알릴 필요가 있다. 특히 스님들에게 있어서 포교는 당연한 ‘의무’라는 것이다.
출가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마성스님은 자신의 글에서 ‘수행’과 ‘포교’라고 하였다. 수행과 포교외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한다든가, 직업을 갖는다든가 하는 일은 ‘직무유기’와 같다는 것이다.
세속사람들도 하찮게 여기는 노래를 부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음식을 만드는 것등을 일부 출가자들은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세속에서도 가장 천하다고 여기는 점이나 사주, 관상, 운명감정을 하는 스님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승가의 위의를 떨어 뜨릴 뿐만 아니라 불교와 불교인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어서 포교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수행을 하여 죽기살기로 포교해도 부족할 판인데, 반승반속의 생활을 하면서 무사안일하게 살아가는 스님들은 당장 ‘선택’해야 할 것이다. 출가자로서 수행과 포교에 매진 할 것인가, 아니면 세속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선교가 생활화 되어 있는 기독교
포교는 상을 주어서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 또는 재가불자, 사찰, 단체라면 당연히 해야할 의무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불교계가 상을 주어 가면서 까지 포교를 장려 하고 있는데 타종교는 어떨까.
인터넷에서 선교대상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여 검색하여 보았다. 조계종 처럼 교단차원에서 하는 것은 없었다. 다만 스포츠선교대상이라 하여 스포츠를 이용하여 선교공로가 높은 이영무목사가 상을 탓다는 오래 전의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기독교에서 선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별도로 선교대상을 만들어 상을 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전철에서 선교행위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축구장에서 기도세리모니를 하고 방송에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선교가 생활화 되어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 선교대상을 거론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일 수 있다. 천주교는 어떨까.
가톨릭대상은 누가 탈까
천주교역시 선교나 포교대상과 같은 상이 없다. 대신 그들은 ‘가톨릭대상’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가톨릭대상은 어떤 것일까. 인터넷검색을 통하여 확보된 자료에 따르면, 이웃을 위해 묵묵히 헌신, 봉사하고 건전한 사회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어지는 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조계종의 포교대상과 비교하여 놀라운 점은 대상자가 모두 ‘평범한 신자’들이라는 것이다. 신부나 수녀와 같은 성직자는 대상에서 제외 되는 것이다. 또 대상자를 심사하는 곳은 평신도협의회인데, 이는 조계종에서 거의 대부분 스님들 위주로 구성된 9인 심사위원회와 대조 된다.
그렇다면 가톨릭대상자는 누가 타는 것일까. 이미 블로그에 올려 놓았던 자료에다 2010년 대상자를 추가하여 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4년간 가톨릭대상 수상자
1982년 제정된 가톨릭대상은 3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대상자의 면면을 보면 우리사회의 소외되고 어두운 부분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자신의 할 바를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불자대상의 면면을 보면
이처럼 이름없는 신자들 위주로 선정된 가톨릭 대상이 있다면 불교에도 불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이 있다. 그것이 불자대상이다.
포교대상이 스님들 차지라면, 불자대상은 오로지 재가신자들을 위한 상이라 볼 수 있는데, 그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 표 역시 전에 올려 놓은 자료에서 2011년 대상자를 추가하여 작성한 것이다.
역대 불자대상 수상자
2011년 불자대상을 보면 무려 6명에 달한다. 그 중 ‘앙드레 김’과 같은 고인도 있는데, 작년의 경우 ‘한준호 준위’도 고인으로서 불자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불자대상자의 면면을 보면 우리사회의 명망가들이다. 운동을 잘해서 불자대상이 되기도 하고, 기업체의 사장이 타기도 하고, 유명한 탤런트나 심지어 개그맨까지 불자대상을 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군인중에 불자대상을 보면 4성장군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불자대상이 되려면 연예인, 체육인, 4성장군정도는 되어야 영순위에 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후보자는 매년 나올지 모른다.
군인 중에 누구든지 불자로서 별 네 개만 달면 일단 영순위에 올라갈 것이고, 스포츠 스타중에 국제경기에서 언론과 매스컴에 알려지면 역시 영순위가 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연예인들도 단골 영순위인데, 특히 탤런트들이 주류를 이룬다. 강부자도 타고, 한혜숙도 타고, 고두심도 타고, 더구나 김혜옥도 타는데, 아직 타지 못한 엄앵란은 역시 항상 영순위로 올라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만일 김연아선수가 불자이었다면 어땟을까. 틀림없이 그녀는 불자대상의 영예를 안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제 아무리 신심있는 불자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 간다고 할지라도 결코 불자대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유명하다고 해서 다 훌륭할까
유명하다고 해서 다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 한 때 유명한 정치인나 연예인, 체육인들이 ‘스캔들’에 휘말리거나 ‘자살’하는 경우을 언론과 매스컴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데, 위 불자대상자들이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시류에 편승한 대상자의 선정은 위험하기 그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대상자로 선정해야 할까.
그것은 검증된 인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불자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잘 못될리가 없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 가톨릭대상의 대상자는 매우 성공적인 인선이라 여겨진다.
불자대상자의 선정은 시류에 편승된 유명인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위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낮은 자세로 사회의 소외되고 어두운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는 ‘불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은 하나로 족하다
불교계의 가장 큰 상이라고 볼 수 있는 포교대상과 불자대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살펴 보았다. 분명한 사실은 이런 큰 상들이 보통불자가 보기에 부끄럽고 창피해 보이는 상이라는 것이다. 스님들의 역할이 수행과 포교라면 포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을 대상으로 포교대상을 준 다는 것은 스님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선교 잘한다고 해서 목사들에게 선교대상을 주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신도들에게 헌신하는 신부를 위하여 선교대상을 주었다는 것을 역시 보지 못하였다. 이웃종교들이 상을 주었다면 그것은 신도들에게 준 것이다. 그것도 소외되고 의지할 곳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가장 낮은 자세로서 묵묵히 봉사하는 이름 없는 신자들에게 준 것이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스님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스님들이 스님들을 심사하여 상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상들은 스님이 탈 것이 아니라 재가불자들에게 주어야 한다. 주긴 주되 불자대상에서 본 것처럼 특별나고 유명한 재가 불자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 가면서 지역과 사회에 봉사하는 불자들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현재 불교와 관련된 상은 난립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포교대상과 불자대상뿐만 아니라 이에 대항하여 재가불자연대에서 만든 상도 있고,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상은 포교대상과 불자대상이다.
그런 상은 하나로 족하다. 지금처럼 포교대상과 불자대상으로 이원화 할 것이 아니라 가칭 ‘불교대상’을 만들어 재가불자들에게만 상을 주자는 것이다.
2011-07-10 진흙속의연꽃 |
출처: 이 고뇌의 강을 건너 원문보기 글쓴이: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