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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순례자의 필수 아이템 2
Text Eph 6,10-18
(10)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 우리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다릅니다. 그리고 경험과 지식 등에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순례자의 길을 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마귀의 공격에 매우 당황하고, 시험에 들어 곤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AI’(인공지능)는 그리스도인이 순례자의 길을 걷는 동안 예상치 못한 마귀의 공격을 데이터화 하여 가상 현실로 그리스도인에게 미리 알려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AI’(인공지능)는 순례자의 길을 걷는 성도에게도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성도가 순례자의 길을 가는 동안 사탄의 간교한 공격을 받기 때문에 ‘전신갑주’로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성도가 ‘순례자의 길’을 잘 가기 위해 획득해야 할 필수 아이템인 ‘전신갑주’ 중에서 14-15절에 나오는 허리 띠, 호심경, 신발 등 세 가지 아이템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며 은혜받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 주일은 감리교회가 2006년 총회에서 제정하고 2007년부터 지키고 있는 ‘순교자기념주일’입니다.(개혁교회 중에서는 감리교회가 제일 먼저 ‘순교자기념주일’을 지키기 시작했고, 장로교회에서는 통합측에서만 6월 둘째 주일을 ‘순교·순직자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으며, 그 외 다른 교파에서는 아직 제정하여 지키고 있지 않다) 순교는 마귀의 가장 강력한 공격인 박해를 이겨 낸 믿음의 표시입니다. 순교자들은 어떤 아이템을 가졌기에 닥친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버렸는지에 대하여서도 함께 생각하고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말씀이 은혜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사도 바울께서는 14절에서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라고 하면서 ‘진리의 허리 띠’를 언급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은 평화로운 산책길이 아니라 치열한 싸움터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도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게임이 아닙니다. 사탄은 실제로 공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 장비를 입으라고 하십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장비를 착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장의 첫 번째가 ‘진리의 허리띠’라고 말합니다.
왜 첫 번째가 허리띠일까요? 현대인은 허리띠를 단순히 바지를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용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가 기록될 당시의 로마 군단에서 허리띠(cingulum militare)는 군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이자, 갑옷과 검을 지탱하는 핵심 장비였습니다. 허리띠가 없으면 긴 옷자락이 다리를 방해하고, 칼을 제대로 찰 수 없고, 다른 장비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즉, 허리띠는 전투를 ‘준비하는’ 장비입니다. 그런데 사도께서는 그 허리 띠를 ‘진리’로 된 띠라고 하였습니다. 왜 ‘진리’를 허리띠라고 했을까요?
마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힘이 아니라 거짓입니다. 성경을 보면 최초의 공격도 칼이 아니라 질문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거짓은 처음부터 노골적이지 않습니다. AI로 표현하면 이런 모습일 수 있습니다. 원본 데이터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인데, 사탄은 해킹을 하여, ‘하나님은 조건부로 너를 사랑하신다.’로 왜곡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지금 너에게 실망하셨다.’로 강도를 높이고는 ‘하나님은 너를 버리셨다.’로 하나님의 말씀과는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리게 합니다. 단 한 줄의 거짓이 인생 전체의 방향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탄의 이 거짓 진술을 물리치는 아이템은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허리띠는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묶는 것’입니다. 본문은 ‘진리를 공부하고’가 아닙니다.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입니다. 허리띠는 몸에 묶습니다. 즉 진리가 내 삶을 묶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내 감정보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내 경험보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AI 화면으로 보면, 성도의 몸에 수백 개의 끈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SNS, 뉴스, 주변 사람, 비교, 성공, 실패, 돈, 인기 등의 끈들이 성도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깁니다. 몸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그때, 허리띠가 채워집니다. 허리띠에는 ‘진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진리란 항상 사실인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내 생각과 내 감정과 내 경험은 수시로 변합니다. 진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순례자는 목적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길에서 수많은 표지판을 만납니다. ‘이쪽이 더 빠릅니다.’ ‘이 길이 더 쉽습니다.’ ‘여기서 쉬십시오.’ ‘돌아가십시오.’ 허리띠가 없는 순례자는 매번 그 표지판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허리띠를 맨 순례자는 지도를 보고 지도를 따라갑니다. 그 지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허리띠는 화살을 막는 장비가 아닙니다. 속지 않게 하는 장비입니다. 마귀가 “너는 혼자야.”라고 말할 때, 진리의 허리띠가 빛을 내면, 숨겨져 있던 진실이 나타납니다.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 허리띠는 새로운 진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려졌던 진리를 드러내는 장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앞에 서리라’ 이 말은 순교자 신석구 목사님께서 공산당의 회유와 공갈, 죽음의 위협 앞에 외치신 말씀입니다. 회유와 공갈과 죽음의 위협은 모두 거짓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따르는 길이 고생이 되더라도 영생의 길이고 최후의 승리를 보장받는 길입니다. 내 강한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 다 내려놓고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예수님께서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으라”(눅12,3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허리띠를 맨다는 것은 단순히 올바른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삶의 중심이 묶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모든 전신갑주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출발점이며, 순례자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필수 아이템입니다. 꼭 이 아이템을 갖추셔서 승리하십시오.
