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 동안 세계사와 토지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위기와 토지문제, 카르타고의 바알 숭배와 토지문제, 로마 공화정의 몰락과 토지문제,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의 이슬람화와 토지문제, 러시아 공산화와 토지문제, 중국 공산화와 토지문제, 인도의 빈곤과 토지문제 등을 연구 주제로 삼아 여러 문헌들을 읽고 관련된 역사 영상들을 시청했습니다. 오늘은 이 주제들을 연구하는 동안 제게 인상 깊었던 것 두 가지만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지난 20세기의 최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 공산화와 중국 공산화의 근본 원인은 바로 토지문제 때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나라 모두 공산화 직전의 최고 권력자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와 중국의 주석 장제스 모두 하나님께 기도하는 보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통치하는 나라들이 공산화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공의는 행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할 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시는 첫 번째의 것입니다(미가 6:8).
그런데 미가서에서 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바알 숭배와 바알 경제를 이스라엘에 전면 도입한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 전통”(미가 6:16)을 버리고, 여호와 신앙과 희년 경제를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와 사회에서 모두 주도하시는 토지평등권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희년(禧年)은 ‘복 희’, ‘해 년’으로 ‘복된 해’라는 뜻인데, 구약 달력에서 50년째 되는 해를 가리킵니다. 제50년인 희년이 오면 가난한 사람들이 그 전에 잃어버린 땅과 집과 자유를 되찾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기 집에 살면서, 하나님이 골고루 나누어주신 땅에서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그 노동의 열매를 모두 누리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주거권이 보장되는 주거 정의, 모든 사람의 토지평등권이 실현되는 토지 정의, 각 사람이 일한만큼 그 열매를 누리는 노동 정의가 모두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토지평등권 실현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한 최선의 제도는 토지의 사용료인 지대(地代)에 세금을 부과해서, 일부는 국가의 공공재정으로 공유하고 나머지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대신, 노동의 생산물과 생산·유통·소비·소득에 대한 세금은 대폭 감면하는 제도입니다.
하늘, 땅, 바다, 공기, 햇빛 등을 자연물이라고 하고, 사람이 일해서 만든 것을 인공물이라고 합니다. 원칙적으로 자연물과 인공물을 구분해서, 자연물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니 공유(公有)해야 옳고, 인공물은 일한 사람이 노력하여 만들어 낸 산물이니 사유(私有)해야 옳습니다.
이를 위해 자연물인 토지의 지대는 세금을 부과해서 공유하거나 평등 분배하고, 그 대신 인공물인 노동생산물에 대한 세금은 최소화해서 개인 소유를 보장하는 것이 정의롭습니다. 이렇게 하면 생산의 효율성과 분배의 형평성을 모두 달성할 수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 문제가 해결되고 경제 불평등이 크게 완화됩니다. 집값이 하향 안정화되어 ‘내 집 마련’이 쉬워지고, 전월세 값도 하향 안정화되어 세 들어 사는 서민들도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국가 경제와 개별 기업의 생산성이 모두 증대되면서 일자리가 증가하고 임금이 높아집니다. 또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해도 자기가 일한 만큼의 대가를 충분히 받게 되니, 입시 지옥과 사교육 과열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헬 조선에 절망해서 결혼과 출산을 아예 포기했던 청년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어, 우리나라가 초저출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지난 20세기는 토지개혁의 시대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토지개혁이 이루어졌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토지개혁은 모두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의 농지개혁도 그 효력을 상실한 채 부동산 불평등 사회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영속적인 토지개혁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토지에서 지대를 공유하거나 평등 분배하는 개혁입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토지평등권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안일 뿐만 아니라 영속적인 것입니다. 이 토지평등권 개혁을 실행하고 그 후에도 깨어서 잘 지켜내면 그 효력이 해마다 계속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지난 20세기에 세계 최초로 토지개혁을 시작한 나라는 아마 멕시코일 것입니다. 비극적 영웅들인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판초 비야가 멕시코 토지개혁을 이끈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저는 이제 21세기에 세계 최초로 한국이 토지평등권 개혁을 이루어내서, 전 세계 토지평등권 개혁의 불을 댕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개혁을 바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앞장서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토지평등권 개혁은 과거의 노예 해방을 능가하는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교적 사회 개혁일 뿐만 아니라, 희년의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의 공공 영역에서 강력하게 확장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