3. 다음으로 갖추어야 할 아이템은 “의의 호심경”(14b)입니다.
‘진리의 허리띠’가 생각과 인식의 중심을 묶는 장비라면, ‘의의 호심경’은 존재의 중심(마음·정체성)을 지키는 장비입니다. 호심경은 ‘가슴을 지키는 장비’입니다. 고대 로마 군단의 호심경(breastplate)은 단순한 철판이 아니라, 심장과 폐를 보호하는 생존 장비였습니다. 허리띠가 ‘흩어짐’을 막는 장비라면, 호심경은 ‘죽음’을 막는 장비입니다. 즉, 전신갑주에서 호심경은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막는 중심 방어구입니다. 마귀의 공격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는 공격이고 이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호심경’이 필요합니다.
AI로 표현하면 이렇게 나타납니다. 화면에 메시지가 뜹니다. “너는 실패했다.” “너는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께 갈 수 없다.” 이것은 머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찌르는 공격입니다. 가슴 위에 검은 점이 생깁니다. 이름을 ‘부끄러움’이라 하는 점이 퍼져서, 숨기고 싶음, 사람을 피함, 기도 못함, 예배 회피 등으로 번집니다. 그리고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라는 굳은 살이 심장과 간에 치명적 병증을 유발합니다. 전투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 붕괴로 바뀝니다.
호심경이 없으면, 말씀을 들어도 심장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회개가 아니라 자책으로 결론을 내리고, 은혜가 아니라 죄책감만 남게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두려워하는 상태가 됩니다. 즉, 신앙이 ‘살아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것처럼 되었다.’라는 계시록의 “사데교회” 믿음이 되고 맙니다.(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당연히 이런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멈춘 심장을 일깨워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이 호심경의 이름은 “의의 호심경”입니다. 이 이름은 문제의 핵심이 ‘의’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성도의 의는 철저히 스스로 만든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입혀 주신 의입니다. 봉사 점수, 헌신 점수, 금식 등 충성도 점수 등은 아무리 쌓고 높여도 계속해서 실패의 기록으로만 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의’가 적용되는 순간 심장 위에 철판이 아니라 빛이 입혀집니다. 사람은 두 가지를 동시에 믿습니다. ‘나는 죄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괜찮아져야 한다’ 여기서 충돌이 생깁니다. 죄 인식 100%에 자기 개선 시도 100%가 더해지면 ‘불안 200%’라는 계산식이 만들어집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점수화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과거가 계속 재생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내 마음을 책임져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만들어집니다만 그것은 거짓된 믿음입니다.
순례자가 길을 걷습니다. 갑자기 ‘Heart Attack Incoming’이라는 시스템이 열립니다. 죄책감 미사일이 날아옵니다. ‘과거 회상’이라는 이름의 폭격이 이루어집니다. ‘비교 레이저’가 ‘수치심 파동’을 일으킵니다. 순례자는 굳어져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때 하늘에서 ‘의의 호심경’이라는 아이템이 내려와 입혀집니다. 의의 호심경을 착용하는 순간, 과거 기록이 삭제되고, 감정 중심이 제거되며, 기억이 삭제되는 대신, ‘새로운 신분 적용’이 심장에 새겨집니다. 그리고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말씀이 전신을 감쌉니다.
호심경은 공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바꿉니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에서 ‘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로. 즉 호심경은 방어구가 아니라 정체성 변환 장치입니다. 순례자에게는 필수 장비입니다. 순례자는 길을 걷는 사람인데, 가슴이 무너지면, 걷지 못합니다. 돌아섭니다. 자꾸만 숨으려 합니다. 심장이 멈추면 모든 신체 기능도 멈추고 맙니다. 그래서 호심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로 살아내는 삶, 그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날마다 죽는 순교자의 삶(고전15,31)입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생각을 진리로 묶는 것이고, 의의 호심경은 성도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 다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혀 주신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순교자 신석구 목사님의 자서전에 보면, 마귀가 질문하기를 네가 거듭났다고 하더니 거듭난 사람도 그런 불의한 마음을 가지느냐 하여 정확한 답변을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길 가는 도중에 홀연히 심령의 귀에 한 소리가 들린다. ‘너는 1900년 전에 골고다에서 흘린 피가 네 범죄함을 속한 것만 믿지 말고 이제도 살아있는 그 피를 네 마음에 뿌림으로 네 마음에 정결함을 받으라’ 나는 이 때에 이 천래(天來)의 음성을 듣고 환하게 깨달아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찬송을 힘있게 부르며 마음 속에 만족한 평안을 얻었다. 그후 간혹 악념이 침입할지라도 샘솟듯하는 피 권세를 늘 의지하였다.”
여러분, 보혈의 공로는 거듭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때도 여전히 필요한 호심경입니다. 우리를 지키는 것은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과거를 말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이 아이템을 챙기셔서 살아있는 순교자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4. 15절입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순례자가 가는 길에는 두려움, 걱정, 시험, 핍박, 갈등 등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땅은 미끄럽습니다. 신발이 없으면 넘어집니다. 움직이지 못합니다. 도망갑니다. 그러나 복음의 신발을 신으면 발바닥에서 빛이 납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길이 안정됩니다. 복음은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또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로마 군인의 군화는 못이 박혀 있어 미끄러지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복음은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서 있게 합니다. 갑자기 수많은 공격이 시작됩니다. 거짓을 허리띠가 막습니다. 정죄를 호심경이 막습니다. 두려움을 신발이 버티게 합니다.
그런데, 이 신발을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이라 했습니다. ‘평안’은 감정이 아니라 이동 조건입니다. 세상의 평안은 환경이 좋으면 유지되다가 문제가 생기면 즉시 붕괴하지만, 복음의 평안은 환경과 무관하게 작동합니다. 전쟁 중에도 전진이 가능한 상태(Forward State)가 성경의 평안입니다. 세상의 시스템이 ‘길이 있어야 걷는다’라면, 복음 시스템은 ‘걸으면 길이 열린다’입니다. 발 아래가 공허하고 안개가 짙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복음의 신발을 신는 순간 발 디딘 곳에 길이 생성되어 걷다가 뒤돌아보면 길이 생긴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교는 왜 이루어집니까? 순례자가 가는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진리가 아닌 길로 가라고 하는 것을 거부할 때 생깁니다. 신석구 목사님께서는 최후의 순간을 보내신 평양감호소에서 자신을 길을 막으려 심문하는 공산당원에게 도리어 복음을 전하여 같을 길을 가자고 권하셨다고 합니다. 복음이 가라는 길을 가는 것이 순례자가 신는 신발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우리 모두도 어떤 순간에도 복음이 가라고 하는 길을 넉넉히 갈 수 있는 신을 준비하는 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은혜가 오늘 순교자기념주일을 지키며 순례자의 길을 걷는 성도 여러분에게도 풍성하게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